<호주의 역사 > 1788년 호주의 첫번째 총통이었던 캡틴 아서 필립은 736명의 죄수와, 간수들을 태운
11척의 제1함대를 이끌고 지금은 시드니 항으로 왔다. 중형에도 불구하고 많은 죄수들은 빵 한덩이를훔쳤다는 죄목으로 끌려 오기도 했다. 이송이
끝난 1852년까지 총 16만명의 죄수들이 호주로보내졌다. 형기를 마친 많은 죄수들이 농부나 노동자로 호주에 머물기로 결심했다.
자유 정착민들이 1793년부터 값싼 땅과 죄수들의 노동을 약속 받고 호주로 건너왔다. 하지만1850년부터 금과 구리가 발견되면서
호주 이주민의 숫자는 급격히 증가했다.
유럽, 중국, 미국에서 온 이민자들은 모두 금광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몰려들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점원으로 농부로 노동자로 그들은 호주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골드러시의 영향은 호주 경제와 인구 수준에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호주 국민 의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도시가 성장하고 도로와 철도가 건설되면서 호주는 마침내 1901년 1월 1일자로
연방을 선언하였다.
오늘날 호주에는 200개가 넘는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 세계 대전 이후 영국과 유럽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며 최근에는 동남아시아와 뉴질랜드에서도 오고 있다. 애버리진들과 토레스 해협 섬주민들 (Torres Strait Islanders),
호주 토작민들이 전체 인구의 1.5%를 차지한다.
<호주 원주민의 역사
> 5천만년이 넘는 동안 호주 원주민인 아보리진들은 호주의 독특하고 거친자연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성해왔다. 원주민들은 풍부한 식물과 토종
야생동물에 의지하여 호주 대륙에 정착할 수 있었다. 호주 원주민들의 문명이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현재 믿고 있다.
발견된 가장
오래된 사람의 유골은 뉴 사우스 웨일즈의 문고 호수 (Lake Mungo)에서 발견된 것으로 3만8천년 전의 것이다. 유골 위의 황토색 흔적은
황토를 의식에 사용했던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이 발견을 통해 호주 애버리진 문명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장구한 시간 동안 기후와 천연자원의 변화로 발생 된 변화를 포함해 문명의 변화가 전 대륙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런 과정에서
애버리진들은 식량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계절에 따라이동하는 것과 같은 생존전략을 발전시켰다.
애버리진 문화는 많은 측면과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호주 대륙 곳곳에 조상들의 유물, 신성한 장소, 언어, 기념물, 토템, 예술 , 종족 집단거주, 법의흔적이 남아있다. 사막인,
염수인(saltwater people), 돌지역인 (people of the stone country), 섬주민 (people of the
islands)이 있다.
이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점도 있다. 다양한 종족들 사이에 공동책임과 보편적인가치가 있다. 이런
연관은 경계를 넘나드는 오랜 세월 동안, 교역로, 의식 장소, 드리밍 트랙을 통해 대륙 전체에 걸쳐 유대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암각화에는 이런 역사를 많이 묘사하고 있으며 호주전역에서 발견 된다. 가장 인상적이며 보전이 잘된 암각화는킴벌리의 카카두 국립공원과 호주
북부지역의 암각화 갤러리에서 찾아 볼 수있다.
<호주대륙발견>
‘남쪽의 땅 (Terra Australis)’은 유럽 탐험가들이
발견한 마지막 대륙이었다. 오래 전 탐험가들은 신비에 쌓인 풍요의 땅을 찾기 위해 미지의 대륙으로 항해하였다. 유럽인들이 공식적으로 처음 호주
대륙을 발견한 때를제임스 쿡선장(Captain James Cook)이 1770년 보타니 배이(Botany Bay)에 첫발을 내디딘 시점으로
본다.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대륙인 호주는 거대한 대륙인 곤드와나(Gondw-ana)에서 떨어져 나와 현재의 위치에
1500만년 전에 자리를 잡았다. 호주대륙은 지구 상에서 가장 안정된 대륙이며 1억년 동안 조산운동이 없었다. 호주를 찾아 온 초기 유럽
탐험가들은 포르투갈인들로 루이스 바에즈 드토레스가 16세기에 케이프 요크의 끝과 뉴기니아 사이 해협을 지날 때 였다.
바에즈 드
토레스의 뒤를 이어 화란의 탐험가인 디르크 할토그 (Dirk Hart-og), 반 디에멘 (Van Diemen), 아벨 타스만 (Abel
Tasman)이 해안선의 지도를 그렸지만 적대적이며 불모지라고 생각한 호주 대륙에 정착할 생각은하지 않았다.
영국인인 윌리암
댐피어는 1688년과 1698년에 걸쳐 해안을 조사하였다. 이는 제임스 쿡 선장이 오기 100년 전이다. 하지만 그의 기록으로 유럽인들은 그
당시 뉴 홀란드라고 하는 호주 대륙을 원시적이고 불결한 땅으로생각했다.
1770년이 되어서 제임스 쿡 선장이 뉴 사우스 웨일즈의
비옥한 동부 해안을 목격했다. 그의 배 ‘인데버’호를 타고 쿡 선장은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올라가 시드니 남쪽의 보타니 배이에 있는 피난처를 찾아
냈다.
배에는 동승한 몇 명의 과학자들과 식물학자들이 해안을 방문하는 동안 유럽에서는 보지 못한 식물과 동물들을 발견하였다. 쿡
선장이 보타니 배이를 떠난 뒤 북쪽으로 여행하였고 동부 해안은 비옥하며 정착하기에 적합하다는 보고를 했다. 그는 이 지역을 뉴 사우스 웨일즈라고
명명했다.
1800년까지 호주에는 단 두명의 유럽 정착지가 있었다. 그들은 시드니 코브와 노폭 아일랜드에 살았다. 하지만
1803년 타즈매니아의 호바트에도 정착지가 건설되었다. 그 밖에1824년 퀸즈랜드의 브리즈번 강, 1829년 서호주의 스완강, 1836년
남호주의 세인트 빈센트 만에 정착지가 생겨났다. 5개주의 주도가 이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정착지가 생기기 전에 탐험가 조지
바스는 뉴 사우스 웨일즈의 해안을 따라 지금의 멜버른까지 1797년에 항해를 하였다. 그는 탐험가 매튜 플린더스와 함께 1798년
타즈매니아를항해한 뒤 타즈매니아가 대륙의 일부가 아닌 섬이라는 사실을 밝혀 내었다. 매튜 플린더스는 1801-1803년 동안 호주를 일주하여
해안선 지도를 완성하였다.
시드니 서쪽의 험준한 블루 마운틴은 오랜 동안 넘어가지 못하는 곳이었지만 1813년 탐험가 그레고리
블랙랜드, 윌리엄 챨스 웬트워스, 윌리엄 로손이 통로를 찾아내어 내륙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1860년에는 로버트 버크와 윌리엄
윌즈가 호주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건너간 최초의 사람이 되었지만 돌아 오는 길에 숨지고 말았다.
1824년에는 탐험가 해밀턴 흄과
윌리엄 호벨이 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을 통과하는 통로를 찾아 내어 포트 필립 배이로 가는 탐험 길에서 비옥한 고번과 야스 평원을 발견했다. 그
탐험 여정 동안 그들은 거대한 강을 발견하고 흄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뒤에 탐험가 챨스 스터트가 다시 탐험한 뒤머레이 강이라고 명명하였다.
<영토와 국방> 호주는 6개 주(state)와 2개의 특별구 (territory, 테리토리)로 되어 있다. 각 주와 테리토리는 자치
의회, 주기(州旗), 상징화가 있다. 호주는 1901년 1월, 6개 식민지를 통합하여 연방국가로 탄생하였다. 같은 의회, 같은 헌법, 같은
국가로 묶인 호주는 2001년 연방탄생 100주년을 축하했다.
호주 군대는 전설적인 ANZACS(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호주와 뉴질랜드 군을 합성한 단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자랑스런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호주 군인들은 세계 1,2차 대전을 비롯한 많은 국제분쟁에 연합국으로 참전하였다. 1차 세계대전 중 호주군 (Diggers)이 터키의 갈리
폴리에 처음 상륙한 4월 25일을 기념하여 호주의 전군은 매년 이날을 현충일인 안작 데이(ANSACS Day)로 지키고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kangaro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