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 "나는 진정 네가 조타"…최정희 향한 연애편지 발견
요절한 근대문학가 이상(李箱·1910~1937)이 소설가 최정희(1912~1990)에게 자필로 쓴 연서로 추정되는 편지가 공개됐다.
권영민(66) 단국대 석좌교수는 23일 최정희의 딸인 소설가 김채원(68)씨가 보관하던 300여편의 편지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해당 편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알려진 이상의 편지 글은 모두 10편으로 연서가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권 교수는 해당 편지를 이상의 친필로 보는 근거로 '글씨체가 영인문학관에 보관된 이상의 친필 유고와 일치하는 점', '편지 끝 부분에 적힌 '이상'이라는 한자 표시'를 들었다.
최정희는 1931년 '삼천리'에 '정당한 스파이'로 등단한 소설가다. 가난 때문에 흉가를 얻어 사는 여성 가장의 삶을 1인칭 시점으로 묘사한 '흉가'(1937)와 1939년부터 2년간 차례로 발표한 '인맥' '지맥' '천맥' 3부작이 대표작이다.
최정희는 잡지사 삼천리에 근무하고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게 되면서 미모의 여성 작가로 주목받았다. 시인 백석(1912~1996)을 포함해 당대의 문사들에게 구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 교수는 이상이 최정희를 알게 된 시기를 연작시 '오감도'를 발표한 후 금홍과 결별한 1935년 무렵이라고 추정했다. 공개된 편지에는 최정희를 향한 애절한 마음과 정신적 좌절에서 벗어나 다시 글을 쓰겠다는 약속 등이 담겼다.
"정히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품을, 너를 니즐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구 한다. 하지만 정히야, 이건 언제라도 조타. 네가 백발일 때도 조코 래일이래도 조타. 만일 네 '마음'이–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찻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듸 내게로 와다고-. 나는 진정 네가 조타."(원문 표기)
편지는 이상이 발표한 소설 '종생기'의 내용과 연관성을 띄고 있다. '종생기'에서 여주인공 '정희'는 주인공 '이상 선생'을 사랑하는 여인인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사실은 다른 남성과 깊은 관계에 있음을 암시한다.
권 교수는 "'정희'로부터의 사랑의 배반을 자신의 종생과 관련시킨 소설이 정희의 편지로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며 "최정희와의 관계를 소재로 하면서 실제로는 반대로 자신의 욕망과 그 좌절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고 말했다.
공개된 편지는 다른 편지와 유품들과 함께 향후 설립될 종로문학관(가칭)에 기증된다.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권 교수는 이 편지를 24일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열리는 '오감도 80주년 기념 특별 강연'에서 일반에 공개하고 뒷이야기를 소개한다. <뉴시스>
다음은 공개된 연서 전문.
※원래 표기에 필요시 현대어 표기 병기
『지금 편지를 받엇스나 엇전지(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안는 것이 슬품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하기 발서(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번이 내 시골 잇든 때입니다.
이른 말 허면 우슬지 모루나 그간 당신은 내게 크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닷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구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엿는지는 모루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머러지고 잇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이 알엇섯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거름이 말할 수 없이 헛전하고 외로?습니다. 그야말노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거러면서 나는 별 리유도 까닭도 없이 작구 눈물이 쏘다지려구 해서 죽을번 햇습니다..
집에 오는 길노(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우슬(웃을) 편지입니다.
“정히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됫섯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섯다. 내 이제 너와 더불러 즐거?던 순간을 무듬 속에 가도 니즐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 처름 어리석진 않엇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안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기 거울 갓기를 빌지도 모룬다.
정히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품을, 너를 니즐(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구 한다. 하지만 정히야, 이건 언제라도 조타.(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조코 래일이래도 조타.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찻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듸 내게로 와다고-. 나는 진정 네가 조타. 웬일인지 모루겟다. 네 적은 입이 조코 목들미(목덜미)가 조코 볼다구니도 조타.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히야 너를 위해 네가 닷시 오기 위해 저 야공(야공: 저녁하늘)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이 사러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엿스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엇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잇슬 줄을 알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름 약어보려구 햇슬(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엇든지 내가 글을 쓰겟다면 무척 좋아하든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름 속삭이든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두록 언잖게 하는 것을 엇지 할 수가 없엇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스면 좋겟다구 해서 쓰기로 헌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맛나고 싶다고 햇스니 맛나드리겟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 허트저 당신 잇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날 오후 다섯시에 후루사토[고향]라는 집에서 맛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네 볼따구니도 좋다’ 이상의 러브레터
천재 작가 이상(1910∼1937)은 1933년 결핵 치료를 위해 황해도 배천온천에 갔다가 기생 금홍을 만났다. 살림을 차려 행복을 누린 것도 잠시. 남성 편력을 즐기던 금홍은 어느 날 집을 나갔다. 그 만남은 소설 ‘날개’로 재탄생했다. 말년의 이상은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한 신여성 변동림과 사랑에 빠진다. 시인의 죽음으로 결혼 생활은 4개월 만에 끝났다. 김향안으로 개명한 변동림은 화가 김환기와 재혼한 뒤 평생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했다.
▷어제 본보 보도를 통해 공개된 이상의 친필 연서(戀書)의 수신인은 당시 23세의 이혼녀인 소설가 최정희 씨(1912∼1990). ‘나는 진정 네가 좋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 1935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3장짜리 편지엔 진솔한 구애(求愛)의 표현이 넘친다. 하지만 최 씨는 처자식이 있던 작가 파인 김동환을 만나고 있었다.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란 구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쓸쓸한 고백이었다.
▷문학평론가 정규웅 씨에 따르면 최 씨는 타고난 미모에 특유의 여성다움으로 일찍부터 문단의 모든 남성에게 애인이요, 누님으로 통했다. 최 씨는 파인과의 사이에 두 딸(김지원, 채원)을 두었는데 어머니를 빼닮은 자매는 소설가로 데뷔했다. 이상의 러브레터는 채원 씨가 고인의 편지를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 편지를 검토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정희’란 인물이 등장한 ‘종생기’에 대해 최 씨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추정했다.
▷이상의 편지를 읽어보면 이모티콘까지 동원한 현대의 모바일 애정 고백은 손 편지의 울림을 따르지 못한다. 시인 청마 유치환(1908∼1967)은 연서에 관한 한 아무나 흉내 내기 힘든 기록을 남겼다. 가정을 가진 청마는 남편과 사별한 여덟 살 연하의 시조시인 이영도(1916∼1976)를 만나 플라토닉 사랑을 나눴다. 5000여 통의 편지를 보낸 시인의 20여 년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로 시작하는 한국인의 애송시로 영글었다. <고미석 / 동아일보>
추기 ☞길상사의 유래 http://blog.naver.com/2009dongjin/20202238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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