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2022/01 12

삼준산과 가곡저수지

예산덕산면 복당1리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홍성갈산면 가곡저수지로 넘어가는 호젓한 고갯길을 (왕복) 걸었다. 40번국도를 타고 홍성갈산면 쪽으로 내려오다가 군계(郡界)인 가곡천을 따라 저수지 안마을인 독고개골(마을)을 여러차례 방문했지만 걸어서 둘러보는 것은 처음이다. 앞으로 삼준산(490m)을 다시 오르고, 가곡저수지를 순환(循環)하는 임도를 걸어야겠다. 01.31(월) / 7,012보 / 4.9km / 70분

복당1리 산골짜기오르기

역사서에 ‘옛 우리조상들은 산곡간(山谷間)에 흩어져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고...’이러한 기록이 보인다. 산골짜기(山谷). 산분수합(山分水合)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제멋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골을 이루니 산골(山谷)이요, 하류로 내려가면서 더 넓어져 산 고을이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산곡(山谷)으로 모여들어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왔다. 외라리, 내라리, 복당리 등 예산군덕산면의 남서쪽 산골짜기마을을 돌아보면서 우리조상들이 대대로 이어온 처절하고 유구한 삶의 역사를 생각한다. 산줄기가 높을수록 골은 깊고 더욱 길다. 복당1리의 깊은 골로 올라가 내라리와 복당리가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를 타고 제법 높이 올랐다. 다음에는 300m봉까지 올라가서 정확한 고도를 측정할거다. 어느 조상가족묘지. 8기를 함께..

나박소(외라1.2리) 걷기

고려시대지명이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껏 이어져 내려오는 곳, 신라시대부터 조선전기까지 존속한 특수한 지방하급행정구획 중의 하나인“소(所)”와 고려·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군현(郡縣)의 특수구역 “월경지(越境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곳, 나박소(乃朴所, 羅朴所)를 둘러봤다 현재의 행정지명은 외라1리·외라2리·내라리로 나누어졌다. 조선시대의 덕산군(德山郡) 나박소면(羅朴所面) 지역일 때 나박소의 안쪽(內)은 안라박소(內羅朴所)라 부른데서 내라리(內羅里)가 되었고, 바깐 쪽은 밖나박소(外羅朴所)라서 외라리(外羅里)가 되었다. 관련글: https://blog.daum.net/ybm0913/4871 (2017-09-29) 나박소(乃朴所) - 향·소·부곡(鄕·所·部曲)과 월경지(越境地) 지..

아침산책길에서 만나는 쑥솜

섣달 스무엿새 - 하현달 - 아침노을 - 오전07:30 날이 좋으면 어김없이 아침09:30분∼ 10:30분까지 한 시간 남짓 걷는다. 만보가 아니라도 좋다. 거리측정을 못했는데 4,500보 정도 된다. 목화(木花)다래에서 솜털이 피어나듯, 바싹 마른 쑥대에서 간간이 하얀 솜털이 발견된다. 떼어서 만져보니 촉감이 꼭 목화솜처럼 보드랍다. ‘목화솜’은 목화의 다래 곧 삭과(蒴果)의 겉껍질세포가 흰색 털 모양의 섬유로 변한 것이다. 삭과(蒴果)란? 열과(裂果)의 하나로, 속이 여러 칸으로 나뉘고 각 칸에 많은 씨가 든 열매를 말하는데 심피(心皮)의 등이나 심피 사이가 터져 씨가 나온다. 쑥대에서 피어난 하얀 솜털... 나는 이것이 ‘쑥솜’ 아닐까 생각했다. 이러한 ‘쑥솜’은 쑥 잎이 파랗게 무성할 때도 발견된..

나의 이야기 2022.01.28

[코리아루트] 조선 숙종은 왜 북한산에 '성(城)'을 쌓았나

숙종시대 최대의 국가 프로젝트‥. 산성 둘레 약 13km 37년간의 축성 찬·반 논쟁‥ '도성 수축' vs '산성 축성' 북한산은 삼국시대 이래, 군사 요충지로서 수도 방어기지의 면모를 갖춘 도읍을 품은 산이다. 도성을 방어하고 왕실과 도성 안 백성을 지켜 줄 명실공히 도읍의 진산(鎭山)으로 자리 잡았다. 북한산성 관성소지 및 상창지 배치도 [고양시] 대청터 현황(2020년 시굴조사) [고양시] 전체 글보기 https://view.asiae.co.kr/article/2022012304293332565 (아래 클릭) [코리아루트] 조선 숙종은 왜 북한산에 '성(城)'을 쌓았나 북한산은 삼국시대 이래, 군사 요충지로서 수도 방어기지의 면모를 갖춘 도읍을 품은 산이다. 도성을 방어하고 왕실과 도성 안 백성을 ..

2. 錦山郡의 지명유래

1. 역사기록(고대지명) ○進禮郡, 本 百濟 進仍乙郡, 景德王 改名,今因之. ○進乃郡[一云 進仍乙] ○進禮縣 百濟 進乃郡【進仍乙縣이라고도 함】신라 景德王이 進禮郡으로, 고려에서 縣令官으로 삼았다.(高麗史 地理志) ○본래 백제의 進乃乙郡이었는데, 신라에서는 進禮郡으로 고쳤고, 고려에서는 縣令으로 강등하였다 (世宗實錄地理志) ○본래 백제의 進乃郡이며 일명 進乃乙郡이다. 신라에 와서 進禮郡으로 고쳤다(新增東國輿地勝覽) 2. 錦山의 고대 역사 三韓시대 馬韓은 대략 지금의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을 지칭하는데 마한지역에 54개의 小國이 있었다. 이 54소국 중의 하나였던 백제가 점차 세력을 키워 마한지역을 아우르는 대국으로 성장하는데 삼국사기에 백제의 기원을 BC 18년으로 적고 있으니 이때를 백제가 마한의 땅에서..

1. 금산군 연혁

1) 금산군 연혁 -. 백제시대: 진내군(進乃郡) 또는 진내을군(進乃乙郡)이라 했다. -. 통일신라경덕왕 16년(757년) 全州(처음 完山州) 관할 進禮郡으로 개칭. 伊城縣. 丹川懸. 淸渠縣을 領縣 으로 두었다. -. 고려 성종 2년(983년) 江南道 南原府 관할의 進禮縣으로 개칭한다. -. 고려 성종 14년(995년) 茂豊縣이 속현으로 된다, -. 고려 현종 3년(1012년) 錦溪郡으로 승격한다. -. 고려 현종 9년(1018년) 江南道가 全羅道로 개편되면서 全羅道 錦溪郡이 된다. -. 고려 명종 3년(1173년) 錦溪郡을 분할 富利縣과 茂豊縣을 설치 한다. -. 고려 충렬왕 31년(1305년) 錦州郡으로 승격하고 知錦州事가 다스리며, 속현으로 富利縣, 淸渠縣, 朱溪懸, 茂豊縣, 珍同縣을 둔다. (高麗..

도로아미타불

자주 가는 곳이지만 처음으로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독고개(서산시 / 예산군의 경계)에서 천장사(天藏寺) 를 왕복했다. 왕복 90분! 오가며 한사람도 스치지 않은 호젓한 길. 응달진 곳에는 눈이 그대로 쌓여있고 군데군데 빙판길에 모래와 염화칼슘을 뿌린 흔적이 있다. 눈 앞에 펼쳐지는 너른 들판과 천수만, 그 너머 서해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좋다. 고적한 산사. 추위를 때리는 목탁과 독경소리. 댓돌에 가지런한 신발 한 켤레 주지스님 혼자 계신듯... 닫힌 문밖에서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조용히 돌아섰다. 일 삼아.. 운동 삼아.. 수양(修養) 삼아.. 어언 30년을 넘겨 골프연습 용맹정진(精進)중이지만 깨치지 못하고 매일 목탁을 치는 나는 도돌이표. 「도로아미타불」 ♩♪♪♬♪♬ 나는 고뇌한다. 수도..

사천1리에서 수덕산 오르는 길

덕산면 사천1리 마을회관에서 수덕산으로 오르는 산길과 내포문화숲길(원효깨달음길)의 일부구간을 걸었다. 경사가 완만한 푹신푹신한 숲길이라서 걷기에 편하고, 조금 올라가면 그리 높지 않은 암봉이 나오는데 전망이 탁월하다. 앞에 봉분처럼 봉곳한 봉우리가 암벽전망봉이다. 가까이서 본 전망봉 수덕사주차장이 내려다 보인다. 높은 봉우리가 수덕산정상 며칠 전 답사했던 광천동막길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수덕저수지 인적이 끊긴 암자건물 공원을 조성하고 있는 듯

[스크랩] 땅 이름의 뿌리와 지명유래

[세교동(細橋洞)과 잔다리] 지금은 없어졌지만 원래 이 마을 앞 냇가에는 작은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세교리 細橋里]라 했고, 우리말로 [잔다리]로 부르고 있다고 전해 내려오나, 땅이름에서 [잔]은 [작은, 좁은, 가는 細]등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좁은 들]이라는 뜻의 [잔들]이 그렇고, [가는(細)골]이란 뜻의[ 잔골]이 그렇다 이 [잔]은 뒤에 [ㄱ]의 음이 따라오는 경우는[ 장]으로 발음되어 [잔개울]이 [장개울]로 [잔가리]가 [장가리]로 옮겨 가기도 했다. 들이 좁으면 [잔들]이 되는데, 이 [잔들]이란 이름보다는 [잔다리] [잔다래] [잔다이] 등의 이름이 많다. 경북 경산군 용성면 장재리의 남쪽 / 청송군 현서면 도리의 웃마을 앞 / 경남 울산 두서면 차리의 찻골 서쪽에 있는[잔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