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 온 글

힘도, 섹스도, 암기도 네안데르탈인의 ‘발끝’

백수.白水 2012. 5. 7. 15:52

남성 퇴화 보고서 / 피터 매캘리스터 지음/ 이은정 옮김.

 

탄탄한 몸매의 남성은 섹시하다. 셔츠 위로 살짝 드러나는 가슴 근육은 만지고 싶은 충동이 생길 정도로 매혹적이다. 여성이 근육질 남성에게 끌리는 건 DNA에 새겨진 본능이다. 남성의 우람한 근육은 수컷 공작의 꼬리와 같은 성적 신호이기 때문. 만약 2만 년 전 여성이 현대 남성을 만난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성적 매력을 느끼긴커녕 이 말랑말랑한 지방 덩어리들은 도대체 뭐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들들이 왜 이렇게 퇴화한 거야?’라며.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인간, 그중에서도 남성은 역사시대 이후 조금도 발전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퇴보했다고 주장한다. 호주의 고고학자이자 고인류학자이고 또한 남성인 저자는 200만 년 전 원시인류부터 네안데르탈인, 지금도 존재하는 원시부족의 남성과 현대 남성을 다양한 종목에서 대결시킨다. 그 결과 힘과 전투, 운동, 섹스 같은 물리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음악, 암기, 육아까지 고대 남성이 현대 남성보다 우월했다고 밝힌다.

 

2004년 세계팔씨름연맹 챔피언인 알렉세이 보에보다와 네안데르탈인 여성 라 페라시에 2’가 팔씨름을 한다면, 보에보다가 팔뚝이 뚝 부러지며 패하고 만다. 두 사람의 근육량과 강도 등을 계산한 결과다. 게다가 네안데르탈인 남성의 근육량은 여성보다 50% 더 많다. 미국의 전설적 권투 영웅 무함마드 알리는 21년간 61번의 경기를 치렀지만, 고대 올림픽에 참가한 그리스 타소스 섬 출신 권투 챔피언 테오게네스는 22년 동안 무려 1400번의 경기를 했다. 16세기 중앙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농구와 비슷한 운동을 즐겼는데, 공의 무게가 무려 9kg으로 지금의 농구공보다 15배 무거웠다. 심지어 선수들은 27kg인 돌 허리띠를 차고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저자는 현대 남성들은 역사상 그 어떤 남성보다 교육을 많이 받았으니 가장 문학적이고 창의적일 것이라고 믿지만, 이 영역 또한 고대 남성들이 뛰어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일리아드오디세이를 쓴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문맹이었다. 그는 긴 서사시를 말로 짓고 모조리 외워 다시 말로 풀어냈다. 고대 사회에서 즉석으로 시를 짓고 낭송하는 행위는 중요한 문화 활동이었다. 하지만 문자가 생기면서 이 같은 활동은 힘을 잃었고 창의성도 줄었다는 설명이다.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풍성한 사례는 물론이고 책 중간 중간에 들어간 삽화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아이러니하게도 못난현대 남성과 사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육량과 공격성은 비례 관계가 있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고대 남성이 보이는 온갖 행동은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공격적이고 잔인하다. 여성에 대한 무자비한 강간으로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저자의 경고에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현대 남성)의 게으름이 우리 자신의 유전적 가능성뿐 아니라 아들의 유전적 잠재력까지 배반한다. 우리 아들도 잘 부러지는 뼈와 허약한 인대, 말랑한 근육과 뇌로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하루에 30분 이상 숨을 헐떡일 만큼 뛰고, 하루에 10분이라도 즉석으로 글을 지어 외우는 훈련을 하면 어떨까. 책의 원제는 ‘Manthropology’. 남성(man)과 인류학(anthropology)을 합친 조어다.<동아일보>

 

호주의 고고학·고인류학자인 피터 매캘리스터는 초식남(草食男), 남성의 여성화, 장식화(ornamentalisation), 무력화 등 한마디로 '남자가 약해지고 있다'는 주장이 달갑지 않았다. '현대 남성, 결코 나약하지 않다'는 내용의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았다. 자료를 모으다 보니, 이런 것이 보였다. 2000년대 이후 세계 팔씨름 대회 우승자들의 평균 팔의 힘은 과거 네안데르탈인, 그것도 여성 네안데르탈인에게조차 상대가 안 될 정도였다. 이런 증거가 ''로 몰려왔다.

 

토픽이미지 "현대 남성은 진화(進化)한 게 아니라 퇴화(退化)해왔다." 이런 결론에 도달한 저자는 집필 방향을 180도 돌렸다. '' '허세' '싸움' '운동능력' '말재주' '미모' '육아' '성적능력'으로 나눠 네안데르탈인에서 20세기 초 원시부족들, 그리고 현대의 남성을 비교해봤다.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며 고고학·인류학적 연구성과로 현재의 남성을 진단해 본 것이다. '육체적 능력뿐 아니라 성적 능력과 육아 능력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남성의 능력은 퇴화했다'며 저자는 각종 증거를 들이댄다. '그럼, 여성은?'이란 의문도 든다. 하지만 '남성인류학(manthropology)'이란 신조어까지 만든 저자는 이 책에서 오로지 남성에만 집중한다.

 

우선 육체적 강인함. 기원전 427년 그리스 아테네 의회는 에게해의 레스보스 섬에서 340떨어진 식민지 미틸레네 섬 주민들을 처형하라고 전함을 보냈다. 그런데 이튿날 의회는 명령을 철회하기 위해 두 번째 전함을 보냈다. 하루 반나절 늦게 출발한 이 두 번째 전함은 첫 번째 전함이 섬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잡았다. 저자의 계산에 따르면 두 번째 전함은 평균 7노트, 시속 약 12이상의 속도를 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막 행사 때 고대 전함과 똑같이 만든 배로 현대의 조정선수들이 노를 저었을 때 최고 속도는 7노트. 그 속도를 낸 것은 단 2~3초에 불과했다. 고대 아테네에는 이 같은 노잡이 병사가 34000명쯤 됐다. 특출한 사람들이 아니란 이야기다.

 

1907년 르완다를 찾은 독일 인류학자 아돌프 프리드리히는 현지 투치족() 평범한 남성들이 1.9m 이상 높이뛰기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선수급은 2.52m 높이까지도 넘었다. 호주 군대의 신병들은 팔굽혀펴기 40, 2.430분 내에 달려야 한다. 하지만 원나라 황실 근위대의 기준은 906시간 이내에 달려야 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로마 병사들은 하루 평균 75를 달렸고, 알렉산더 대왕의 부대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을 추격하며 11일간 하루 58~84를 달렸다. 20세기의 전설적 복서 무하마드 알리도 고대인들과 맞붙는다면 어린애 취급을 당할지 모른다. 알리는 21년 동안 61번의 경기를 치렀지만 고대 그리스 타소스의 권투 챔피언 테오게네스는 22년 동안 1400번 싸웠다. 알리는 5번 졌지만 테오게네스는 전부 이겼다.

 

이들 기록의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면 다음 예는 어떤가. 일본 교토의 렌게오인(蓮華王院)이란 사찰엔 120m짜리 복도가 있다. 이 복도에서 활을 쏴 화살을 반대편 벽에 맞히면 '적중'으로 치는 전통시합이 있다. 1987년 현대 일본의 대표적 궁수인 아시카와 유이치가 시합에 도전했다가 굴욕을 당했다. 100번을 쏘아 아홉 번 적중시킨 것. 그의 기록은 조상들의 빛나는 기록과는 비교도 안 된다. 1830년 당시 열다섯 살이던 고쿠라 기시치는 100번 쏴서 94, 1000번 쏴서 978번 적중시켰고, 1686년 와사 다이하치로는 하루 동안 총 13053회 쏴서 8133번 적중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육체적 강인함만 문제라면 그래도 낫다. 말솜씨는 어떤가. 저자는 2200만장을 넘는 음반을 판매한 미국의 대표적 래퍼 '50센트'(본명 커티스 제임스 잭슨 3)와 호메로스를 비교한다. 50센트가 쓴 가사는 대략 6000. 호메로스는 '일리아드''오디세이'를 합해 27803. 세계 최장 시간 랩 기록을 가진 영국의 래퍼 러프스타일즈는 10시간34분의 기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전부 낭송할 경우 쉬지 않고 24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산한다.

 

데이비드 베컴 이후 운동선수도 '꽃미남'이면 더 인기 있는 시대지만, 니제르의 유목민 우다베족() 남성들의 미모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우다베족 남자들은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 거울이고, 하루 평균 3시간 이상 거울 앞에서 치장하며, 잡티 없는 피부를 위해 샤프란 색 흙가루인 마카라를 구하려고 1400를 걸어가고 '미남대회'도 연다.

 

육아는 아프리카 서부 콩고 분지의 아카 피그미족 아빠를 따라가기 힘들다. 현대 미국 아빠들이 하루 평균 3.56시간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눈에 띄는 반경에서 아이들과 지낸다면 아카 피그미족 아빠들은 하루 평균 12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지낸다.

 

저자가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유전보다는 개체발생. 지금 보기엔 괴력 같은 옛날 남성들의 능력은 모두 생활습관에서 비롯됐다. 영양 한 마리를 잡기 위해 30를 뛰어다니고(아프리카 쿵족), 성인식 때 자기 키를 넘기 위해 어릴 때부터 높이뛰기 연습을 했으며(투치족), 일주일에 80시간 이상 활쏘기 훈련을 했으며(몽골 궁수), 틈만 나면 노를 저은(아테네 병사) 덕분이다. 저자는 "이제라도 그들만큼 체력을 단련시킬 각오만 되어 있다면 유전자형에 부호화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한다. "우리의 게으름이 우리 자신의 유전적 가능성뿐만 아니라 아들의 유전적 잠재력까지 배반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중으로 배신자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