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주경야독 . 비오는 날의 영농일기.

백수.白水 2012. 5. 27. 22:29

 

호박과 오이 그리고 토마토에 작은 열매가 달렸으니 며칠 후부터 따먹을 수 있겠다.

 

텃밭, 골고루 심었다. 이웃집 아주머니들 잘 가꿔놓으니 보기 좋다고, 고맙다고...’

 

처마 밑에 심어놓은 상추, 관상용으로도 훌륭한데 두 식구 먹고도 넘친다.

 

서리태 모종 266포기. 늦어도 615일 까지는 밭에 이식한다.

 

나는 논농사를 짓지 않는다. 남들이 모내기하기에 나도 모내기를 했다. 포트에 해찰한 것이다.

 

 

이곳, 관개시설이 잘돼있어 모내기는 다 마쳤지만 오랜 가뭄탓에 밭이 말라버렸다. 푸석해진 땅, 씨앗을 심어도 싹이 트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참깨가 촉이 안튼다며 며칠 전에 물을 줬지만 그래도 촉이 나오지 않으니 물을 흠뻑 주고 다시 심었다마주치면 으례 하는 말, ‘비가 빨리 와야 되는데...’걱정만 할뿐이지

하늘의 仁者함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이럴 때 우리는 하느님도 無心하시지라는 말을 흔히 한다.

도덕경에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라 했다. 자연은 인자하지 않아 만물을 제사상의 풀 강아지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말이다. 천지는 사람이나 만물에 인자하지 않아 불쌍히 여기지도 않으니, 사랑의 마음으로 때맞춰 비를 내려줄리 만무하다. 그래서 無爲自然이요, 無心이다. 자연은 스스로의 이치와 법칙대로 그저 저절로 그렇게 할 뿐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안다. 씨 뿌려 가꾸고 거두는 모든 일은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예로부터 농사의 7분은 하늘이 짓고 3분은 사람이 짓는다고 한 것이다.

 

 

25일 금요일.

이웃집에서 트랙터로 밭을 갈고 로터리 작업을 해서 고랑을 쳐줬다. 땅속을 확 뒤집었으니 촉촉해진 땅, 강한 햇볕에 겉흙이 마르기전 몇 가지를 심었다. 아내와 둘이서 오후 한나절을 부산하게 움직였지만 다 끝내지를 못했다밭 고랑의 길이가 30m 조금 넘는데, 흰콩 6, 밤콩 1, 쥐눈이콩 1, 돔부 1골 등 도합 9골을 심었다. 한골에 대략 50포기를 심었으니 450구멍에 심은 거고, 한 구멍에 콩 3개씩 넣었으니 1,350개의 콩을 파종한 것이다. 이렇게 계산하며 농사짓는 사람은 없다. 나니까 심심풀이로 셈을 한번해보는 것이지...

 

그다음 들깨모를 부은 후, 참깨 파종할 자리에 검정 비닐을 쳤다. 참깨는 매년 바람을 맞아 제대로 수확이 안 나왔고, 관리에 애를 많이 먹는지라 이번에는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농법을 내가 처음 시도해보기로 했다. 이랑을 150m로 넓게 치고, 한 줄에 13구멍이 있는 마늘파종용 비닐을 깐 것이다. 세어보니 174, 곱하기 13구멍이면 모두 2,262개의 구멍에 일일이 눈곱만한 참깨를 몇 알씩 집어넣는 일, 다해봐야 한주먹도 안 되는 씨에서 몇 달 만에 몇 말의 참깨를 얻는 일이니 튀겨도 엄청 튀기는 거다. 서로 마주 앉아서 아내는 팔이 짧으니 6구멍, 나는 7구멍을 메워나가는데 1/4쯤 메우니 날이 저물었다.

인내와 끈기, 수도하는 마음이 아니면 감히 할 수 없는 일. 무슨 일이든 치열하게 해야 청춘 아니겠는가?

이 방법 성공하면 사례를 전파할 것이다. 너 얼리....

 

 

26일 토요일,

5시에 눈을 떴는데, 같이 나가기로 했던 아내는 여전히 곤한 꿈나라다. 깨우기 안쓰러워 혼자 나갔다. 8시 반쯤 되어 참깨 뿌리는 일이 끝났지만, 이제 심은 자리에 물주는 일이 남았다. 농약뿌리는 통에 물을 담아서 약한 수압으로 물을 줘야한다 500m쯤 떨어진 거리니 집에 들어와서 휘딱 먹고 가도 되지만 집에 전화해서 밥을 내오라 했다. 오랜만에 소주를 곁들여 먹는 들밥의 맛은 농부의 특권이다. 

 

20리터짜리 질통으로 5통을 뿌리고 나니 오후 1시쯤 일이 끝났다. 이웃집에서는 그 가까운 곳에 밥을 내갔다고 배꼽을 잡는다. 저녁 해질 무렵에 밭에 나가보니 물 뿌린 흔적도 없이 바싹 말라버렸다. 내일 해가 강하면 다시 물을 주겠노라 맘을 먹고 들어왔다.

 

 

27일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날이 잔뜩 흐리다. 물 줄 준비를 하고 밭에 나갔다. 비가 내려줄지 날이 개버릴지 하루의 천기를 살피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좀 더 지켜보자는 생각으로 땅콩, 옥수수, 수수에 비료를 뿌리고 풀을 뽑아주는데 11씨쯤 되니 천지가 캄캄해지며 우르릉 쾅쾅 하늘이 운다.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흠뻑 내렸다. 그 만큼 열심히 일했으면 됐으니 그만 쉬라는 하느님의 은총, 한 보름은 느긋하게 설렁거려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