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 오늘 한건 올렸소이다.
아내는 금요일 날 큰오빠의 생신을 기회삼아 친정인 도고로, 공주, 천안으로
한 바퀴 쭈욱 돌아오겠다며 3박4일 일정으로 충청도여행을 떠났다.
오늘은 서울 양평동에서 초등학교 동창부부모임이 있는 날.
나 혼자서 오전 9시에 집을 나섰는데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장마철 폭풍전야의 고요함인가? 모처럼 하루 종일 맑고 쨍한 햇볕이 따갑다. 이웃집들 그동안 미뤄놓았던 참깨 털기에 한창이다. 나도 마음이 급해서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마당에 세워놓은 참깨를 털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지났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온다.
엊저녁에 닭을 삶았다고 하더니 어떻게 보관해놓았느냐고?
아침에 내가 끓여놓고 나갔으니 이상이 없을 거라고... 저녁에 다시 끓여 먹을 거라고 했더니
그러면 안 된단다. 당장 끓여야 된다고...
내가 알아서 잘해먹는데도 아내는 매번 나를 못 믿고 걱정을 한다.
집을 비우는 동안의 끼니수대로 밥공기를 담아 냉장고에 넣어 놓고는 전자레지에 덥혀 먹도록 준비를 하고,
반찬도 이것저것 만들어 냉장고를 꽉꽉 채워놓으니 내가 헷갈릴 정도다.
그래놓고도 못미더운지 이렇게 전화로 나를 조종하는 것.
얼른 들어와서 가스레인지에 불을 댕겨놓고는 나가서 다시 깨 털기에 열중했다.
날이 어두워지니 마음은 급하고 조금 있다가 불을 끌 요량이었다.
그런데 한참 후 매캐한 냄새와 함께 하얀 연기가 출입문으로, 앞과 옆창문으로 안개처럼 밀려 나온다.
아풀싸∼일이 터졌다. 뛰어 들어가 보니 연기가 꽉 들어차서 앞이 안보이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전자레인지 스위치를 끄고 냄비에 물을 부었더니 지글거리며 수증기가 거세게 올라온다.
닭고기는 얼마나 탔는지 흔적도 없고 까만 숯덩이만 조금 남아있다.
가스레인지 위에 달린 환풍기를 돌리고, 화장실 환풍기 돌리고, 출입문 앞에 선풍기 2대를 가져다 놓고 최대풍속으로 계속 돌렸다.
일이 없었던 것처럼 냄비를 감쪽같이 닦아 놓아야 하는데, 예전에도 전과가 있기에 나는 안다.
아무리 철수세미로 문질러도 불타서 그을린 흔적은 원상회복이 안 된다는 사실을...
관여하지 않았다면 내가 알아서 순차적으로 잘 했을 텐데... 이건 완전히 아내 탓 아닌가?
연기 잘 빠지라고 출입문롤스크린방충망을 열어놨더니 파리가 새까맣게 들어와서 벽에 붙어있다.
배는 고픈데 저녁도 못 먹고 한참동안 파리를 때려잡아야 했다.
오늘 또 한 번 나의 겉 넘는 기질이 사고를 부르고 말았다.
농사와 집안일을 혼자 감당하기엔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언제 들어왔는지 귀뜨라미 한 마리가 찌리릭 찌리릭대며 구슬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