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괘암과 원당리적벽의 겨울과 여름.
새는 빈 둥지를 지키지 않는다.
괘암(卦巖)
강이 얼어붙어 지금은 운행을 못하고 있지만, 임진강두지나루(고려시대의 장단나루)를 출발한 황포돛배는 수심이 얕아진 자장리 괘암 앞에서 回航을 하고 만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호로고루성, 그 다음에 고랑포적벽이 나오는데...하기야 고랑포 주상절리는 군사지역으로 사람도 배도 들어갈 수도 없다.
강 南岸인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에 있는 괘암과 마주하는 北岸에는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3리) 주상절리절벽이 있다. 황포돛배를 타면 괘암과 원당3리주상절리를 모두 감상할 수 있지만 유람선관람이라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 주마간산으로 휘익 스쳐 지나치고 만다.
원당3리 주상절리절벽위에 서면 멀리 괘암이 보이지만 너무 멀어 흐릿하다. 강 건너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로 들어가서 강으로 내려가면 될듯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하다. 군부대에서 괘암보다 조금 높은 곳을 따라 철책을 쭉 쳤기 때문이다.
원당3리 주상절리도 北岸인 연천군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가 없다. 강 건너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로 가야 보인다. 그러나 역시 멀어서 흐릿하다.
두 곳을 가까이서 천천히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과 같은 결빙시기에 얼음판위로 접근하는 길이다. 그러나 아직은 얼음이 위험하다. 조심조심 원당3리 주상절리만 가까이 대면했다.
괘암(卦巖)의 卦는 점(占)괘, 걸다, 걸치다, 매달다는 뜻이 있다. ‘점괘바위’가 아니라면, 강으로 떨어지지 않고 매달린(걸린, 걸쳐있는)것처럼 보이는 형상 때문에 ‘괘암’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수도 있다. 괘암(卦巖)이라는 이름은 미수(眉叟) 허목(許穆)선생(1595 ~ 1682)이 붙였다. 문집인“기언별집” 제9권 ‘괘암의 제명기’에 따르면 조선 현종9년(1668)여름에 이곳의 괘암으로 찾아가 「괘암(卦巖)」이란 두 글자와 「미수서(眉叟書)」라 쓰고 돌에 새겨 題名을 하였다고 한다.
『금상 9년(1,668년) 여름에 정군 도형(鄭君道泂)이 나에게 괘암에 제명(題名)한 고적(古跡)에 대하여 얘기하기를 “지금으로부터 3백 년이나 오래된 것이요,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ㆍ도은 이숭인(陶隱 李崇仁,1347년∼1392년)ㆍ서하 임춘(西河 林椿, 1180년 전후)의 옛집이 위아래에 있는데, 강가에 사는 늙은이들이 서로 전해 오기를 모두 볼만하다 합니다.”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서 정군을 따라 구경을 가는데, 또 김하규(金夏圭)ㆍ고응문(高應門) 두 친구도 따라나섰으며, 강가에 사는 김 노인 등은 내가 본다는 말을 듣고 같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 노소간(老少間) 10여 인이 함께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내려가 괘암에 대니, 그 밑에 여러 바위와 긴 강과 흰 모래가 있고 이따금 높은 절벽이 강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 괘암이 가장 기절(奇絶)하여 깎아 세운 듯하였다.
낚시꾼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어릴 때에 절벽 위에 올라가 보면 이끼 사이로 근근이 글자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알아볼 수 없게 된 지가 벌써 60년이나 됩니다.”하였다. 나는 그 밑에다 크게 ‘괘암’이라는 두 글자를 쓰고 또 ‘미수서(眉叟書)’라 쓰고 돌에 새겨서 괘암에 제명하는 고적임을 표시했다.』
기언별집에 따르면 미수 허목선생이 괘암을 찾았던 1,668년 그 당시까지만 해도 그 곳 사람들은“1300년대 후반(고려 말)에 괘암이 있는 이곳에는 고려 말의 문인인 목은 이색과 도은 이숭인 등의 옛집이 있었다.”는 口傳을 전해줄 정도였고, 1,600년대 초반까지도 괘암에 옛 글씨가 새겨져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하던 것으로 보아 이 일대는 이름난 古跡이었던 듯하다. 마멸되어 버린 옛 글씨가 주역의 괘(卦)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천군 원당3리 주상절리절벽위에서 본 괘암의 모습 <2013.6.15일>
저 언덕 위 어느 곳에 이색과 이숭인 그리고 서하 임춘의 집이 있었으리라.
<사진: 파주문화원>
원당3리 현무암주상절리
파주시 적성면 자장리 괘암이 있는 산등에서 본 원당3리 주상절리모습, 2013.6.21일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철원을 두고 “들 가운데 물이 깊고 검은 돌이 마치 벌레를 먹은 것과 같으니 몹시 이상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곳 임진강도 들 가운데 물이 깊고, 벌레 먹은 돌이 많다. 철원 한탄강이나 이곳 임진강의 현무암이나 모두 평강의 오리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서 만들어진 돌이다.
구멍이 뚫리지 않은 현무암도 많다.
급류로 깎인 이곳 절벽의 퇴적물은 반대편인 고랑포앞 강의 남쪽바닥에 드넓은 들판을 만들어 놓았다.
꿀럭 꿀럭... 희미하게나마 베개용암의 흔적이 조금씩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