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선산(先山)에서
고향마을 국도변에 있는 선산. 앞으로 묘를 쓸 것이냐 말 것이냐... 호불호를 떠나서 조상의 산소가 있기에 가끔씩이라도 고향을 찾게 된다. 부모님 산소자리에는 아버님과 어머니 두 분의 묘소, 숙부의 묘소와 92세 되신 숙모님의 시표자리, 5형제 중 맏이인 큰 형님 내외분의 묘소가 있고, 5형제 중 막내동생이 일찍 죽어 화장 후 뼛가루를 부모님 산소위에 뿌려 주었다. 산소 바로 옆에 사철 마르지 않는 옹달샘이 있어 들판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다.
조부모 산소자리에는 조부모내외분이 합장되어 있고, 그 옆으로 둘째 형님(75세)의 시표자리가 있으며, 다시 그 옆으로 작은 할아버지와 작은 할머니 두 분의 묘소가 있다.
작은 할아버지는 결혼 후 딸을 하나 낳았는데, 일제시대 때 작은 할머니와 딸을 남겨두고 여자 하나 만나서 만주로 들어 가셨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을 뿐 몇 십 년간 소식이 끊겨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9년도 만주땅에서 후손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1남1녀를 보신 것, 그 쪽 분들을 한국으로 초청해서 해후를 했고 이곳에 묘를 섰다.
조그마한 밭뙈기가 있어서 '애기밭골'이라고 했다. 계곡으로 맑은 물이 흘렀고 가재도 많았었지만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는다. 오른쪽이 동네산인데 애들이 죽으면 가져다 대강 묻는 곳이라서 항상 으시시하게 생각하던 곳이었다.
작은 할아버지, 아들과 작은 딸이 만주에서 태어 났고 지금도 그곳에 산다.
둘째 형님 시표
할아버지와 할머니 합장
옹달샘
아버지와 양 옆으로 어머니 두 분
큰 형님 내외분
작은 아버지 묘소와 작은 어머니 시표
지형이 많이 변했다. 요 근처 보또랑에서 내가 태어 났다.
시들어 버린 목련꽃도 무리지어 있으니 아름답다.
야생 조팝나무. 지금은 조팝나무라고 부르지만 우리 어릴적엔 모두 싸리나무로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