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밭농사가 시작되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내 생체시계는 매일 아침 5시면 자동으로 나를 깨운다.
그 시각에 먼동은 트기 시작하지만 눈이 번할 정도는 아닌데, 꼭 그때가 되면 오줌이 마려워서 더 참질 못하고 일어나게 되는 것. 화장실로 갔다가 컴퓨터도 켜보고 둔전거리다보면 5시 반쯤이나 되어 날이 훤히 샌다.
밖에 나가서 天氣를 살핀 다음에 비료, 농약, 농기구를 챙겨 실고 6시전에는 어김없이 밭으로 나간다.
아침 일찍 마을스피커에서 허스키한 이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오늘부터 격일제로 양수펌프장에서 물을 수로로 내려 보낼 것이니 못자리와 모 심을 논을 잘 관리하란다.
임진강변인 이곳은 현무암용암대지위에 토사가 퇴적되어 이루어진 농경지로 양수펌프장이 없다면 거의가 천수답이라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논농사는 4월15일경에 못자리를 하고, 한 달 후인 5월15일전후로 모내기를 하게 되지만 본격적인 밭농사는 5월5일전후로 시작이 된다.
엊그저께 땅콩, 옥수수, 고구마 등 5월초에 심을 작물 때문에 예닐곱 골을 먼저 째주기에 땅이 마르기전에 바로 비닐 씌우는 작업을 했다. 트랙터가 밭골을 치는데 얼마나 가문지... 흙먼지가 황사 날리듯 일어 부옇게 시야를 가린다. 일요일과 월요일오전에 비가 내린다지만 강수량은 평년(강수량 : 2~6mm)보다 적겠다하니 병아리 오줌만도 못할듯하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비를 맞힌 후에 비닐을 치겠다고 하는데,
나는 비가 땅을 적시는 것보다 갈아놓은 땅의 마르는 정도가 더 심할 것 같아서 바로 비닐을 쳐버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나가서 심을 자리에 빗물이 스며들도록 구멍을 뚫어 주었다.
어차피 물을 주고 심어야하기에 이러나저러나 복불복이다.
밭고랑의 길이가 35m로 4골을 씌웠으니 고작 140m밖에 안되지만 비닐 씌우는 작업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매년 아내는 비닐을 앞에서 끌면서 펴고, 나는 삽으로 이랑에 흙을 날려서 비닐이 바람에 휘익 날리는 것을 방지한 다음에, 한쪽고랑의 흙을 파서 한쪽을 누르고, 다른 쪽으로 넘어가서 다시 흙을 파서 그쪽을 덮어 누르는 식으로 비닐을 치느라 헉헉대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번엔 한쪽은 자기가 덮어나가겠단다. 과연 삽질을 해낼 수 있을까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조금 해보니 곧잘 한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번엔 아주 수월하게 비닐을 씌웠다.
이곳동네사람들은 고추농사를 했다하면 보통 3,000포기다. 비닐두루마리(470m) 2개가 소요되는데, 늙은 부부 둘이서 940m나 되는 이랑에 비료와 농약을 뿌리고 땅을 고르고 비닐을 씌우는 것을 보면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아무튼 관절염에 변비, 불면증, 알레르기성비염을 달고 살던 아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해진 것만으로도 우리의 시골생활은 성공작이다.
아내는 농사를 300평정도만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딱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여튼 500평 밭농사로 모든 농산물이 넉넉하다. 내일 초등학교동창들이 부부동반으로 우리 집에 모인다.
우리 집 가마솥으로는 두부를 반말(콩4kg)밖에 못한다. 아는 집에 2말(16kg)짜리 솥이 있어서 오후에 그곳에 가서 두부를 하기로 했다. 많이 해서 여기저기 이웃과 나누고 친구들도 실컷 먹일 요량이다.
아내는 쑥 개떡을 찌고, 고사리 물쑥나물 돌미나리를 삶아서 무치고, 열무김치와 오가피장아찌를 담고, 내일은 도토리묵을 쑤겠다며...장을 보고 준비하느라고 아침부터부산하다.
보다시피 땅이 이렇게 바싹 말랐다.
빗물을 받아 보려고 아침에 구멍을 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