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은행나무 치마입히기와 기풍주술(祈豊呪術)

백수.白水 2014. 12. 13. 07:09

 

추운겨울날, 먹이를 찾던 겨울텃새들이 떼 지어 옆집은행나무로 날아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나는 텃새 중에서 참새는 확실하게 알지만 다른 새들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한다. 이 새들은 참새보다는 크고 더 통통하다. 콩새인지? 멧새인지? 박새인지? 잘 모르겠다.

 

 

 

 

 

 

은행나무 치마입히기

 

밑동의 둘레가 150cm나 되는 옆집 은행나무! 까치와 참새 등 온갖 잡새의 놀이터로, 그리고 사냥감을 찾는 전망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저 자리에 서있을 날도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내년 봄쯤이면 서서히 말라죽거나 베어질 것이다.

죄목은 첫째가 열매가 열리지 않는 수나무라는 것이고, 다음으로 이웃집의 햇볕을 가릴 뿐만 아니라, 가을이면 낙엽이 이웃집으로 떨어져 민폐를 끼치고, 때로는 수로가 막혀 애를 먹기도 한다는 점이다. 더구나 집 가까이에 큰 나무가 있으면 벼락피해가 염려되기도 한다. 그래서 옆집 주인영감님이 나무를 없애기로 마음먹고 일단 물을 빨아올리지 못하도록 밑동을 삥 둘러 에우고 제초제를 부어놓았다.

 

 

사진을 보면 에운 자리 위쪽에 상처가 치유되어 복원된 흔적이 보이는데 이게 치마를 입혔던 자리란다.

나무에 새김질을 하듯 칼이나 톱 또는 끌을 이용해서 (한자로 입 벌릴 감이며 부수로는 위 터진 입구’)형태로 도린 후 잘린 껍질을 들어 올리면 치마를 입은 형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 놓으면 수나무가 암나무로 변해 은행이 열린다는 속설을 믿고 외과수술 즉 성전환수술을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고...

이것이 소위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주술(祈豊呪術)의 한 형태다.

 

이러한 주술행위는 외국에서도 발견된다. 파파야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암수 딴 그루로 라오스에서는 수나무로 의심되는 파파야어린나무 허리에 여자치마를 둘러두면 암나무로 바뀐다는 속설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치마를 입힌 파파야 수나무에서 암꽃이 달려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한국 여행객의 목격담도 있다.

 

 

기풍주술(祈豊呪術)

 

과일나무 기풍 주술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과일나무시집보내기[嫁樹]이다. 이와 같은 의미로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섣달그믐에 다양한 양식의 기풍 주술이 전승되는데, 이것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나무에 특정한 물질을 부착하거나 투여하는 행위로 과일나무시루물주기, 감나무에 오줌붓기, 감나무에 좁쌀밥붙이기, 묵은거름주기가 있다. 여기서 시루물은 팥을 쪄낸 물이기 때문에 팥의 속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결과(結果)를 방해하는 나쁜 기운을 쫓아내는 기능을 한다. 또 오줌은 남성의 것이라는 점에서 그것의 투여는 성적 결합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좁쌀밥도 조의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것이다. 부산에서는 이듬해에 과실나무에 과실이 많이 열리고 잘 되라는 의미에서 섣달그믐날 밤에 아이들이 발가벗고 과실나무 주위를 돌며 오줌을 누거나, 남자 변소에 가서 남몰래 오줌을 떠서 과실나무 주위에 붓는데, 이때 나무에 더해지는 물질은 제액, 성적 결합, 풍요의 상징을 지닌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과일나무위협하기가 있다. 경남 거제시 하청면 어온리 장곶마을의 경우, 섣달그믐에 가장(家長)이 감이 잘 열리지 않는 감나무에 가서 도끼로 겨누며, “감도 안 열리는 나무 비뿔란다(베어버리겠다).”라고 위협한다. 혹은 실제로 세 번 정도 가볍게 찍기도 한다. 그러면 옆에 있던 아내가 명년에는 많이 열릴기요. 놔두소.” 하고 말린다. 이렇게 하면 감나무에 감이 많이 열린다고 한다. 이처럼 도끼로 나무를 찍는 시늉을 하거나 상처를 내는 것은 위협을 통해 현실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민간신앙에서의 한 주술 방식에 해당한다. 한편, 과일나무위협하기는 대부분의 경남 지역에서 정월대보름에 행하는 풍속이다.

 

그리고 나무에 치마입히기가 있다. 이것은 나무의 여성성을 적극 인정해줌으로써 더 많은 결과물을 보장받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경남 양산에서는 섣달그믐날 과일나무 기둥에 베로 만든 치마를 둘러 입히면 이듬해에 과일이 많이 열린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것이 반드시 섣달그믐에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경남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이구마을의 경우 과일농사를 짓는 농가에서는 12월에 과일나무에 베로 만든 치마를 둘러 입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과일나무시집보내기가 있다. 이것의 의미는 가수(嫁樹)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남 남해군 창선면 상죽리 하죽마을에서는 과일나무 가지 사이에 강 건너(바다 건너 다른지방)의 몽돌(둥글고 반들반들한 돌)을 섣달그믐 저녁에 끼우면 과일이 많이 열린다고 믿었다.

 

한편 경남 지역에서는 해걸이(한 해 많이 열렸다가 이듬해에 많이 열리지 않는 것)하는 감나무에 섣달그믐 저녁에 한 사람은 도끼를 쥐고 한 사람은 맨손으로 따라가서, 한 사람이 도끼를 찍으면서 많이 열래?” 하면 따라간 사람이 많이 열겠습니다.” 하고 말리고, 또 도끼로 찍으면서 안 떨어질래?” 하면 안 떨어지겠습니다.” 하고 말린다. 그리고 뿌리에 오줌을 한 동이 부어주고 서숙밥(좁쌀밥)을 나무에 붙인다. 감이 익지 않고 풋감일 때에 떨어지는 감나무에 찰떡을 붙이고 뿌리 둘레에 구덩이를 파서 오줌을 붓고 흙으로 덮는다. 이렇듯 기풍 주술은 두세 가지의 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점이 특이한데, 이는 개별적인 행위로 보고된 것과는 다른 양상이라 하겠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