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왓 프라깨우. 멩라이왕 동상 / 치앙라이
왓 푸라깨우(Wat Pra Kaew)는 언제 설립되었는지 잘 모른다. 왓 푸라깨우의 원래이름은 왓 빠이아(Wat Pa Yia)로 ‘대나무 숲 사원’이라는 뜻이다. 1434년 탑에 번개가 쳤고, 에메랄드불상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사원이름을 왓 푸라깨우라고 부른다. [사원입구 안내판]
이곳의 에메랄드불상은 복제품이다. 원 불상은 방콕에 있는 왕실사원 '왓 프라깨우'에 안치되어 있다.
꽃모양의 여러 장식들 <본당 내>
나란히 전시된 불상들 <본당 앞>
파란만장한 에메랄드 불상, Phra Kaew(프라 깨우)의 流轉
태국 최고의 보물인 에메랄드불상은 폭 48.3cm, 높이(옥좌포함) 66cm의 좌불상(座佛像)으로 본래 초록빛 玉불상이다. 불상을 처음 본 승려가 잘못알고 에메랄드불상이라 부르게 된 것이 그만 이름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 이 불상은 처음 인도의 승려 가가세나(Nagasena, 那先)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 불상은 당시 인도에서 발생된 내전을 피해 실론(지금의 스리랑카)로 옮겨진다.
⊙그후 11세기에 이르러 버마를 통일한 바간(Bagan)왕국의 아누릇(1,044년〜1,077년)왕이 상좌부(上座部)불교 즉 소승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며 스리랑카에 프라깨우(Phra Kaew)를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불상이 옮겨지는 과정에서 풍랑을 만나 잃어버리게 된다.
⊙그 후 불상은 엉뚱하게도 캄보디아의 바닷가에 있는 한 마을에서 발견되었다. 범상치 않은 이 불상은 자신들의 제후에게 바쳐졌고, 캄보디아 왕은 이 불상을 당시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던 타이족의 아유타야왕국(1,350년 〜 1,767년)에 선물로 바친다. 왕은 이 불상을 아유타야 왕국 캄펭펫(Khamphaengphet)의 ‘왓 프라께오(Wat Prakeo)’ 사원에 봉안하였다.
⊙ 그러나 이 불상은 아유타야가 버마의 침공을 받으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 이렇게 사라졌던 불상은 거의 100여년이 지난 1,434년 어느 날, 치앙쎈의 폭풍우로 씻겨 내려간 흙더미 속에서 [ 일설에는 치앙라이의 왓 프라깨우(원래 이름은 대나무사원이라는 뜻의 왓 빠이야였다.)에 있는 쩨디가 번개를 맞아 파괴되면서] 스투코(stucco, 하얀 회벽)로 덧칠해진 채 긴긴 잠에서 깨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석고가 벗겨지고 玉이 드러나자, 전설속의 에메랄드불상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 이때부터 이후의 행로는 역사기록으로 남아있다. 불상은 치안센에서 당시 란나왕국의 첫 수도였던 치앙라이(Chiang Rai)로 옮겨졌다.
⊙ 란나왕국(1,259년 〜 1,558년)의 삼팡켄(Samfangkaen) 왕은 이 불상을 수도인 치앙마이로 옮기고자 코끼리를 세 번이나 보냈으나, 코끼리가 매번 치앙마이가 아닌 람팡으로 람팡으로 방향을 잡자 이를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1,436년 람팡에 있는 왓 프라깨오 돈타오(Wat Phra Kaew Dontao)에 모셨다. (이 불상은 1436년부터 1468년까지 32년간 이곳에 모셔졌다)
⊙ 이 불상은 1468년, 다시 란나왕국의 강력한 왕 틸로캇(Tilokat)에 의해 왕국의 수도인 치앙마이로 옮겨져 왓 쩨디 루앙의 쩨디 동쪽 벽감(壁龕)에 보관되면서 치앙마이왕국의 수호상이 되었다. (1,468년 〜 1,551년까지 83년 동안 보관 됨)
⊙ 83년 동안 란나왕국을 지키던 타이민족의 수호상, 에메랄드불상은 1,552년에 타이민족의 손을 떠나 라오족의 손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의 정세를 보면, 태국중북부지역은 란나왕국, 라오 지역은 란쌍왕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란나왕국의 공주와 란쌍왕국의 왕자 포티싸랏(Potthisarat)이 결혼하면서 1545년 〜1548년까지 두 나라는 연합 상태를 이루게 된다.
그러던 중 1551년에 란나왕국의 틸로캇(Tilokat) 왕은 아들이 없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란나왕국의 공주와 란쌍왕국의 왕자인 포티싸랏(Potthisarat) 사이에는 유일하게 한 명의 왕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유명한 Lao의 셋타티랏(Setthatirat) 왕이다. 란나 왕국의 각료들은 왕자를 치앙마이의 왕자로 불러들였다. 셋타티랏 왕자는 틸로캇 왕을 이어서 란나 왕국의 왕위를 물려받게 되는데 그의 나이 15세 때의 일이다.
⊙ 1,552년, 셋타티랏의 아버지인 란쌍왕국의 포티싸랏 왕이 죽자 셋타티랏은 란쌍왕국으로 돌아갔고 푸라깨우 불상도 왕국의 수도인 루앙푸라방으로 옮겨버렸다. 불상을 가지고 곧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떠났으나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불상도 다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불상은 이때부터 무려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타이족의 손을 떠나 라오족들의 수호상으로 추앙받으며 라오스에서 보관된 것이다.
⊙ 1,563년 버마가 라오스를 침공하자 라오의 셋타티랏왕은 비엔티안에 Wat Phra Kaew(왓 파 깨우)를 짓고, 1,565년 이곳에 에메랄드불상을 봉안했다. 지금의 라오스 프라깨우는 사원이 아니라 법당만 남아있기 때문에 호 프라깨우(Ho Phra Kaew, 호 파깨우)로 불리며, 라오스에서 영문표기는 Phra Kaew 또는 Phra Keo를 혼용하고 ‘파께우’로 발음하기도 한다.
⊙타이족의 톤부리왕국(1,767년〜1,782년) 탁신왕은 버마를 내쫒아 아유타야의 옛 땅을 회복하고, 크메르지역과 라오지역까지 세를 넓혔다.
⊙1779년 탁신왕은 라오의 위앙짠(지금의 비엔티엔)을 공격하여 파깨우(Pha Kaew)사원에 보관 중이던 프라께우(Phra Kaeu, 에메랄드불상)와 라오족의 보물인 황금불상 파방(Phabang)을 빼앗아 톤부리에 있는 왓 아룬(새벽사원)에 보관하게 된다.
⊙그후 톤부리왕조 다음에 일어난 차끄리 왕조의 라마1세는 1784년에 왕실사원인 ‘왓 프라께우’를 건설하고 프라께우를 이곳으로 옮겨 지금까지 태국최고의 보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라오족의 보물인 파방은 1867년 라오스에 반환되어 1975년부터 루앙프라방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chanwoolee/220231308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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멩라이왕(Mengrai, 1239-1317) 동상
‘백만 논(畓)의 왕국’이란 뜻의 란나왕국을 건설한 멩라이왕(Mengrai, 1239-1317)은 중국위안족인 따이 위안(Tai Yuan)에 의하여 지금의 치앙쎈지역(치앙센 근처라고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에 세워진 녹양((Ngon Yang)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22세에 부왕의 뒤를 이었고, 1262년에 치앙라이에 도시를 건설하여 치앙콘, 판 등 북부타이의 분지와 작은 평야에 흩어져있던 작은 토후국가들을 통합하여 왕국의 영토를 넓혀나갔다.
호주에 갔을 때 확인했는데... 똑 같다. ‘하와이 무궁화’가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