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평산(坡平山)에 오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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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번 이러한 방법을 쓰는 이유는 Image Popup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작년 3월22일, 산 북쪽 파평면 늘노리의 체육시설을 출발해서 파평산을 오르다가,
시계가 너무 흐려서 팔각정자까지 갔다가 그냥 내려오고 말았다.
동쪽인 법원읍 웅담리 '버들메'마을에서 보는 파평산이다. 세 개의 봉우리 중, 왼쪽(구축물 보임)이 主峰(西峰,496m), 가운데(구축물 보임)가 中峰, 오른쪽이 동봉(東峯)이다.오늘은 웅담리 노파동을 출발하여 - 안부(鞍部) - 중봉 - (다시)안부 - 주봉 - (다시)안부 - 노패동으로 내려왔다.
파평산(坡平山)
파주시 파평면의 동부에 위치한 고도 496m의 산이다. 파평은 본래 백제의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 또는 額蓬縣)이었는데 고구려가 점령하였다가 뒤에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757년(경덕왕 16)에 파평이라 고쳐 내소군(來蘇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파평은 파주본산(本山)으로 불리는 파평산과 영평산(鈴平山)에서 나온 것이다. 파주목(坡州牧)은 조선 초기에 파평현(坡平縣)과 서원현(瑞原縣)을 합해서 만든 곳이다. 파평 윤씨는 이곳에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임진강 하류에 있어 파주에서 적성(積城)ㆍ마전(麻田) 등을 잇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파평산에는 옛 성이 있었고, 고랑포(高浪浦)는 삭녕(朔寧)과 통하는 나루터였다. 지금의 파평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파산서원(坡山書院)은 파평면 눌로리에 있는 서원으로 1568년(선조 원년)에 세워져 1650년(효종 원년)에 사액되었다. 성수침(成守琛)과 아들 성혼(成渾) 등을 배향하였다. 파주읍 향양리에 성혼의 묘가 있다.
노파동 공군부대 입구 주차장
위로 보이는 주봉(496m)은 그리 높지 않으나, 군사시설이 있어 정상까지는 오르지 못한다.
산 동쪽으로 보이는 버들메∙수작골(왼쪽)과 웅담리(오른쪽). 동네 뒷쪽 산을 넘으면 무건리다.
남산제비꽃
산괴불주머니
올라가면서 정상을 자꾸 쳐다보게 된다.
개복숭아꽃
양지꽃
민들레
가운데 하얗게 보이는 길이 ‘넘어말’에서 법원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보인다. 적성-불광동을 운행하는 30번 버스를 타고 다닐 때 흘러나오는 ‘다음은 ’넘어말‘입니다.’라는 안내멘트를 한동안은 ‘영어마을’이라고 잘못 알아듣고 다녔다. 파주영어마을은 이곳과는 동떨어진 헤이리 예술마을 쪽에 있는데 말이다.
노란제비꽃
작년 한 해 동안 산야를 누비면서 눈에 띄는, 야생화를 포함한 430가지의 꽃을 [식물도감]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나다...순으로 분류 정리하여 올려놨는데, 지금 와서 보니 여러 군데에 사진이 뜨지 않고 ×표 배꼽만 보인다. 보수를 해야 되지만 귀찮아서 손을 못 대고 있다.
김신조 루트! 1968년 1.21사태. 1/18일 임진강을 도강한 김신조일당은 파평산을 넘어 1/19일 05:00에 1차숙영지인 초리골에 도착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나무꾼4명을 5시간동안 억류하고 있다가, 찬반투표 끝에 풀어준다. 나무꾼들은 이날 21:00에 마을이장을 통해 경찰에 신고한다. 1차 숙영지로 갈 때 통과한 이곳은 중봉 정상이다.
김신조루트 ▶ http://kangshh3377.blog.me/220291606840
저기 동봉(449m)이 지척인데... 다음에 다시 오르기로 하고 뒤돌아 정상(496m)인 서봉으로 발길을 옮겼다.
중봉에 있는 군시설물
중봉에서 보는 정상.
왼편부터 장파리, 금파리, 늘로리, 덕천리, 식현리가 보이는 Wide Angle 랜즈로 찍은 사진.<웹에서 스크랩>
정상 가까운 곳에서 내려다본 서쪽으로 파평면 장파리(長坡里, 긴등마루). 임진강을 건너
민통선으로 들어가는 다리 ‘리비교’가 보인다. 사전에 허가를 받으면 저 다리를 건너 ‘허준 묘’로 갈 수 있다.
며칠 전에 미타사 위쪽에서 산불이 발생해 정상 턱밑까지 타올라와 큰 일 날 뻔했다고...
아직까지도 그을음냄새가 진동한다. 군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정상 가까운 곳에서 본 중봉
웅담리 노패동
내려오면서 다시 보는 정상
멀리 감악산이 보인다.
버들메 마을에서 보는 파평산
동봉이 오른쪽으로 흘러내린 곳에 포수바위가 있고 그 위 왼쪽으로 몇 년째 아직도 골프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곳이 늘노천의 상류다. 이 물은 늘노리의 파산서원 앞을 지나 임진강으로 흘러든다.
우리말 땅이름
파평산을 둘러 주변에는 고드내(直川), 곰소(熊潭),수레네미, 늘노리, 버들메, 수작골, 거르메, 빈배이... 등 아직도 우리말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고드내는 그 의미를 쉽게 알아 차릴 수 있다.
‘곰소’는 신성함을 뜻하는 ‘곰(금,감,검 등으로 통용)’에 웅덩이를 뜻하는 ‘소’가 더해진 말이다. 이곳의 낙화암 아래 연못으로 윤관의 애첩 곰단이[熊女]가 빠져 죽은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수레네미’는 ‘수레너미’와 같은 말이다. 수레너미는 옛날에 수레가 넘어 다니던 고개라 하여 부르던 이름으로, 물이 넘으면 무너미(水踰)요, 수레가 넘으면 수레너미(車踰嶺)다. 전국의 여러 곳에 비슷한 지명이 보이는데, ‘수레너미고개’ 또는 한자화하여 ‘차유령(車踰嶺)’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곳의 ‘수레너미고개’는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거미울에서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로 늘로천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늘노천(訥老川)은 본래 직천리 앞에서는 고드내, 늘로리 파산서원(坡山書院)앞에서는 쇠내(牛溪)등 부분칭(部分稱)으로 불려오다가, 후에 하류에 있는 마을인 늘노리(訥老里)에서 이름을 따와 ‘늘노천’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부터 전칭(全稱)으로 사용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부분칭이 점차 사라지면서 전칭으로 불리어지게 되는 것은 한강이나 금강, 임진강 등 큰 강은 물론이고 지방하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늘노’라는 소리를 글로 표기하면서, 한자에 ‘늘’字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발음이 비슷한 눌(訥; 말더듬을 눌)자를 끌어왔고, 늙을 老자를 붙여 ‘눌노리’라 한 것이다.‘늘노’에 대하여‘늘노’는 늪이 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늠노리, 늠느리’라고도 한다.고 지명유래를 설명하는 이도 있지만 천소영은 ‘날(nVrV)’계 지명에 대해 ‘느르’계 지명이라 불렀고, 이는 山水가 중첩되거나 늘어져서 지형이 넓어지는 곳을 이르는 지명이라 하였으며, 이‘느르’계 지명에 ‘느리’가 있고, ‘느름>늠’의 명사형과 ‘느’ 등이 있다 하였고,
또한 슭마노르는「‘늘노’는 ‘너르다’는 뜻의 순우리말 ‘놀/nor’을 2번 중첩한 말로, 쉽게 말해 [놀+놀] 즉[넓+ 넓]이라는 이름」이며, ‘놀/nor’이라는 말은 옛날에 아주 넓은 벌판을 가리켰는데 후에 [놀/늘/널/넓/늙/놁/눍/누르/너르/너브/놉..]등으로 넘나들었다고 하였다.
‘늘노리’는 예로부터 늘로천과 임진강이 자주 범람하면서 아주 넓은 들판을 만들어 놓았다. ‘늘노’는 지형이 넓은 곳을 지칭하는 ‘느르’계 지명이 變音된 것으로 생각된다.
‘버들메’는 버두나무가 많은 산 또는 들로 생각된다.
‘빈배이’를 群芳谷(군방골)로 표기하는 것으로 보아‘이’는 골, 마을을 뜻하지만 빈배는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거르메'는 혹시 질마재(鞍峴, 안현) 질마산(鞍山, 안산)의 다른 말인 ‘기르마’에서 온 말이 아닐는지...
[참고] 지르마(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질매(경상남도 창녕) · 질마(충청남도 서산) · 지르매(강원도)’라고도 불린다. 옛말은 기르매 · 기르마 · 기마.
'수작골' 그 유래를 짐작하기 어렵다.
수작골에서 보는 파평산
수작골. 산을 파헤친 곳이 무건리다.
기숙 대안학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수업을 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캠핑장으로 일반에게 개방된다.
웅담초등학교는 1,959년 이곳에서 적남국민학교로 설립되었으며, 1961년 8월 지금의 자리인 웅담리로 교사를 이전하여, 1,968년 8월에 웅담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다. 이곳이 옛 적남(積南)국민학교가 있었던 자리다.
학교울타리 너머는 무건리로 출입금지구역이다.
위 지도에 표시된 무건교
포수바위다. 아주 오래전에 포수가 큰 멧돼지를 발견하고 총을 쏴서 잡았는데, 그때 여러마리의
새끼들이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있었다고 한다. 이에 충격을 받은 포수는 너무 가슴이 아파
바위 밑으로 떨어져 죽었다고... 그때부터 포수바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서 조금 들어가면 바로 ‘무건리훈련장’으로 출입금지구역이다.
무건리(武建里)
地名 중에는 ‘역사의 현장 ․ 인물의 발자취 ․ 시대의 잔영 ․ 풍속과 신앙 ․ 사랑과 애환... 등’ 유익하고 재미있는 정보가 담겨 있는 것들이 많다. 때로는 그 땅의 운명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이 옛날에 붙여진 이름 그대로 딱 맞아 떨어지며 현실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럴 때마다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신비한 사례는 전국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지만,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무건리(武建里)만큼 앞날의 운명을 오롯이 地名에 담고 있는 경우가 있을까?
무건리는 적성면소재지에서 正南쪽에 위치하며, 감악산의 南西쪽자락에 자리한 험하고 깊은 山中마을로 양주에서 감악산의 설마치고개를 넘어 적성으로 연결되는 371번 도로 왼편에 있다.옛날에 당나라장수 설인귀가 산골짜기에서 무예를 닦았다고 하여 무건리(武建里)라고 한다는 지명유래가 전해진다.
武建里(무건리)! 굳셀 무, 세울 건. 武를 굳건하게 세우게 된다는 말 아닌가? 武는 ‘호반(虎班=무관) 무’라 하는데, 文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한자사전에『무인, 무사, 병사, 군대의 위용, 무위, 병법, 전술, 무예, 무술, 병장기, 무기, 굳세다, 용맹스럽다, 맹렬하다, (군사를)부리다, 지휘하다 』등의 의미로 나온다.
1982년 무건리에 대규모군사훈련장이 들어섰다. ‘무건리훈련장’은 파주시 법원읍 직천리와 적성면 무건리 주민 250여 세대를 이주시키고 조성되었으며, 86년에 350만평으로 확장되었고, 현재 규모는 550만평에 달한다.
한국군 1군단 제병합동훈련장인 무건리훈련장은 미군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2002년 6월에 발생한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중학생 신효순, 심미선)압사사건은 무건리 훈련장 주위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장갑차들의 이동 중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국방부는 국내에서 유일한 대전차의 쌍방 기동훈련이 가능한 군사종합훈련장(무건리훈련장)을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 일원에 1,100만평 규모로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97년부터 토지협의매수에 착수했는데, 가장 최근의 뉴스로 무건리훈련장 권역화사업으로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을 위한 ‘법원읍 가야리의 이주단지 준공식’이 2012.12. 26에 열렸다는 소식이 뉴스에 떴다.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주민들의 설움을 어찌 달랠까마는, 이만큼 武를 굳건하게 세우는 곳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무건리! 여기서 이렇게 운명처럼 이름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명의 신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