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白水 2015. 12. 12. 19:18

 

 

 

 

 

 

 

 

낙산사 (寺)

강원 양양군 오봉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이다. 관세음보살이 머무른다는 낙산(오봉산)에 있는 사찰로, 671년(신라 문무왕 11) 의상()이 창건하였다. 858년(헌안왕 2) 범일()이 중건한 이후 몇 차례 다시 세웠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 전쟁으로 소실된 건물들은 1953년에 다시 지었다. 3대 관음기도도량(※) 가운데 하나이며, 관동팔경( ()의 하나로 유명하다. 경내에는 조선 세조() 때 다시 세운 7층석탑을 비롯하여 원통보전(殿)과 그것을 에워싸고 있는 담장 및 홍예문()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2005년 4월 6일에 일어난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은 소실되었다.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 도량: 동해 양양 낙산사 홍련암, 남해 금산 보리암, 서해 낙가산 보문사 

 관동팔경(關東八景): 관동지방, 즉 강원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에 있는 8개소의 명승지로 고성의 청간정(), 강릉의 경포대(), 고성의 삼일포(), 삼척의 죽서루(西), 양양의 낙산사(), 울진의 망양정(), 통천의 총석정(), 평해()의 월송정()이다. 월송정 대신 흡곡()의 시중대()를 넣는 경우도 있다.


원통보전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량을 복구한 후 이곳으로부터 약 8km 떨어진 설악산 관모봉 영혈사()에서 옮겨 왔다고 한다. 제작 시기는 12세기 초로 추측되는데, 고려시대 문화의 극성기 양식을 나타낸 매우 아름다운 관음상이다.

의 창건과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하여 낙산사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바다에 투신하려 하였다. 이때 바닷가 굴 속에서 희미하게 관음보살이 나타나 여의주와 수정염주()를 건네주면서, "나의 전신()은 볼 수 없으나 산 위로 수백 걸음 올라가면 두 그루의 대나무가 있을 터이니 그곳으로 가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그곳이 바로 원통보전의 자리라고 한다. 부속건물로 의상대(), 홍련암() 등이 있고 이 일대가 사적 제495호로 지정되어 있다.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삼척, 강릉, 고성을 휩쓴 큰 산불이 일어나 낙산사 원통보전과 여러채의 전각이 소실되고 보물 제479호로 지정된 낙산사 동종이 화마에 녹아버렸다.

 

보타락

 

 

 

지장전

 

 

 

보타전

 

 

 

보타전

 

 

 

 

 

 

의상대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해안 언덕에 있다. 신라시대의 고승 의상()이 676년(문무왕 16) 낙산사를 창건할 때 좌선하였던 곳에 세운 정자로 알려져 있으며, 지금의 정자는 1925년에 지은 것이다. 동해도립공원의 명승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으로 바닷가 암벽 위 정자에서 맞는 해돋이는 손꼽히는 일출경으로 알려져 있다.

 

 

 

 

 

 

 

 

모진 세월 버텨내기가 얼마나 힘 들었으면 그렇게 술에 취해서 허우적거렸을까. 동생은 결국 2005년 46세의 젊은 나이에 저 바다를 건너 彼岸으로 떠나갔다. 죽거든 화장해서 낙산사 앞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었지. 영혼이나마 자유롭게 일렁이고 싶었던 것인데.... 그러지 못하고 고향선산의 아버지 어머니 무덤 위에 뿌려주었다. 성묘 때마다 기려보겠다는 내 욕심이었는데 이제와 보니 늘 마음에 걸린다. 낙산사에 올 때마다 새파란 바닷물처럼 내 가슴이 시리다.

 

 

 

왼쪽 아래로 홍련암이 내려다 보인다.

 

 

 

산 위에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홍예문

 

 

 

 

 

 

 

 

오죽 [烏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