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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숭산(수덕산)에 오르다.

백수.白水 2016. 6. 12. 16:20

매일아침 잠에서 깨면 바라보는 산, 석 달 열흘을 매일 바라만 보다가

마침내 오늘 차령산맥의 한줄기로 수덕사의 주산(主山)인 덕숭산(德崇山, 495m)에 올랐다.

예로부터 수덕산(修德山)으로도 불리는데 어느 쪽이 선행지명인지 알 수 없고,

또 어느 쪽이 주명(主名)이고 어느 쪽이 속명(俗名)인지도 분명치 않다.

하여튼 나중에는 언중(言衆)이 많이 사용하는 쪽이 주된 이름으로 될 것이다.


아침나절 비는 그쳤는데 안개가 자욱한 걸로 보아 정상에서 우리 집을 찾아볼 것이라는 기대는 애당초 접었다.

10시쯤 자동차로 집을 나서 수덕사주차장까지 10분쯤 걸렸고, 정혜사와 정상까지의 거리와 소요시간을 알리는 표지판까지 걸어서 30분이 걸려, 1040분 심우당 앞에 도착했다.





상점가에서 정상을 바라보니 안개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단 위쪽이 본전인 대웅전이 자리한 큰 마당이다.



늘씬하고 매끈한 육송이 귀한 자태를 뽐낸다.



대웅전 오른쪽에 명부전이 있고, 그 오른쪽 깊은 곳에 자리한 전각. 출입금지를 알리는 막대가 걸려있다. 궁금해서 가까이 접근하여 현판을 보니 拈花室(염화실)이다. 조실(祖室)스님이나 방장(方丈)스님이 거처하시는 방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찰에서 승려들의 참선 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 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 교육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叢林)이라하는데, 총림에서 최고어른을 방장(方丈)이라고 한다.

 

그리고 총림은 아니지만 규모가 큰 절에서 가장 큰 어른 스님을 조실(祖室), 절의 모든 관리와 운영을 책임지는 주지(주지), 사찰 안살림 총괄하는 스님을 원주라 한다.



법고각(法鼓閣)과 법고




짙은 안개에 감싸인 수덕산 정상





나 홀로 산행, 모르는 여인인데 그냥 찍힌 거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觀音殿)



관음보살과 관음바위






심우당(승가대학)에서 정혜사 0.96km(30), 정상 1.89km(60)라는 표지판이 있다.


이 4면석불은 1983년에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을 그대로 재현하여 사방에,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미륵존불을 조성한 불상으로 2008년에 봉안하였다.



사면석불에서 왼쪽의 이 길로100m를 오르면 조사전이 있다고 나오는데..염불원이 있다.






소림초당(少林草堂); 1925년 만공스님이 덕숭산 중턱 절벽위에 지은 암자로 자연목 그대로 짓고 그 위에 볏지붕을 덮어 자연의 곡선미가 그대로 살아나 있는 아담한 초당이다. 스님들의 수행처로 이곳도 출입금지 막대기가 가로 막는다. 가까이 접근해서 담 너머로 모습을 담았다.







관음보살입상


1924년 만공스님이 바위를 깎아 세운 25척의 거대한 석불






향운각(香雲閣): 관음보살입상 오른쪽, 1939년 만공스님이 지은 암자로 스님들이 안거기에 머무르는 곳이다. 이곳도 안거기라서 출입금지.



만공탑(滿空塔): 만공스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47년에 건립했다. 만공스님의 친필과 행장(行狀), 법훈(法訓) 등을 새겼다. 탑 주위에 두른 육각의 돌난간은 후대에 만공탑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수덕사에는 만공스님의 자취가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수덕사의 대표적인 고승으로는

-.수덕사의 창건주로 전해지는 지명법사(知命; 백제위덕왕<554598>)

 

-.백제의 고승으로 법화경에 통달하여 수덕사에 주석하면서 불자들에게 강설하였다고

  삼국유사에 전하는 혜현법사(惠現法師, 570627)

 

-.조선말기 침체된 불교계에 선()의 중흥조로 1882년부터 약20여 년간 천장암, 개심사, 문수사,

  부석사, 수덕사, 정혜사를 비롯하여 호서지방에 선풍을 일으킨 

  경허 성우선사(鏡虛 惺牛禪師, 18491912)와 함께 만공스님을 꼽는다.



-.만공 월면선사(滿空 月面禪師, 1871~1946)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의 선승으로 주로 덕숭산에 머물며 선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썼고, 마곡사 주지를 지냈다.

 

속명은 송도암(宋道巖), 법명은 月面, 법호는 滿空이다. 태인 군내면 상일리(현 정읍시 태인면 태흥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3세에 출가하였다.

충남 서산 천장사에서 태허(泰虛)를 은사로 모시고, 경허(鏡虛, 성우 1849~1912)를 계사(戒師)로 하여 사미계를 받았다. 1895년 온양 봉곡사에서 수행한 후 덕숭산 수덕사와 정혜사·견성암을 거쳐 금강산 유점사(揄占寺)에서 3년을 지냈다. 1905년 덕숭산으로 다시 돌아와 참선하며 수행승들을 가르치고, 1914년 서산 간월도리에 간월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

 

1937년 마곡사(麻谷寺) 주지를 지낼 때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조선 31본산(本山) 주지회의가 열렸는데 총독부가 조선불교의 일본불교화를 주장하자 이에 호통을 치며 공박하였다. 주로 덕숭산에 머물며 선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쓰다가 1946년 전월사에서 입적했다. 사후에 <만공어록 滿空語錄>이라는 책이 편찬되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 천사불여일행(天思不如一行)


百草是佛母(백초시불모): 글자대로 새기면 온갖 풀들이 다 부처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부처의 성품이 깃들어 있다는 의미이다. 열반경의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 곧 모든 중생은 다 부처가 될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다.





만공스님이 금선대(金仙臺)초입에 자연석을 다듬어 조성했다.



금선대 입구로 통하는 진여문(眞如門)



금선대: 출입금지로 담 너머로 촬영했다. 금선대는 1905년건립, 만공스님의 조실채, 경허 만공 헤월 수월스님의 영정이 모셔진 진영각이다.













정혜사(定慧寺) 하안거중이라서 들어갈 수 없다. 담 너머로 찍었다.




정혜사(定慧寺)


수덕사(修德寺)의 말사로 본사인 수덕사와 함께 599지명법사(智明法師)가 창건하였으며, 창건 이후 많은 고승대덕들이 수도한 곳이나, 중창 및 중수의 역사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1930년 만공선사가 중수한 이후 사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그가 이 절 선원(禪院)의 조실이 된 이래 문하에 100여 명의 승니(僧尼)가 따랐고, 현대의 불교계를 움직인 고승들을 배출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관음전을 비롯하여 수도본전(修道本殿)인 능인선원(能仁禪院산신각·불유각(佛乳閣주지실·요사 등이 있으며, 그 중에도 정혜사의 현판이 걸려 있는 선원은 고색과 무게를 갖춘 당우이다. 또한, 깨끗한 정원의 구석에는 바위가 있고 그 위에 작은 2기의 석탑이 나란히 서 있어 쌍탑(雙塔) 또는 남매탑(男妹塔)이라고 하나 유래 및 연대 등은 알 수 없다.


능인선원은 만공선사가 주석하며 선풍을 진작시킨 정진처로 매 철마다 수십 명의 스님들이 용맹정진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원이다.


지금은 하안거 중이라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하안거(夏安居)는 승려들이 여름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수행에 전념하는 일로 음력 4월 보름 다음날부터 7월 보름까지 3개월 동안 한곳에 머물면서 좌선과 수행에 전념하는 것을 이른다.

안거 첫날은 여름 안거의 제도를 맺는다는 뜻에서 결제(結制)라고 하였고, 716일 이후에 안거 제도를 푸는 것을 해제(解制)라고 한다.



행사가 있는가 보다. 선녀처럼 곱게 차려입은 여인네들이 보인다.








스님들이 가꾸는 채마밭









많은 종류의 꽃이 다 지고 지금 수덕산에는 곳곳에 산딸나무가 만발해 등산객을 반긴다.



위에서 보니 거북이요



아래서 보니 두 석상의 격렬한 포옹과 입맞춤이다.



덕숭산 정상. 안개 때문에 전혀 아래로 전망이 트이지 않는다.



정상에 올라서 보니, 집에서 볼 때 제일 높은 곳으로 보이는 철탑이 정상의 서쪽 조금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전망은 말 그대로 오리무중이다.



흔한 꽃인데 이름이...?




전월사 앞 약수터





전월사(轉月寺)는 1941년 만공스님이 건립하였으며, 허공의 둥근달을 굴린다는 뜻이다.











1240분 출발지인 심우당(승가대학)에 도착했다. 산행에 대략 2시간정도 걸렸고, 집에서부터 계산하면 왕복 3시간쯤 소요되었다.



내려와서 올려다보니 정상은 여전히 안개에 묻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