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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간월도∙서해의 조망이 탁월한 연암산(燕岩山)

백수.白水 2016. 10. 7. 18:05

 

 

2016.10.06(목)

 

가을이라고 해서 매일 蒼蒼한 것도 아니다.

아침식전에 하늘이 새파랗게 맑다가도 낮으로 갈수록 시계가 탁해지기도 하고,

어느 날은 아침에 비가 쏟아지다가 기막힌 靑天하늘이 드러나기도 한다.

언제 어느 곳을 오르겠다고 작정을 해놓으면 낭패하기 십상이라서 그날의 天氣를 살핀 후에 움직이게 된다.

그렇다고 거창한 山行이 아니라 사부작사부작 주변의 낮은 산을 거닐며 슬슬 돌아다닌다는 말이다.

어디에 매인 것이 아니라 풀린 몸이기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아내가 동행을 해도 좋지만 힘들다고 버거워하니 나 혼자서 나다닐 때가 더 많다.

2시쯤 서산의 연암산(燕岩山, 440.8m)으로 향했다.

 

 

 

 

앞으로는 가급적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끊이는 등 냄새가 많이 나는 요리는 밖의 마루에서 하겠다며 요리탁자를 만들어달란다. 정밀한 공구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쉬운 대로 폐목재를 이용해서 오전에 뚝딱거려 만들었다. 내가 봐도 시답잖은데 사용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며 좋아한다.

 

 

 

 

 

서산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집에서 예산(덕산)과 서산(해미)의 가느다란 경계선을 폴짝 건너뛰면 서산 땅이다.

 

 

 

 

해미터널근처 독고개가 출발점.

 

 

 

 

왼쪽 봉우리가 연암산이고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저 동네에 한서대학이 있다.

독고개에서 연암산 정상까지 한3km쯤 될까 말까?

 

독고개에서 연쟁이고개로 올라가는 산길에 소슬한 바람이 불고

단풍과 함께 가을을 지켜낼 마지막 꽃들이 흐드러졌다.

이보다 더 노란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미역취, 금으로 치면 순도 100이다.

소복의 여인처럼 청초하기는 구절초만한 꽃이 없고..

개별로 뜯어보면 하찮은 까실쑥부쟁이, 이삭여뀌, 이고들빼기, 물봉선 같은 것들이 군집을 이루어 볼만하다.

 

 

 

 

미역취

 

 

 

 

기름나물

 

 

 

 

까실쑥부쟁이

 

 

 

 

이삭여뀌

 

 

 

 

이고들빼기

 

 

 

 

 

 

 

물봉선

 

 

 

 

 

 

 

구절초

 

 

 

 

 

 

 

여기는 연쟁이고개(鞍部). 독고개() 삼준산() 고북면 장요리() 천장사,연암산()으로 가는 길이 갈린다.

 

 

 

 

 

 

 

현판은 없는데 만월정인가보다. 이곳에서 천장사(왼쪽)와 (보이는)연암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길은 비교적 평탄한데 정상부근에서 쇠 난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구간이 조금 이어진다.

 

 

 

 

그리 높지는 않지만 동서남북으로 전망이 툭 트였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멀리 가야봉이 보이고,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고개가 천주교성지인 한티고개다.

오른쪽(동쪽) 산이 뒷산(449m)인데...뒷산에 가려 덕숭산은 정상이 꼭지처럼 조금 보인다.

 

 

 

 

앞과 뒤의 구분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내가 보고 있는 쪽이 앞이고 등지고 있는 쪽이 뒤 아니던가.

방위는 당연히 보고 있는 방향에 따라서 결정지어지는 것이고...

우리 동네집들이 대부분 동남향인데 산이 반대방향인 북서쪽으로 동네를 두르고 있어서 뒷산(449m)이 되었다.

그동안은 계속 앞에서 뒷산을 보았는데, 오늘 처음으로 뒤에서 뒷산을 보니 느낌이 새롭다.

 

 

 

 

 

 

 

뒷산이 북동을 둘러싼 이 마을은 서산 해미면의 한티마을이다.

 

 

 

 

사진 가운데 활처럼 굽은 산이 홍성의 용봉산일거다.

 

 

 

 

 

 

 

 

 

 

삼준산(490m) 이 산도 날 좋은날 한번 올라봐야 한다.

 

 

 

 

가야봉과 원효봉 다 보인다.

 

 

 

 

 

 

팥배나무, 여러 군데 산의 정상에서 팥배나무를 만나게 된다.

 

 

 

 

 

 

 

 

 

 

넓은 평야와 천수만,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풍경이 그리도 그리웠던 것....

 

 

 

 

 

 

 

 

 

 

 

 

 

 

 

 

 

 

 

 

 

 

 

 

 

 

 

 

 

 

 

천장암은 사진 한 방 찍고 지나쳐왔다.

 

 

 

 

 

 

 

연암산 정상아래에 천장암이 저 소나무들에 감춰져있다. 이름처럼 하늘아래 감춰진 절 천장암(天藏庵)

 

 

 

 

 

 

 

 

 

 

아! 애처롭다

세월은 흘러 단풍의 계절로 가는데

날 저무는 다저녁때

늙은 나비 한 마리가 꽃을 탐하고 있구나.

 

 

 

 

숲길은 금방 어둑해진다.

 

 

 

 

 

 

 

사진을 찍으려고 접근했더니 벌이 쫓아 나와서 가까이 잡지 못했다.

 

 

 

 

[ 자 료 ]

 

 

 

연암산(燕岩山)

 

연암(燕岩)은 제비바위를 뜻하며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연암산은 제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한다.

 

연암산은 금강 북쪽의 산줄기인 금북정맥의 남쪽에 속한다.

가야산 줄기가 남쪽 방향으로 이어지는 곳으로, 남북 양쪽이 급경사를 이루는 산이다

연암산에서 발원한 하천은 북으로 산수저수지로 흘러가며, 해미천을 이룬 뒤 간월호에 유입된다.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고북저수지로 흘러 들어갔다가 간월호에 유입된다.

 

높이는 440.8m이다.

제비처럼 생긴 바위는 서쪽으로 깎아진 절벽이 층을 이루며 위로 길게 이어져 있고, 벼랑 위는 반석으로 되어 있어 제비바위에서 조망하는 천수만과 간월호의 풍광이 탁월하다.

연암산 정상의 봉수대 터에는 통신중계 탑이 설치되어 있다.

연암산 남사면의 기암절벽에 있는 천장사는 수덕사의 말사로 633년에 백제의 담화(曇和)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19세기 말 승려 경허(鏡虛)가 머물렀던 곳으로, 천장사 법당에는 경허가 적어놓은 염궁문(念弓門)’이라는 글귀가 남아 있다.

천장사에는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02호로 지정된 높이 7m의 고려 시대 천장사 칠층석탑이 있다.

 

 

연암산성(燕岩山城)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 있는 석성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견성산은 현의 동쪽 9리에 있다”,

견성산성(犬城山城)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9,960척이며, 지금은 폐성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연암산성 성벽은 석축이며, 조선 초기에는 폐성된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시대에는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연암산성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넓은 면적에 비해서 성과 관련된 유물은 확인되지 않아 구체적인 건립 경위는 알 수 없다.

 

연암산성은 연암산의 정상부와 사면에 걸쳐 자리한다.

3개의 계곡을 에워싼 포곡식 산성이며, 성내의 면적은 매우 넓은 편이다.

성내 곳곳에는 건물 터로 추정되는 평지가 매우 많다. 문지는 3개소가 확인되며, 모두 서쪽에 위치한다.

성벽은 해발 408m의 연암산 정상부를 경유한다.

해안 쪽에 해당되는 서벽은 정상부 가까이에 축성되었고, 동벽은 경사면 중복부까지 내려왔다.

정상부와 경사면을 둘러싼 성벽은 불규칙한 타원형으로 산 정상부와 산간 계곡을 크게 감싸며, 둘레는 3.5에 이른다.

 

2011년 현재 연암산성의 성벽은 남벽 구간만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붕괴되어 있다.

성돌은 길쭉하고 납작하게 생긴 할석을 이용하여 외면만 맞추면서 쌓아 올려 표면이 거친 편이다.

성벽의 축성은 협축하였으며, 외성벽은 3~4m, 내성벽은 1m 정도가 남아 있다.

성내 곳곳에는 건물 터로 추정되는 평지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문지는 서쪽에 3개소가 확인된다. 연암산성을 대성산성이라고도 부른다.

 

연암산성은 가야산 줄기를 구성하는 연암산의 정상부와 사면에 걸쳐 축성되었다.

연암산은 깊고 험한 산이지만 성안에 서면 서산시 해미면과 서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처럼 산중에 위치한 입지와 규모, 그리고 고려 시대까지 사용되었다는 기록을 고려할 때, 연암산성은 서해에서 진입하는 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연암산성의 구체적인 성격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