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 온 글

내 안에 박힌 업장 하나를 즐거이 캐냈다.

백수.白水 2017. 9. 17. 20:31


      



텐트 하나 세우는 데 기둥자리 잡으려고 이만 한 돌을 팠네.

기둥자리는 태어난 처소로서의 인연자리.

텐트 지붕은 주어진 영화로서의 계급.

파낸 돌은 지은 업장으로서의 무게와 크기. 그리고 깊이.

바위가 아니기 천만 다행이다.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몰두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천신만고로도 파내지 못할 산 같은 바위를 만난다면 어찌할 것인가.

가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평생 동안 삽과 곡괭이로 산을 옮겼다느니,

산을 뚫어 길을 만들었다느니 하는 소식을 듣게 되면 일제히 일어나 손뼉 마주쳐 내 일처럼 축하해줘야 한다.

두텁고 무겁고 깊은 과보를 파낸 돌의 무게만큼, 크기만큼, 깊이만큼 덜어냈다는 것이다. 칭송 받을 일이다.


무쇠소가 닳아지듯 몸이 마모되는 노동의 대가는 잠시 잠깐이다.

손 안대고 코 푸는 일이 됐건,

아득바득 권속의 생존을 위해 등짐을 지고 천 길 낭떠러지를 기어오르는 일이 됐건,

노동은 경이로운 일에 속한다.

다만 손 안대고 코 푸는 일에는 탐욕이 따라붙어 마가 끼기 십상이고,

몸이 닳는 일에는 게으름이 벗하자고 따라붙기 마련이다.


오늘도 나는 내 안에 박힌 업장 하나를 즐거이 캐냈다.

누구를 때려 몇 날 며칠 끙끙 앓아 눕게 한 몸의 괴로움을 이 같이 받는 거다.

누구를 가슴 아프게 해서 피 멍든 가슴을 이 같이 녹여내는 거다.

미안하고 고맙고 그리고 다행이다. 천만 번이나.


< 如空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