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갈무리
2015년, 경기도의 비학산을 오르다가 캔 천마(天麻)로 술을 담갔는데, 오늘밤 그 술을 꺼내서 몇 잔을 마셨더니 세상이 얼마나 황홀하고 아름다운지...서울에 살고 있는 아삼육 고향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시끌벅적, 노래방의 흐느적거리는 노랫소리에 귀가 먹먹하다. 바쁘니까 얼른 끊으란다. 쪽팔린다.
골프연습하기도 바쁘고, 보잘것없는 텃밭에서 시답잖은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여간 바쁜 게 아니다.
그래서 매일 종종걸음을 친다.
가을걷이가 얼추 마무리되면서 갈무리를 하는 시기, 성했던 모든 것들은 때가되면 쇠하면서 한생의 흔적을 남기고, 어느 땐가는 그 흔적조차도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
농사일을 하면서 생명의 원리에 호기심이 발동하고, 자연의 이치와 질서를 사유하게 된다.
초창기라서 우리감나무에는 내 주먹만큼이나 큰 감이 고작5개 매달렸다.
감을 좋아하는 아내가 이웃집에서 2접을 샀다. 상자에 담아 냉암소(冷暗所)에 보관하면 홍시가 되니 눈 내리는 겨울밤 간식으로는 최고다.
땡감50개를 꺼내서 곶감을 깎아 꼬챙이에 꿰어 가을햇볕에 말리고 있다.
감을 꼬챙이를 꽂아서 말린 감이라서 곶감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지금이야 건조기에 말리는 경우도 있지만 예전에는 대꼬챙이나 싸리꼬챙이에 꿰어 말렸다.
마르면서 껍질이 쫄깃쫄깃 하얀 분이 피어난다. 당질이 농축된 결과이다.
지금은 그냥 다 버리지만 옛날에는 껍질도 말려서 먹었다. 추억의 감 껍질! 말려서 차를 한번 끓여볼 요량으로 말리고 있다.
호박죽을 끓이려고 겉껍질을 까고 토막을 쳤다. 호박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견과류가 부족하던 시절, 손을 대지 않고 이빨로 호박씨를 까 돌리는 기술도 알아줬다.
똥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은 겉으로는 모르는 척하나 속으로는 꿍꿍이속을 차리고 있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보리를 사다가 엿기름을 기른다. 보리자루에 하루에 한 번씩 물을 부어 치대기를 한 사날하면, 보리에서 뿌리가 내리고 파란 싹이 튼다. 이것을 엿기름 곧 맥아(麥芽=엿기름)라 한다.
본래 씨앗을 심으면 먼저 뿌리가 내린 다음에, 파란 싹이 올라온다. 보리의 파란 싹이 곧 보리싹(맥아,麥芽)이며 엿기름인 것이다.
보리 싹이 올라올 때 에너지가 방출된다. 보리자루가 후끈후끈할 정도다. 엿기름에는 녹말을 당분으로 바꾸는 효소를 함유하고 있으며, 식혜나 엿을 만드는 데에 쓰인다.
김장 할 시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우리 집 김장은 11.22일(금)로 잡았다.
이미 마늘도 다 갔고
20여년 가까이 단골인 광천 가게에서 이미 새우젓도 다 사다놓았다.
생강을 사다가 까서 말려 생강가루를 냈고
속살가루를 내기위해 16kg의 들깨를 햇볕에 말리는 것도 큰일이다. 내가 대강 만든 고무래. 곡식을 그러모으거나 펴거나, 밭의 흙을 고르는 데나, 아궁이의 재를 긁어내는 데 쓰는 ‘丁’자 모양의 기구. 그래서 丁은 고무래 정이라 한다.
바싹 마르면 콩나물콩 타작을 해야 한다.
들국화가 아닌 원예용 국화
봄꽃이 꽃을 피웠다. 제철을 모른다. 그래서 이렁 경우를 철부지(-不知)라 한다.
구절초
조락(凋落)을 앞둔 황홍(黃紅)색 블루베리 잎이 꽃으로 피어났다.황혼(黃昏)이 아름답다.
이렇게 얼얼한 기분으로 또 하루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