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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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길을 /고미숙이 말하는 몸과 우주

<63>인생은 사주와 팔자

백수.白水 2012. 9. 6. 11:06

사람의 운명은 참으로 신비롭다우주의 원리인 음양오행철학에 바탕을 둔 사주명리학.

1990년도부터 정현우(鄭鉉祐)박사의 신비의 운명학이라는 책을 교재삼아 몇 년간 심취한 시절이 있었는데, 깊이 들어갈수록 미로를 헤매게 되니 스르르 잠이 들 듯 어느 때 부턴가 손을 놓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 연재되는 고미숙의 몸과 우주라는 글을 읽으며 다시 마음이 끌린다.

그 어려운 분야를 과학적으로 그러나 쉽게 접근하고 논리정연하게 풀어내니 좀 알듯하다.

이참에 다시 공부해보려고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라는 책을 주문했다.



팔자는 ‘생로병사의 리듬’… 태어난 시간이 중요


“아이고, 내 팔자야!” “무슨 팔자가 그렇게 사나워?” 많은 이가 이런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하기도 한다. 그만큼 상용화된 언어다. 팔자란 무엇일까? 태어난 연월일시를 육십갑자로 뽑으면 네 개의 기둥(예를 들면 임진·정미·병자·기축)이 나오고 그 글자를 합치면 팔자가 된다. 요컨대 사주팔자란 의역학의 전문용어인 셈이다.

태아 적엔 엄마와 심장이 연결되어 있어서 단전호흡을 한다. 그런데 엄마 배 속을 나오면서, 즉 선천(先天)에서 후천(後天)의 세계로 넘어오는 순간 폐호흡으로 바뀐다. 태어나자마자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때 우주의 기운이 호흡을 통해 아기의 신체에 각인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사주팔자다. 존재와 우주 사이의 첫 번째 마주침, 그 ‘인증 샷’이라고나 할까.

 

하늘에서 태양이 움직이는 길을 황도라 한다. 황도 360도를 15도씩 나누면 24개의 마디가 생긴다. 24절기가 바로 이 마디에 붙인 이름이다. 절기의 변화에 따라 천지의 기운 혹은 물리적 배치가 달라진다. 그중에서도 특히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다섯 개의 별이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이다. 이들의 밀고 당기는 역학적 배치가 팔자의 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다. “탯줄을 자르는 순간에 우주의 기운이 몸으로 들어온다고 본다. 우주의 기운이란 바로 별들의 기운이다. 인간은 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가 서양 점성술이나 동양의 명리학이나 같다.”(조용헌 ‘한국의 역학’)


말하자면 천지의 기운은 반드시 존재의 생리와 상응한다. 그런 점에서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은 하나다. 물론 상응이 곧 상생을 뜻하는 건 아니다. 서로 어울릴 수도 있고, 어깃장이 날 수도 있다. 이것을 일러 상생과 상극의 파노라마라고 한다. 자연의 영향력에 맞서 문명을 구축한 토대 역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문명이 발달한다 한들 존재 자체의 우주적 원천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우주가 곧 모태고 또 귀향처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주에 사계절이 있듯이 모든 존재는 생로병사한다. 생로병사의 리듬이 곧 팔자다. 이 리듬 자체를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그 리듬을 어떻게 밟아갈 것인가?’는 개별 주체마다 다 다르다. 그 지혜와 기술을 익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덟 개의 카드 가운데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건 온도다. 즉 어떤 계절, 어떤 시간에 태어났는가가 결정적 단서다. 예를 들어 한여름의 정오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 몸 안에 엄청난 불기운이 이글거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한겨울 새벽에 태어난 경우는? 차가운 물기운으로 충만하다. 불기운이 세면 자신을 외부로 드러내는 기운이 강하고 물기운이 강하면 속으로 갈무리하는 성향이 강하다. 달리 말하면 전자는 벌여놓고 뒷수습을 잘 못하는 대신 뒤끝이 없고, 후자는 마무리를 잘하는 편이지만 대신 뒤끝이 길다. 물론 이 사이에 위계나 서열은 없다. 다만 다를 뿐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걸 바탕으로 몸의 구조와 생리, 성격과 인생관 등 다양한 항목이 계열화된다. 그것이 관계를 만들고 사건을 일으키고 인연을 불러온다. 관계와 사건과 인연, 그 접속과 변이가 바로 인생, 아니 팔자다.  <고미숙 고전평론가>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고미숙 지음/북드라망·13000

 

수유+너머태동시킨 고미숙씨 사주명리학 철학적 입문서 펴내 운명에 개입하는 길안내 나서

 

나의 운명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준다! 언뜻 얼토당토않은 말 같지만, 그 발설자가 저 유명한 연구집단 수유+너머를 태동시켰던 고전학자 고미숙(52)씨라면, 일단 귀를 쫑긋하고 들어볼 만하지 않겠는지. 운명론을 믿지 않는다면서 한두 번이라도 점집을 드나든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일독해야 할 책이다.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는 지은이 고미숙씨가 지난해 써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와 짝을 이루는 책이다. <동의보감>의 관심사가 몸이라면 <나의 운명>의 열쇳말은 운명이다. 몸은 운명의 거처이니, 지은이는 몸이 밟아가는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리듬을 운명이라 정의한다. 전자가 의학이라면 후자는 역학이다. 역학은 곧 운명학인바, 이 책은 운명론입네 미신입네 하고 백안시되는 운명학, 곧 사주명리학에 대한 철학적인 입문서이자 실용적인 안내서이다.

 

사주명리학은 줄여서 명리학으로도 불리는데 사주(四柱)를 근거 삼아 사람의 운명을 풀이한다. 명리는 천지 음양의 이치, 바꿔 말하면 운명의 이치이다. 사주명리학은 그 명리(命理)를 따지는 학문이다.

우선 지은이는 명리학을 도인이나 무속인의 전유물이라고 간주하는 세간의 시각을 맹렬히 비판한다. 도인들의 것이라는 견해는 <주역>으로 대표되는 동양 역학을 신비주의로 환원해 버리며, 무속인들의 것이라는 견해는 역학은 결코 지식이라 할 만한 것이 못 되는 미신이라는 폄하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신비화와 미신화) 둘 다 명리학을 지식의 외부로 축출한다.” 이때 지식의 범주는 철저히 서구적 인식론과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명리학에 대한 폄하는 서구의 시선으로 다른 지역 문화를 타자화하는 또다른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지은이는 비판한다.

 

그는 거의 모든 재벌들이 전용 역술가를 거느리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지적 풍토는 명리학을 신비와 미신 사이에 묶어 공적인 담론의 장에서 몰아냄으로써 사적으로 상류계급이 독점하도록 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이른바 진보진영에서 명리학적 앎에 대해 터부시하는 풍토를 지적하면서, 이렇게 묻는다. 진보의 영역에서는 운명이라는 키워드가 불필요한가? 그는 진보 단체들이 부딪치는 가장 큰 장벽은 권력의 탄압이 아니라 공동체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틈이라면서, 활동과 일상, 명분과 현장 사이의 이 간극을 통찰하지 못하면 진보든 혁명이든 별무소용이라고도 주장한다. 그는 이 간극에는 인생과 자연의 단절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간극은 물질적 분배와 제도, 시스템만을 강조하는 사회과학 담론에는 자연 혹은 우주가 결락되어 있기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방향전환의 한 방편이 사주명리학이라고 본다. 운명을 사유하는 일은 인생과 자연 사이의 상응과 교감을 전제하는 것이며 밤하늘의 별과 인생의 길을 하나로 이어줄 지도가 바로 사주명리학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명리학의 근간인 네 개의 기둥, 곧 사주란 무엇인가. 흔히 아는 대로, 사람이 태어난 ···. 네 기둥에는 여덟 개의 글자, 곧 팔자(八字)가 들어 있다. 사주팔자다. 태어난 때가 왜 그렇게 중요한가. 지은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은 우주의 기운이 호흡을 통해 아기의 신체에 각인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존재와 우주 사이의 첫 번째 마주침이다. 그 순간 아기는 후천의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사주팔자란 그 입구에서 부과되는 시크릿 카드에 해당한다. 모든 존재는 이 여덟 개의 카드를 가지고 생로병사의 마디를 넘게 된다.”

그는 사주팔자의 앎이란 결코 운명론이 아니며, 운명에 개입할 수 있는 의 길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삶을 한 방향으로() 이끄는 거울을 깨고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명리학은 타고난 명을 말하고 몸을 말하고 길을 말한다. 그것은 정해져 있어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최대한 누릴 수 있음을 말해준다.”

 

책에는 사주, 팔자, 육십갑자, 간지 같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지만, 뜯어볼수록 어려운 개념어들의 철학적 원리와 함께, 실제로 사례를 들어가며 풀어보는 설명이 담겨 있다. 숙독한다면, 독자 역시 생년월일시에 명리학의 공식을 적용해 직접 자신의 사주를 볼 수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허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