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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고개-“북대흥안령”, 몽·한 분족의 천년 석별 고개

백수.白水 2012. 12. 7. 18:31

아리랑고개-“북대흥안령”, ·한 분족의 천년 석별 고개

주채혁 / 2012.10.01 / http://blog.daum.net/chuchaehyok

 

북대흥안령 호눈(呼嫩)평원 아리령(阿里嶺) 고개 추정도

 

아롱령[阿龍嶺, 根河市 阿龍山 소재; 순록 바위그림 유적]

 

북대흥안령 훌룬부이르 몽골스텝 대선비산에 조선(朝鮮선비(鮮卑)의 선족(Soyon겨레, 鮮族”: 목초지) 조상 제사동굴이 있지요.

 

난 그 화강암동굴을 단군탄신의 그 동굴 가셴둥”(嘎仙洞)이라고 부릅니다.

 

그 앞을 영동 쪽으로 흐르는 강물이 아리수이고, 아리수의 원천을 따라 오르다가 영동에서 영서로 넘는 고개가 아리령(阿里嶺) 고개랍니다. 원천명(源泉名)을 고려해 고개이름을 부르는 현지관행을 따라서 명명한 이름이지요.

 

아리랑(阿里嶺)고개”: 아리랑의 아리(阿里)맑은 물이라는 뜻인데 요즘 한반도에서 이르는 건강 생수와는 조금 다른 의미인가 봅니다. 몽골스텝에는 담수호와 염수호가 반반 쯤 있는데, 담수만 생명이 마시고 사는 물이라니까 맑은 물은 생물의 생명수인 셈이지요.

 

북대흥안령을 넘나드는 열차에서는 천안 명물 호두과자 식으로 흥안령 명물 아리표 볶은 수박씨도 판답니다.

 

유목민은 유목목초를 따라 몽골리안 루트를 타고 남미까지 이동해 가도 태생지 땅이름을 가지고 가는 관행이 있다네요. 영원한 탈향난민으로 태어난 이들이 유목민들이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서울의 한강을 광개토대왕 비문엔 아리수(阿利水)라 했는데, 아마도 그 뜻은 맑은 강물이 아닐까 합니다. 청천(淸川)강도 같은 의미일 수가 있겠지요.

 

아리령 고개를 좌우로 영동은 태평양의 해풍권(海風圈)인 눈()강지대 기()순록 순록유목권이고 영서는 해풍이 못 미치는 몽골스텝이란 기()양유목권이지요. 아리령을 좌우로 바다와도 같은 두 권역이 병존합니다.

 

기원전 6~7세기경 스키타이 철기문화가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영동의 순록유목이 이지대 대세를 아주 오랫동안 주도해오지요. 그러다가 철기가 들어와 생산력이 그보다 10여배는 높지만 개방공간이라 무한경쟁이 강요되는 몽골스텝으로 진입해 기마 양유목을 하게 됐습니다.

 

이로부터 최첨단 유목무력 기마사술(騎馬射術)을 확보해 영동의 순록치기를 영서의 양치기가 주도해 호눈(呼嫩)평원을 최후로 통합한 유목제국의 칸인 활의 임금(弓王) 동명성왕 고올리칸 또는 놈온 한이 출현합니다. 인류사는 세계제국을 지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유라시아 구대륙의 그것은 13세기 팍스 몽골리카로 이룩됐으니 그 씨앗이 이때 여기에 심어진 터이지요.

 

그래서 동북아시아 유목제국의 태반 맥고려(貊高麗)-몽골의 기원지 부이르호반에 2000여년 천신(薦新)을 거듭하며 모셔져오는 고올리칸(Goolikhan) 석인상이 동북아 유목제국사의 부동의 중심으로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1960년경에 저우언라이(周恩來) 수상이 한·중합동 호눈평원 상고사유적 발굴 직후에 직접, 한국사가들의 이 성역 출입 차후 절대금지 긴급조치를 황급히 취해버렸지요.

 

작금의 글로벌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생존상 부득이 종중(從中)을 하더라도 사실은 바로 알고 해야, 죽어도 살고 살면 반드시 이기지요. 사실(史實)은 오직 하나! 남북분단 2000여 년 전의 이야깁니다.

 

그 후 그런데 일단 광대한 고올리농장터를 일구며 천하의 요새 부이르호반 할힌골-홀본(弓江)일대에 고올리칸국을 창업하고 나서, 그 중의 고지대 맥()사냥꾼 출신의 후예들을 주축으로 하는 일부는 몽골스텝을 향해 계속 서남진을 해 몽골(貊高麗)인이 되고 순록유목태반 지향 성향의 상당부분은 헤이룽 강 쪽 동토지대 순록유목지를 향해 동북진해 조선-부여-고구려의 주류를 이루게 됐다고 봅니다.

 

추정컨대, () 주도 예() 통합으로 예맥(濊貊)의 고올리칸국을 드디어 창업해낸 후에 다시, 태평양 해풍권 저습지대 순록치기의 정통성을 밀도 높게 이어받은 예족(濊族: Buir-숫수달 사냥꾼)과 태평양 해풍 소외권 고원지대로 진출해 기마 양치기의 정통성을 지향하며 계속 발전해간 맥족(貊族: Elbenkü-山獺=너구리) 위주의 계열이 일대의 역사적인 분화를 일으켰겠지요..

 

맥계(貊系)와 예계(濊系)의 일대 분화, 그러니까 미(: 양치기)와 려(: 순록치기; Chaatang)태반 지향세력 곧 몽·한 간의 일대 분열이 야기된 셈이겠지요.

 

양유목민 주도의 순록유목민 통합이 진정한 유목제국의 효시라면, 그 과정에서 형성된 동북아시아권 “Meili심미안”(美麗審美眼메이리”: Beautiful; 謝光輝 主編 ?常用漢字圖解? 北京대학교 출판사 1997. 38, 472쪽 참조)의 대대적인 이합집산이 감행된 한민족 천년의 석별(惜別)이 아리령고개를 기점으로 감행된 듯합니다.

 

이런 유장하고 처절한 한민족의 극적인 일대 분화가 빚은 문화의 역사적 총화로 아리랑 민요가, 한겨레의 영혼심층에 시공을 넘어서 깊고 넓게 아로새겨져 온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즈음에 여기서 이 지역 원주민들의 몽골과 한국의 할힌골(忽本: 弓江 추정) 언저리 분족(分族)” 증언과 맞아 떨어지는 한민족사상 최대의 민족집단 천년 석별 서사시가 쓰이게 되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이보다 더 크고 본질적인 한민족 집단별 일대 분화 사건이 역사상에 더는 없어서이지요.

 

대부분이 문맹으로 보이는 이곳 호눈평원 원주민들이 이런 사시(史詩)를 구전할 뿐만 아니라 아직도 이 석별의 천년 한을 되새기는 일정한 상호간의 의례를 서로 간에 베풀고 있습니다.

 

몽 공동 동몽골 대탐사단이 1992728일에 몽·한수교후 처음으로 부이르 호숫가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촌로 잠스랑수렝(Жамсарансүрзн: 67)과의 회견에서 이런 관계 구비전승자료를 채집합니다. [당년 연말 SBS-TV 송년특집 다큐멘터리유목민의 땅 몽골을 가다(홍성주 PD 제작)로 방영]

 

이곳의 부녀자들은 게르()에서 나와 말()을 보러 가면서, 곧 화장실에 가면서 몽골 부녀자와 고올리 부녀자가 서로 마주치면, 몽골 부녀자들은 서남쪽에서 왼쪽 손을 들어 북동쪽을 향해 한번 돌리고 고올리 부녀자들은 북동쪽에서 오른손을 들어 서남쪽을 향해 한번 돌려 인사를 합니다.

 

몽골 사람과 고올리 사람은 본래 한 종족이었는데, 몽골 사람들은 여기서 서남쪽으로 가서 몽골 초원의 유목민이 되었고 고올리 사람은 여기서 북동쪽으로 가서 고올리 사람이 되었으므로 서로 한 피붙이인 동기간임을 일깨우는 인사의례이지요.”

 

일찍이 1970년경에 베. 수미야바아타르 교수는 부이르호반 숑크() 타반() 톨로고이()에 있는 고올리칸 석인상은 동명성왕상으로 몽골과 고()려의 공동조상임을 지적하고, 여기서 동북쪽으로 이동해간 이들이 오늘날의 농경 한국인이고 서남쪽으로 이동해간 이들이 오늘날의 기마 양유목민 몽골인이라고 설파했지요.

 

그의 이러한 견해는 이에서 그대로 입증됐습니다.

 

그 후 박창범 교수의 고구려 일식기록 분석결과(하늘에 아로새긴 우리의 역사김영사 2002)에서 그 최적 관측지가 압록강 일대가 결코 아니고 바이칼호 우측 몽골지역이라고 한 것이, 놀랍게도 이 지역 원주민들의 몽골과 한국의 할힌골 언저리 분족 증언과 맞아떨어지기도 했답니다.

 

같은 일식현상이라도 측정지에 따라 그 모양이 판이하게 다를 수 있어서 그 천착이 가능한 연구였습니다.

 

아리랑고개”: 아리령(阿里嶺)고개의 말뜻을 여러모로 헤아려 짐작들을 해 보지만 무애와 두계의 고지명설이 가장 무게가 있는 것 같다던 은사 서여 선생님의 혼잣말을, 곁에서 엿들어 몽골스텝의 거대축제 나담(Naadam)의 장가조 축문가락을 아련한 기억 속에 이에 곁들이며 IT시대를 맞아서도 난 아직껏 되새기고 있습니다.

 

1994년 초가을에 우리는 파른 선생님을 모시고 홍산문화권 서북단 다리강가 몽골스텝에서 고올리 돌각담 무덤을 발굴하면서 그해 한가위를 맞았지요.

 

날짜를 조금 앞당겨 맞는 한반도의 추석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놀랍게도 가을걷이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에 정확한 추석날을 누림을 깨닫게 됐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도 내가 수고해 만들어 태어난 게 없는 이 목숨이, 보내신 부모님 심정을 저마다 보름달보다 더 무겁고 환하게 올 한가위에 더불어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