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 온 글

남도의 봄 <사진 / 곽영을>

백수.白水 2013. 4. 6. 07:00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사진 몇 장 보냅니다. 사진은 2013년 3월 28일 - 31일 촬영되었습니다. <곽영을>

 

 

<다음 매화꽃은 전남 광양의 매화마을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아래 산수유 사진은 전남 구례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다음 진달래 사진은 전남 여수의 영취산에서 촬영되었습니다. >

 

 

 

 

 

 

(곽영을 / 2013년 4월 5일 작성)

 


 

늙은 매화가 화르르 토해 낸 꽃등불

 

햐아, 드디어 화르르 꽃망울을 열었다. 아무래도 지난주 발걸음은 너무 성급했다. 그 놈의 ‘봄 입덧’ ‘봄 울렁증’ 탓이다. 몇 번이나 전화로 묻고 채근했는지 모른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옆 붉은 홍매. 너무 붉어 검은 빛마저 감도는 수백 년 늙은 ‘흑매(黑梅)’.

사진작가들이 그 ‘검은 빛’을 잡기 위해 저마다 헤덤빈다. 누구는 ‘흐린 날씨가 좋다’고 하고, 또 누구는 ‘해질녘 약간 비낀 빛에 찍어야 한다’며 망설망설한다.

재두루미가 발을 하나 들고 서 있는 듯한 단아한 나무 자태. 우산 모양의 가지런한 나뭇가지 머릿결. 입을 다소곳이 오므린 채, 발갛게 달아오른 꽃들이 숯불처럼 우꾼우꾼 이글거린다. 하나의 꽃마다 앙증맞고 깜찍한 다섯 장의 진홍 꽃잎. 뿌루퉁하게 입을 내민 모습이 영락없는 철부지 딸따니다.

‘봄의 신이 뭇 꽃을 물들일 때/맨 먼저 매화에게 옅은 화장을 시켰지/옥결 같은 뺨엔 옅은 봄을 머금고/흰 치마는 달빛에 서늘해라.’(고려시대 문인 진화·陳華)

매화는 역시 고묵은 토종 매화가 으뜸이다. 떼로 핀 매화는 ‘양계장 닭’ 같다. 섬진강변 농원 매화는 대부분 매실을 따기 위하여 ‘대량 양식’하는 일본 개량종이다. 꽃이 덕지덕지 붙는다. ‘매화’라기보다는 ‘매실나무’다. 고고한 맛이 덜하다. 향기도 위로 붕 뜨는 감이 있다. 후욱! 약간 지분 냄새가 나는 듯도 하다. 우르르 피었다가, 우르르 진다. 벚꽃 닮았다.

조선 토종 매화는 꽃이 작지만 야무지다. 꽃이 띄엄띄엄 듬성드뭇하다. 어느 날 안간힘을 다해 화르르 토해 낸다. 매실은 그저 그렇다. 하지만 향이 은은하고 오래간다. 저녁밥 짓는 냄새처럼 가만바람에도 낮게 깔려 스며 든다. 알근한 암향(暗香)이다. 검버섯 마른 명태 같은 몸에서 어느 날 한 점, 두 점 꽃을 밀어 올린다.

장성 백양사 고불매(천연기념물 제486호)는 요즘 꽃망울이 성냥 알갱이만 하게 맺혔다. 중순쯤 돼야 연분홍 작은 꽃잎을 배시시 터뜨릴 것이다. 부얼부얼 털북숭이 다리에 사뿐히 내려앉은 연분홍 나비 모습이 아련하다. ‘칼 찬 선비’ 조식 선생(1501∼1572)의 남명매는 요즘 분홍빛 머금은 해뜩발긋한 꽃이 한창이다. 1561년 조식 선생이 산청 산천재 앞뜰에 손수 심은 것이다.

봄이 뻐근하다. 가슴이 빠개질 것 같다. ‘매화 향에 혈압이 오른다’(신석정 시인). 천지가 ‘텅 빈 충만’이다. 발효 폭발 직전이다. 퇴계 이황 선생(1501∼1570)은 왜 달밤에 매화꽃 언저리를 수도 없이 뱅뱅 돌았을까. 달빛과 매화 향기가 슴베든, 짧은 봄밤이 못내 아쉬워서 그랬을까. 이우는 달에 홀로 남은 매화가 안타까워서 그랬을까.

순천 선암사 늙은 매화들은 이제야 하나 둘 몸을 풀고 있다. 600여 살의 무우전 담장 가운데 홍매와 원통전 뒤편의 백매(이상 천연기념물 제488호)는 온 힘을 다해 꽃을 토해 내고 있다. 뒤틀린 가지에 부르트고 거무튀튀한 껍질. 거기에 나비처럼 매달린 분홍 홑꽃(홍매). 녹갈색 꽃받침에다 모시적삼 같은 하얀 꽃잎(백매). 다음 주쯤이면 벌들이 잉잉대며 코를 박을 것이다.

선암사 ‘뒤간(해우소)’은 늙은 매화에 둘러싸인 ‘고매 측간(古梅 厠間)이다. 홍매 두 그루와 백매 세 그루가 해우소 앞뒤로 가부좌를 틀고 있다. 조선 땅에서 제일 오래되고, 가장 멋들어진 뒷간. 누구든 들어서기만 하면 그깟 변비쯤이야 제풀에 스르르 괄약근 빗장을 풀어 버린다.

삐걱대는 대청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뒤를 본다. 번뇌와 망상을 훌훌 몸 밖으로 밀어 낸다. 바닥이 깊고 아득하다. 2층에서 일을 보면, 1층 밑바닥에 싸르락! 떨어진다. 편백나무 톱밥을 배설물 위에 층층이 깔아서, 묵직한 소시지변도 가볍게 내려앉는다.

칸막이와 벽은 나무 빗살로 가려졌다. 키가 낮아 옆 칸 사람과 ‘볼똥말똥’하다. 바람과 햇빛이 그 나무 틈새를 통해 무시로 들락거린다. 갓 피어나기 시작한 매화 향기가 따사로운 햇귀와 버무려져 향긋하다. 엉덩이가 고슬고슬 ‘매화 똥’이 화르르 벙근다. 벌거숭이 봄! 사각사각 봄날 가는 소리가 간지럽다. 문득 가르랑가르랑 늙은 매화의 마른 기침소리가 들린다. 봄이 혼곤하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정호승의 ‘선암사’에서)

<동아일보 / 김화성 스포츠레저전문기자>

 

 

마당 왼편 서재 앞에 흰 백매 사이로 보이는 병산서원의 판액이 더없이 아름답다

 

동재 앞에 홍매가 백매와 함게 마당 안을 화기 넘치게 한다. 전정을 위해 다듬은 가지마저도 발 아래 소북히 쌓인 모습이 나무 다듬는 정원사의 손길이 장인의 솜씨다

 

수줍게 핀 매화꽃 몇송이. 많이 피지도 않아 더 귀하다. 여백의 미를 그림 아닌 현실에서 보여 주다.

 

싱싱한 아름다움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그냥 두지 않고 봄바람 나게 한다

 

동재 앞에 화려한 색조로 단장하고 있는 홍매, 필락말락 열여섯 붉은 가슴.

 

흰 매화에는 애처러움을 가득 고여 있다

순수에는 슬픔이 배어 있다고.

 

아~ 아름다움 두 송이.

 

나그네 발길을 뗄 수 없이 만드는 저 아름다움.

 

처마지붕과도 어울린 매화. 어울림의 미학.

 

여행자 자취하여 글 한편을 남긴다

 

존재의 꽃망울

 

박 영 대

 

 

도저히 꽃으로 남은 타인

작년에 지난 행인이 넋 놓고 울고 가던

한 해의 틈이 평생을 못 오를 솟대의 허망한 목날개

뭉친 사내 가슴 나목의 우정처럼

허옇게 말라 구겨지고 떨어지고

안개 보에 싸서 아쉬움 둘러매고 가는

붉은 만큼 따르는 숱한 고통을

알 리 없는 강물에 첫걸음처럼 버리고

무심한 꽃길 따라오는 발등 찧는 길

 

 

얼굴 차마 보이기 힘든

숨긴 눈물 망울

 

 

한옥과 가지런히 함께 사는 매화. 저 방문 안에 책 읽는 소리 낭낭히 들린다

 

어찌나 단정한지..

 

정문에 복례문이라 썼다. 禮를 지키고 있는 매화

 

병산서원 강당격인 입교당. 그 자태가 어찌나 단정한지..

 

서원 입구인 복례문 앞에 선 필자. 유생으로 서원에 입학하다.

 

매화는 보고 또 보아도 물리지 않았다

 

서원 중심부 입교당 건물. 지조 있는 선비들이 탄생했을 것 같다

 

수령을 말해주듯 굵직한 밑둥. 우선 병선서원 관리자를 칭찬해 주고 싶다

 

어느 것과도 함께 어울리는 매화. 어울림의 미..

 

매화의 매력. 이 쪽을 봐도..

 

매화의 아름다움. 저 쪽을 봐도..

 

뒷뜰에 수백년을 서생들과 공부했을 백일홍나무

 

사당으로 통하는 문. 어찌나 앙증맞고..

 

입교당 문을 통해 보이는 뒷마당 풍경. 문이 액자였다

 

만대루 전경. 저 넓은 강당에서 발표하고 토론하고..

 

400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만대루를 받치고 있는 기둥들. 서생들이 줄지어 공부하는 듯.

 

만대루에 올라가는 통나무 계단.

큰 깨달음에 이르는 계단

생각이 그치는 곳에 道가 있다는데..

 

만대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입교당. 단정하다

 

고즈녁한 자태로 여행객을 사로잡는다.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학문은 외로운 길이다. 그러나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이 학문하는 길이다

 

차분한 나들이로 이만한 여행지가 더 이상 없을 것 같다

 

개나리도 피고

 

낙동강 건너 병산이 서생들의 눈을 식혀 주었을 것 같다

 

퇴계 선생의 매화시 한편을 쓴다

 

옥당억매玉堂憶梅

이 황

 

한 그루 뜨락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었는데

 

풍진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에 달을 보노라니

 

기러기 우는 소리에

그대 생각 애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