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名 중에는 ‘역사의 현장 ․ 인물의 발자취 ․ 시대의 잔영 ․ 풍속과 신앙 ․ 사랑과 애환... 등’ 유익하고 재미있는 정보가 담겨 있는 것들이 많다. 때로는 그 땅의 운명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듯이 옛날에 붙여진 이름 그대로 딱 맞아 떨어지며 현실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럴 때마다 신비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널리 알려진 사례로 청주국제공항이 들어선 곳에 있는, 청주시 강서동 비하리(飛下里)와 청원군 북일면 비상리(飛上里)라는 지명이 있었다. 이곳은 조선영조시대부터 기러기 모양의 큰새가 날게 된다는 풍수지리가의 예언에 따라 사람들은 그곳을 기러기가 나는 동네라 하여 비홍리(飛鴻里)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비상리, 비중리, 비하리로 三分되었다가, 청주시가 팽창됨에 따라 비하리는 청원군에서 청주시로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청주국제공항이 들어서고 보니 이륙지점은 비상리에 착륙지점은 비하리에 위치하게 되어, 전래되는 지명과 부합되었으니 참으로 신비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신비한 사례는 전국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지만,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무건리(武建里)만큼 앞날의 운명을 오롯이 地名에 담고 있는 경우가 있을까?
무건리는 적성면소재지에서 正南쪽에 위치하며, 감악산의 南西쪽자락에 자리한 험하고 깊은 山中마을로 양주에서 감악산의 설마치고개를 넘어 적성으로 연결되는 371번 도로 왼편에 있다.옛날에 당나라장수 설인귀가 산골짜기에서 무예를 닦았다고 하여 무건리(武建里)라고 한다는 지명유래가 전해진다.
설인귀와 관련된 지명유래는 감악산 아래 다른 마을에도 나타난다.
-. 설마리(雪馬里)는 당나라장수 설인귀(薛仁貴)가 칠중성(七重城 舟月里)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말을 달려 훈련하여 薛馬馳 또는 설인귀가 추운겨울 눈에 쌓인 상봉을 거쳐 감악산 봉우리로 달려 무예를 쌓았다고 하여 설마리라하고 설마동, 설마치라고도 한다.
-. 마지리(馬智里)는 설인귀가 주월리에서 태어나 장성하여 龍馬와 갑옷, 투구, 칼을 얻은 뒤 적성일대에서 훈련하였다고 한다. 그의 말굽이 제일 많이 지났다하여 마제리(馬蹄里)라 하였는데 발음이 변하여 마지리가 되었다고 한다. 마디, 마지, 마제라고도 한다.
-. 말굽두리는 마지2리에 있던 자연마을로 옛날 설인귀가 주월리에서 말을 타고 달릴 때 말굽소리가 요란스럽게 났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 같은 설인귀설화에 대해서는 다음기회에 자세히 살피기로 한다.
武建里(무건리)! 굳셀 무, 세울 건. 武를 굳건하게 세우게 된다는 말 아닌가?
武는 ‘호반(虎班=무관) 무’라 하는데, 文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한자사전에『무인, 무사, 병사, 군대의 위용, 무위, 병법, 전술, 무예, 무술, 병장기, 무기, 굳세다, 용맹스럽다, 맹렬하다, (군사를)부리다, 지휘하다 』등의 의미로 나온다.
1982년 무건리에 대규모군사훈련장이 들어섰다. ‘무건리훈련장’은 파주시 법원읍 직천리와 적성면 무건리 주민 250여 세대를 이주시키고 조성되었으며, 86년에 350만평으로 확장되었고, 현재 규모는 550만평에 달한다.
한국군 1군단 제병합동훈련장인 무건리훈련장은 미군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2002년 6월에 발생한 미군장갑차에 의한 여중생압사사건은 무건리 훈련장 주위에서 훈련 중이던 미군장갑차들의 이동 중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국방부는 국내에서 유일한 대전차의 쌍방 기동훈련이 가능한 군사종합훈련장(무건리훈련장)을 파주시 법원읍 오현리 일원에 1,100만평 규모로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97년부터 토지협의매수에 착수했는데, 가장 최근의 뉴스로 무건리훈련장 권역화사업으로 터전을 잃게 된 주민들을 위한 ‘법원읍 가야리의 이주단지 준공식’이 2012.12. 26에 열렸다는 소식이 뉴스에 떴다.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주민들의 설움을 어찌 달랠까마는,
이만큼 武를 굳건하게 세우는 곳이 어디 그리 흔하던가.
무건리! 여기서 이렇게 운명처럼 이름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지명의 신비다.
늘노천을 건너 무건리로 들어가는 무건교. 예전에는 이 다리를 통해서 동네로 들어가는 길이 없었다고 한다.
무건교에서 본 늘노천 아래 (북쪽)
무건교에서 본 늘노천 위 (남쪽)
군사격장입구. 출입금지,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다.
무건리에서 늘노천으로 흘러내리는 계곡.
파평산의 한 자락인 ‘포수바위’. 바위 왼편에 18홀규모의 퍼블릭골프장인 투모로cc 공사 중이다.
무건리에서 만난 노박덩굴의 열매
파주 무건리 물푸레나무 (坡州 武建里)
천연기념물 제286호. 경기 파주시 적성면 무건리 465.
물푸레나무는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을 파랗게 물들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물푸레나무는 주로 따뜻한 곳에서 자라며, 우리나라, 일본, 중국, 만주, 우수리 등지에 분포한다. 꽃은 4∼5월에 피는데 꽃잎이 없고, 열매는 9월에 갈색으로 익는다. 물푸레나무는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가지치기를 싫어한다.
파주 무건리 물푸레나무는 물푸레나무 중에서 천연기념물로 처음 지정되었으며, 줄기가 위로 자라 마치 2층으로 된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나무의 나이는 약 15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5m, 가슴높이의 둘레가 3.29m인데, 특히 줄기가 굵다. ‘수작골’이라는 옛지명이 있으며, 이곳 언덕에 있다. 예전에는 경작지 한 가운데 있어 마을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정자목의 구실을 하였으나, 지금은 민가가 없어지고 군 사격장으로 바뀌었다.
파주 무건리 물푸레나무는 생활에 많이 사용된 물푸레나무로는 드물게 규모가 크고, 정자목으로 이용되는 등 생물학적·민속적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지금은 출입금지다.
사진보기 ☞. http://blog.naver.com/dozra/40168240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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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관중인 ‘한국의 지명유래’ 1986년판. 저자는 ‘한국지명의 신비’라는 저서도 냈다.
[신비한 지명]
○ 평화의 댐이 건설된 지역은 강원도 화천읍 수상리(水上里)와 수하리(水下里)인데, 댐이 준공된 후 댐의 위쪽에 수상리, 댐 밑에 수하리가 자리하게 되었다.
○ 공주시 신관동(新官洞)은 조선 중기부터 풍수지리가의 예언에 따라 나중에 새로운 관청이 많이 들어설 자리라고 하여, 공주군 장기면 신관리로 불리어 오다가, 공주시가 되면서 공주시 신관동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공주교도소, 공주대학교, 운수연수원, 공무원연수원 등 다수의 관청이 이전 ․ 신설되었다.
○ 또한 야산이나 첩첩산중에 물이 넘쳐흐른다는 뜻의 ‘무너미고개’나 ‘물을 이용하는 둑’이라는 의미를 지닌 수리제(水利堤)라는 지명이 있어 옛날부터 모두 이상하게 생각을 했었는데, 농업관개시설이 설치됨에 따라 그 명칭에 딱 맞는 지명이 되었다.
1) 충북 청원군 문의면 미천리에 무너미고개가 있다. 이조 중엽의 고승인 정진대사가 불사를 일으키기 위하여 전국을 유람하던 중 이 고개에서 잠시 쉬다가 잠이 든 적이 있었는데, 꿈속에서 산 아래 마을전체가 물에 잠기고 큰 배가 떠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스님은 "현재는 이 산골짜기가 개천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골짜기에 물이 꽉 차고, 이 고개위로 물이 넘어갈 것”이라 하여 무너미고개로 불리어지고 있었다.
그 후 1980년대에 대청댐이 건설됨에 따라 대청호의 물이 이 마을까지 들어오고 무너미고개에 대형 상수관이 매설되어 청주지역에 상수도를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2) 전북 완주군 용진면 산정리에 수리제(水利堤)라는 고개가 있다. 이 고개로 물이 지나갈 것이라는 뜻으로 수리고개로 전해 내려오다가, 1954년경 인근에 아중저수지가 축조되며 이 고개에 배수관을 묻어 물이 통과하고 있다. 이처럼 전설로 내려오던 것이 현실화 된 곳이 많이 있다.
○ 충북 보은군 회남면에 거교리(巨橋里)라는 마을이 있는데, 조선중기 풍수가의 예언에 따라 앞으로 큰 다리가 생길 것이라는 풍수가의 예언에 따라 거교리로 불리어 왔는데, 사람들은 산골짜기에 어떻게 다리가 생기겠느냐고 의문을 품었지만, 나중에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거신교(巨新橋: 길이180m, 폭15m, 높이52m)라는 큰 다리가 생기며 이름값을 하게 되었다.
○ 보은군 회남면 사음리는 산간벽지로 화전민들이 사는 그 동네를 옛 부터 어부동(魚夫洞)마을이라 하였다. 산에 어부라니... 연목구어로 어울리지 않는 지명이었다. 그러나 1980년 대청댐이 건설됨에 따라 동네 앞까지 물이 차서 내수면어업이 활성화되면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 포천시에 있는 산정호수도 그 동네의 형상이 산으로 둘러 쌓인 호수와 같다하여 옛 부터 산정리(山井里)로 불리어 왔는데, 1921년 이곳에 제방을 쌓으면서 호수가 만들어 졌다.
○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大草里)에 신라말엽 도선국사가 창건한 운주사(運舟寺)라는 절이 있는데 이름에 '배를 띄운다, 배를 탄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나이 어린 스님이 물었다. "스님! 어찌 절 이름에 배 주(舟)자를 쓰십니까? 무슨 연유가 있습니까?" 그러자 스님이 대답했다. "어떤가. 사람의 마음속에 간직한 더러운 탐욕과 악심을 저배에 띄워 보내라고 그렇게 지었다네. 산 아래 동네를 보니 언젠가는 물에 잠길 것일세. 그래서 ‘운주사’ 라고 이름을 지었다네. 어떤가?“
수많은 세월이 흐른 1976년, 영산강종합개발로 나주호수가 생기면서 물이 동네아래 대초리까지 차서, 현재는 절 앞에 배를 댈 수 있게 되었다. <출처: http://js1440.blog.me/ 에서요약,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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