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국내여행. 산행

임진강의 가을.

백수.白水 2014. 10. 23. 07:51

추분에서 한로로 이어지는 절기는 어느새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다.

오늘 아침기온은 뚝 떨어져 올가을 들어 가장추운 3도까지 내려갔다.

일주일전 쯤 두어 차례 무서리가 내려 호박덩굴 등 연한작물들은 찜통에 넣고 약한 김을 올린 듯 히마리없이 주저앉았는데,

앞으로 된서리리가 내리게 되면 거의 모든 식물의 줄거리와 이파리는 김을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끓는 물에 데친 것처럼 무르고 찬바람에 금방 새까맣게 쪼그라들어 바스락거리게 될 것이다.

 

배추는 웬만한 서리를 견뎌내지만 무는 추위에 약해서 바람이 들게 된다.

바람 든 무와 ooo는 못쓴다고 하지 않던가.

따라서 경기북부지역에서는 된서리가 오기전인 11월초까지는 김장을 하게 된다.

 

시골에 살더라도 동네를 벗어나지 않으면 계절의 변화에 둔감해지기 십상이라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임진강의 가을을 찾아 나섰다. 구미연, 잠두봉, 당포성, 호구협과 썩은소, 꽃답벌을 돌았다.

임진강은 역시 주상절리현무암적벽에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일품이다.

 

나는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온 산을 붉게 불태우는 화려한 단풍보다는

참나무나 낙엽송처럼 채도가 낮지만 연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파스텔톤의 가을색을 좋아한다.

 

아내와 도란도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며 걸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남편에게 맞고 사는 여자들이 꽤나 있단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젊은 날 의처증이 심하고 술에 빠져 살던 어떤 이의 남편은 새로 태어난 일란성쌍둥이를 보더니 한 놈은 내 새끼가 맞는데, 다른 녀석은 누구새끼냐?”며 닦달을 하고 폭력을 일삼았단다.

남들은 그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들하지만 어떻게 남의 부부관계를 제대로 알겠느냐고 하소연을 하더란다.

 

 

半夜嚴霜遍八紘 반야엄상편팔굉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肅然天地一番淸 숙연천지일번청

숙연히 천지가 한번 깨끗해지네

 

望中漸覺山容瘦 망중점각산용수

바라보는 가운데 점점 산 모양이 파리해 보이고

 

雲外初驚雁陳橫 운외초경안진횡

구름 끝에 처음 놀란 기러기가 나란히 가로질러 가네

 

殘柳溪邊凋病葉 잔류계변조병엽

시냇가의 쇠잔한 버들은 잎에 병이 들어 시드는데

 

露叢籬下燦寒英 로총리하찬한영

울타리 아래에 이슬이 내려 찬 꽃부리가 빛나네

 

却愁老圃秋歸盡 각수노포추귀진

도리어 근심이 되는 것은 노포(老圃)가 가을이 다 가면

 

時向西風洗破觥 시향서풍세파굉

때로 서풍을 향해 깨진 술잔을 씻는 것이라네

 

<권문해(權文海) / 초간선생문집(草澗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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