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국내여행. 산행

하멜등대와 여수 구항

백수.白水 2016. 1. 6. 06:50

하멜등대는 여수시 종화동 '여수구항 하멜 수변공원'의 방파제 끄트머리에 조성된 무인등대로, 광양항과 여수항을 오가는 선박을 위한 시설이다. 《하멜표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Hendrick Hamel)이 여수 지역에 머물렀던 것을 기리기 위한 하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에 건립되었다.

 

 

 

하멜표류기(Hamel,H. 漂流記)

 

조선 후기 네덜란드인 하멜(Hamel,H.)이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상을 기록한 책으로 난선제주도난파기(蘭船濟州島難破記)’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 관한 서양인의 최초의 저술로서 당시 유럽인의 이목을 끌었다.

 

1653(효종 4) 네덜란드의 무역선 스페로 호크(SparrowHawk)호가 심한 풍랑으로 난파되어 선원 64명 중 36명이 중상을 입은 채 제주도산방산(山房山) 앞 바다에 상륙했다. 그들은 체포되어 1328일 동안 억류되었다가 8명이 탈출해 귀국했는데, 귀국선의 서기인 하멜이 한국에서 억류 생활을 하는 동안 보고 듣고 느낀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예리하고 세밀한 관찰을 통해 조선의 실상을 비교적 정확하고 충실하게 기록했다. 그러나 어떤 내용은 잘못 인식되어 전혀 달리 전달된 사례도 있다.

 

책의 내용과 간행 경위는 다음과 같다. 1653110일 네덜란드를 떠난 포겔 스트루이스(VogelStruuijs)호는 61일 자바섬의 바다비아(Badavia)에 도착했다. 선원들은 그 곳에서 며칠 동안 휴식을 취한 다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총독 명령에 따라 스페로 호크호로 대만의 안핑(安平)으로 향발, 614일 도착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대만의 신임 총독으로 부임하는 네덜란드인 레세르(Lesser, C.)를 임지로 데려다주는 일이었다. 임무가 끝나자 다시 대만에서 일본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730일 나가사키(長崎)를 향해 출항했다, 그러나 풍랑이 심해 811일까지도 스페로 호크호는 대만 해협을 빠져 나오지 못했다.

815일 풍랑은 더욱 심해 선미(船尾)의 관망대가 떨어져 나갔고, 탈출용 작은 배도 잃어버렸다. 배 안에 물이 스며들어 어찌할 수 없게 되자, 선원들은 짐과 돛대마저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때 한 선원이 육지가 보인다고 외쳤는데 그 곳이 바로 제주도 남해안이었다.

 

정박을 시도했으나 혹심한 풍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 거대한 파도가 거듭 선창으로 밀려들어 드디어 스페로 호크호는 난파되고 말았다. 64명의 선원 가운데 28명은 익사하고, 육지에 오른 생존자 36명은 서울로 호송되었다. 서울에서 2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하다가 16563월 전라도로 옮겨졌다.

그동안 14명이 죽고, 다시 1663년 생존자 22명은 여수·남원·순천으로 분산 수용되었다. 이들은 잡역에 종사하면서 길고긴 고난의 억류 생활을 계속했는데, 어느 때는 구걸에 나서기도 하였다. 1628(인조 6)에 표류한 같은 네덜란드인 벨테브레이(Weltevree, 朴燕)를 만났으나 동포를 만난 감격도 잠시일 뿐 고통스러운 생활은 계속되었다.

하멜이 억류 생활을 한 곳은 전라도 여수 좌수영이었다. 다행히 작은 배 한척을 마련해 먹을 것을 구하느라 부근의 섬들을 내왕하면서 조수·풍향 등을 잘 알게 되었다. 탈출 직전까지의 억류 생존자수는 모두 16명이었다.

탈출 비밀이 탄로 날까두려워 전원이 탈출하지 못하고 8명만이 1666(현종 7) 94일 야음을 틈타 탈출에 성공, 일본의 나가사키를 경유해 16687월 암스테르담에 귀환했다. 탈출에 가담하지 않았던 나머지 8명도 2년 후 조선정부의 인도적인 배려로 석방,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책에는 이들의 귀환 사실을 쓰지 않았다. 따라서 조선에서 끝내 죽은 줄로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책은 1668년 암스테르담에서 3개 출판사에 의해 동시에 출간되었다. 이때 하멜은 13년 이상의 밀린 봉급을 동인도회사에 요구하느라 미처 고국에 돌아오기 전의 일이었다.

하멜표류기정본(正本)1920년 회팅크(Hoetink,B.)에 의해 발간되었다. 정본의 내용 구성을 보면, 1부는 난파와 표류에 관한 기술, 2부는 조선왕국기 朝鮮王國記로 되어 있다. 2부는 한국의 지리·풍토·산물·정치·군사·풍속·종교·교육·교역 등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저자가 거의 14년 동안 군역·감금·태형(笞刑유형(流刑구걸 등의 모진 풍상을 겪으면서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접촉을 하였고, 남북의 여러 지역을 끌려 다니면서 당시 풍물과 풍속에 대한 사정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대한 깊은 인상과 풍부한 경험을 잘 살려 기록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한국에 대한 이해가 그다지 깊지 않았던 서양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최초의 저서로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책은 프랑스·영국·독일 등 서양의 많은 나라들이 다투어 번역, 간행했고, 우리 나라에서도 1934진단학보13호에 이병도(李丙燾)가 영역본(英譯本불역본(佛譯本)을 저본으로 번역, 전재했다.

그 뒤 하멜표류기 --漂流記가 일조각(一潮閣)에서 1954년에 간행되었고, 일본에서는 1961년이쿠타(生田滋)조선유수기 朝鮮幽囚記라는 제목으로 번역, 간행했다.

19801012일 한국과 네덜란드 양국은 우호 증진을 위해 각각 1만 달러씩을 출연해 난파상륙 지점으로 추정되는 남제주군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 해안 언덕에 높이 4m, 너비 6.6m의 하멜기념비를 세웠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왼쪽의 해상케이블카는 돌산공원자산공원을 오가며, 멀리 보이는 다리는 돌산대교

 

 

 

 

 

 

거북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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