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때맞춰 울리는 마을회관 사이렌소리에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은 올렸지만 근신해야 될 현충일에 보신탕을 거방지게 먹고 말았다.
전에 살던 동네 젊은 친구 셋이서 개를 한 마리 잡아가지고 왔다. 우리 집 앞마당에 가마솥을 걸어놨고, 안팍으로 부담이 없이 만만하므로 자주 행사를 치른다. 마침 서울에서 작은 형님이 나오셨고, 우리와 가깝게 지내는 우진이 할아버지도 부르니 분위기가 적당히 맞는다. 동갑내기로 아내와 친한 우진 할머니는 갓난 외손자 수발든다고 꼼짝 못하고 있으니 따로 챙겨서 가져다 먹이고...
내가 어렸던 시절, 형님들은 동네친구들과 자주 어울려 강고기나 미꾸라지를 잡았는데 끝나면 꼭 우리 집으로 몰려들었다. 춘궁기를 걱정해야했던 시절이었지만, 어머니는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끌어야 된다며, 한 번도 싫은 기색 없이 정성으로 끓여 먹였는데, 지금도 그때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중학교 졸업하던 해에 돌아가셨으니 아내는 시어머니 얼굴도 모른다. 하지만 하는 짓이 시어머니를 꼭 빼닮았다. 사람들 찾아오는 걸 반기고 거둬 먹이는 걸 즐긴다. 시장에 나가 수박도 사고 과일도 사들고 온다. 한 친구가 묵은 김치가 참 맛있다고 하니 갈 때 김치냉장고에 짱박아 둔 김치를 한통 실어준다. 작은 형님은 어제 오셨다가 오늘 저녁식사 후 가셨는데, 텃밭에 있는 야채 이것저것 챙겨드리고, 나는 집을 지키고 아내 혼자서 버스터미널에 모셔다 드리고는 이제 들어왔다. 그리고 한마디 한다. ‘아! 힘들다고....’
어제 옛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소야 사랑한다.” 그 집에 갔다. 그런데 그 집 주인장인 박사장이 몸이 안 좋다며 방에서 나오면서 하는 말이 어제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겼다는 것. 그분은 술을 먹고도 경운기를 자가용처럼 몰고 다니는데 옛날에 경운기전복사고로 내장이 파열되어 큰 수술을 받고 고생한 적이 있다.
그저께 동네사람이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비탈진 산길을 오르는데 워낙 경사가 심한지라 경운기가 뒤로 밀리더란다. 브레이크를 잡아도 소용없고 속절없이 계속 밀리니 겁은 나는데 뛰어내릴 순간은 놓쳤고, 밀려가면서 처박히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핸들을 부여잡고 용을 쓰다 보니 팔뚝이고 허벅지고 흉하게 타박상을 입었더라. 다행히 어찌어찌 간신히 수습을 했다고...
수습을 하고 내려오는데 비탈진 산길 푹 파인 웅덩이에 승용차가 빠져서 꼼짝을 못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일행 세 명과 넷이서 차를 밀어 줬단다. 세 사람은 뒤에서, 본인은 옆구리에서 고개를 박고 힘껏 밀고 있는데 갑자기 자동차가 붕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도망을 가더라고, 그 바람에 자기는 차 옆구리 반대편 한길이나 되는 낭떠러지로 나가 떨어져 세 바퀴를 굴렀단다.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겼다고 안도하며 동네로 내려와, 前노인회장님목장에서 조금 쉬었다가, 집으로 가려고 경운기 시동을 걸고 대문을 나서는 순간 경운기 30cm 앞으로 군용트럭이 휙 지나가더라고...그 집 앞은 직각으로 굽어드는 급커브길인데 트럭이 경운기 머리를 때리고 갔다면 모든 게 끝장 난거다. 하느님이 하루에 세 번씩이나 목숨을 구해주신 것인데 日辰이 좋았던 것인지, 일진이 더러운 날인지?
어제 그런저런 얘기를 하며 마당에 앉아 몇 사람이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 양반, 소 먹을 물을 받는다고 양동이에 수도꼭지를 틀어놓고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란다. 알고 보니 수도꼭지에 끼워놓은 비닐호스가 빠져 물 떨어지는 소리가 세게 들린 것. 다른 사람들 아무렇지도 않은데 혼자 기겁을 하는걸 보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 는 옛말이 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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