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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1500년간 우리땅 입증할 ‘이사부 토성’ 발견

백수.白水 2012. 8. 27. 12:16

강릉서…우산국 등 정벌 거점

 


강원 강릉지역에서 우산국(于山國·울릉도와 독도)을 복속한 신라 이사부(異斯夫) 장군 시대에 축성된 토성(土城)이 발견됐다. 최근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일 양국이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가운데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귀중한 증거라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26일 국강고고학연구소에 따르면 최근 시굴을 마친 강릉시 강문동의 옛 H호텔 신축 부지에서 흙으로 쌓은 신라시대의 토성이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발견됐다. 동해바다와 경포호 사이에 있는 이 토성은 폭 190, 길이 380규모. 6세기 초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토성은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 시대의 토성 가운데 최대급으로, 둘레가 1에 이른다.

 

토성이 축성된 이 시기는 512년 우산국을 정벌,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땅으로 복속한 신라의 이사부 장군이 하슬라(옛 강릉) 군주로 있던 시기다. 이번에 발견된 토성은 이 지역이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복속하기 위한 군사적 거점이나 출항지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이사부 장군이 1500년 전 우산국을 복속한 것에 대한 관련 자료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성곽전문가인 심정보 한밭대 교수하슬라 군주였던 이사부 장군이 축성하고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우산국 정벌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일 양국이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가운데 1,500년 전 우산국(于山國ㆍ울릉도와 독도)을 우리땅으로 복속시킨 이사부(異斯夫) 장군의 군사적 거점으로 추정되는 토성(土城)이 강원 강릉시에서 발견됐다.

1,500년 전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복속한 것은 역사적 중요한 사실이지만 그 동안 관련
자료가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번 토성 발견으로 이 지역이 이사부 장군의 우산국 복속을 위한 출항지였다는 사실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화재발굴조사 기관인 국강고고학연구소는 26일 강릉시 강문동 H호텔
신축부지에서 흙으로 쌓은 신라시대의 토성이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발굴조사를 진행한 차재동 소장은 "성곽 둘레가 1km에 달해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시대의 토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며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축소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토성의 축소시기가 삼국사기에 기록된 512년 이사부 장군이 하슬라(삼국시대 강릉지명) 군주로 있으면서 우산국을 정벌,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땅으로 복속한 때와 일치한다. 학계에서는 이사부 장군이 하슬라 군주로 부임한 이후 토성을 쌓아 군사적 거점을 만들고, 512년 출항해 울릉도와 독도를 정벌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보고 있다.

5∼15cm씩 차곡차곡 흙을 쌓아
조성한 이 토성은 성곽 아랫부분의 외벽과 내벽 사이의 너비를 말하는 기저부가 42∼60m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백제 풍납토성의 기저부가 43m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상상할 수 있다. 성을 쌓으면서 흙이 밀려나가지 않게 댄 나무가 아직 그대로 박혀 있으며 성에 불이 나면 이를 끄기 위해 사용했던 집수시설 등의 흔적도 나왔다. 경사가 급한 곳은 하중을 견딜 수 있게 계단형으로, 암반이 있는 곳은 암반에 턱을 만들어 흙이 떨어져 나가지 않게 했을 정도로 매우 과학적으로 쌓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성 축조에 사용된 흙은 대부분 뻘흙이 많아 인근의 경포호 흙을 옮겨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밭대 심정보
교수는 "이 토성의 규모와 출토 유물을 볼 때 1,500년 전인 6세기 초 이사부 장군이 이곳을 거점 삼아 배를 만드는 등 준비과정을 거쳐 우산국 정벌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