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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길을

주역원리로 노벨상을 탄 닐스 보어

백수.白水 2013. 3. 19. 18:56

 닐스 보어의 원자 모델 발표 50주년을 기념해 덴마크에서 만든 우표.

 

새해 신년운세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데 물어볼 마땅한 곳이 없다. 인터넷 보급과 함께 운세사이트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지만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점집’을 가자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점집을 간다 해도 실망하긴 마찬가지다. 공부가 깊지 않은 ‘생계형 철학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주역(周易)이나 명리학(命理學)을 스스로 공부해볼까 하지만 내용이 너무 어렵고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어 ‘암호’처럼 보인다.

실제로 주역과 명리학은 어렵다. 주역은 예로부터 왕이나 공자 노자 같은 성인들, 학식이 깊은 학자들이 연구해온 학문이다. 동양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도 주역과 명리학은 ‘10년을 공부해야 겨우 눈이 뜨인다’고 할 정도다.

주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학문이다. 성군으로 추앙받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쓰고 공자(孔子)가 ‘십익(十翼)’이라는 해석을 붙여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주역이 되었다. 공자는 나이 들어 주역을 가장 좋아했는데 너무 열심히 읽은 나머지 책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한다.

주역을 흔히 동양에서만 연구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해다. 서양에서도 주역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다. 현대 물리학자 중에는 주역을 학문에 적용하여 192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학자까지 나왔다. 바로 덴마크의 물리학자로 ’원자(原子)의 아버지’로 불리는 닐스 보어(1885∼1962)이다.

주역의 핵심이론은 태극과 음양이론인데 보어는 주역 이론들을 응용한 가설을 세운 후 실험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원자의 구성요소인 양성자와 전자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갖는다’는 실험 결과를 얻어 ‘상보성 이론’(complementarity principle)이란 것을 정립했다. 이는 기존 고전물리학에서 크게 진전된 새로운 이론이었다. 그의 연구는 양자역학(量子力學·quantum mechanics) 발전에 이정표가 되었으며 아인슈타인의 연구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닐스 보어는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Contraria Sunt Complementa)’이란 문장을 남겼는데 이는 주역의 음양이론과 일맥상통한다. 주역에는 ‘우주만물은 태극에서 나와 음양이 되고 음양이 또 음과 양을 낳는다. 음과 양은 서로 상보적으로 존재하며 음에서 양으로 양에서 음으로 변화한다’고 되어 있다.

닐스 보어는 가문(家門)의 문장(紋章)에까지 주역을 상징하는 태극도를 그려 넣었다. 노벨상 수상식장에 참석할 때에도 주최 측의 승낙을 얻어 주역 팔괘도가 그려진 옷을 입고 참석했다. 덴마크 정부는 보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500크로네 화폐에 태극도를 배경으로 한 그의 초상화를 새겨 넣었다. 이런 사실은 1987년 11월 7일자 동아일보 기획기사 ‘양자역학 푼 보어의 음양철학’이란 제목의 기사로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주 명리학은 무엇일까. 그것은 주역에서 파생되어 나온 인간의 ‘운명 감정학’이다. 인간도 우주만물의 하나로 우주만물의 변화 과정을 따른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사주 명리학은 중국 당·송 때 체계가 만들어졌으며 명·청 시대 때 발전되었다. 현재에도 중국 홍콩 대만 등지에서 계속 연구가 진행되면서 내용이 정밀고도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주역이 전해져 주요 교과목으로 가르쳤으며 고려 조선시대에는 주역·명리를 담당하는 정부부처를 따로 두었을 정도였다. 최치원, 이이, 이황, 정약용 등 대학자들이 주역에 조예가 깊었으며 세종대왕 등 성군들도 주역을 가까이했다.

주역과 명리학은 미신이 아니다. 동양의 철학이자 물리학이며 동양학의 원류이자 우리 삶의 전 분야에 큰 영향을 준 동양의 사유방식이다.

현대는 아날로그시대를 지나 디지털 혁명이 진행 중이다. 디지털 과학의 원리는 0과 1 두 숫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는데 음양이론과 디지털이론의 상관관계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시대는 음과 양이 변화하듯 서양 주도에서 동양 주도로 모든 것이 바뀌는 중이다. 인류가 과학을 더 발전시키고 바람직한 미래 사회를 개척해 나가려면 동서양이 서로 발상과 업적을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주역이나 동양학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동서양의 철학적 융합이야말로 근원적이고 거대한 ‘융합’이 될 것이다.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