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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塞)의 겨울모습.

백수.白水 2013. 12. 23. 20:26

 

古來로 남과 북의 세력이 임진강을 경계로 대치하던 시기가 여러차례 있었다. 따라서 이곳은 양 세력 모두에게 전략적요충지였으며 아울러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변방이었던 것이다. 북쪽의 고구려와 남쪽의 백제 또는 신라가 세력다툼을 벌이던 시절, 양 세력은 서로의 중요한 길목을 지키기 위하여 강 언덕의 전망 좋은 곳에 요새를 구축했다. 北岸의 호로고루(瓠蘆古壘)南岸의 이잔미성(二殘眉城)이 바로 그곳이다.   마을에 해당하는 옛 우리말이 이며, 의미가 더욱 확장되어 고을이 되었다. 고구려에서는 ()’이라 하였는데,‘의 늘어진 발음 호로가 이곳의 지명이었으니 삼국시대에는 임진강중 이곳을 호로하라 하였던 것이다. ‘고루란 엣 보루라는 말이고...   二殘眉城(이잔미성)에서 殘眉(잔미)결코 초승달처럼 밀어내고 남은 눈썹이 아니다. 우리말 잣뫼를 한자음을 빌려 적은 것으로 잣은 古語이요, 뫼는 인 것이다. 현무암용암대지위에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산처럼 높은 성이 있었는데, 세월 따라 옛 이름은 간곳이 없고 '호로고루' 그 자취는 뚜렷한지라 오가는 동네사람들은 그곳을 일러  잣뫼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마주보이는 강 건너 남쪽 산에서 호로고루를 내려다보고 있는 옛 보루를 발견됐다. 서로 적국의 요새였지만, 후세사람들은 다정스럽게 마주한 그곳을 ‘2번째 잣뫼라는 의미로 ‘二잔미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버렸다. ‘호로고루인 것이다.   이잔미성은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금년 6월, 천신만고 끝에 이잔미성을 찾았으나 우거진 수풀 때문에 윤곽을 짐작하기도 어려웠고, 사방의 전망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안개 속을 헤매다 온 듯 흐릿한 기억만 남아있는데... 고랑포에서 강 건너 이잔미성의 위치를 오늘에야 제대로 정확히 확인했다.

 

호로고루에서는 강 건너 남쪽이, 이잔미성에서는 강너머 북쪽이 손바닥 보듯 훤히 보인다.  지금은 이런 곳을 진지나 벙커, 보루 등으로 부르나 고대에는 새()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한 듯하다. (,)塞翁之馬(새옹지마)에서처럼 변방(邊方), 요새(要塞), 보루(堡壘)를 뜻하는 변방<>로 쓰이며,窮塞(궁색)이나 拔本塞源(발본색원)에서는 막다, 지킨다는 의미의 막힐<>으로 쓰인다.   塞翁之馬[새옹지마] 중국 국경 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이에 이웃 주민들이 위로의 말을 전하자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며 태연자약(泰然自若)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말이 암말 한 필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주민들은 노인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며 축하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게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며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그만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위로를 하자 노인은 역시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며 표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북방 오랑캐가 침략해 왔습니다. 나라에서는 징집령을 내려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에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까닭에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이로부터 새옹지마란 고사성어가 생겨났습니다.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란 말도 자주 쓰지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새옹지마니 눈앞에 벌어지는 결과만을 가지고 너무 연연해하지 말아라.’ 하는 뜻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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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랑포에서 보는 임진강 南岸의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