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사를 와서 강가에 사시는 분, 초등학교1학년 손녀와 함께...
내일부터 낚시를 하겠다며 얼음에 구멍을 뚫고 있다. 얼음두께가 30cm, 깊이는 3m라고
원당3리 현무암주살절리
자장리 임진적벽
정겹게 손녀 손을 잡고 강을 건너고 있다.
용경(龍耕, 용갈이)이 시작됐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
『...파주 자장리 사람들이 삭녕바위라고 부르는 이 바위를 원당리 사람들은 고층바위, 혹은 고청바위라고 불렀다....
이 바위는 수십 킬로미터 상류의 삭녕에서 떠내려 왔다. 삭녕군수는 장단군수를 향해 우리 재산이니 세금을 내라고 엄포를 놓았고, 장단군수는 보관료를 내라고 응대했다. 단양의 도담삼봉과 같은 종류 전설일 뿐이지만 고려사는 장단나루에서 돌이 저절로 움직였다는 기록을 남겨 전설을 뒷받침해 준다.
삭녕의 바위는 왜 여기까지 내려왔을까? 바다를 그리워하는 강처럼 저도 그 모양으로 강을 따랐을까? 흘러가는 것들, 떠나려는 것들,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삶을 사람들은 불편해 하지만 한편으로 연민하고 동경한다. 바위는 바다로 가 섬이 되려 했을지 모른다.
현무암 바위. 그렇다면 저것은 검불랑에서부터 흘러온 것임이 분명하다. 역곡천을 따라 삭녕에 왔고 임진강을 따라 장단나루에 이른 것이다. 왕건에게 쫓겨 검불랑으로 사라졌던 궁예가 돌이 되어 내려온 것은 아닐까? 왕건의 돌배는 강을 거슬러 삭녕까지 올라갔다가 마전으로 내려왔다. 바위는 그 길을 따라 내려왔고 왕건이 머물던 개성을 코앞에 둔 이곳에 멈춰서고 말았다.
호로탄이 눈앞이다. 수많은 여울을 지나왔다. 임진강 마지막 여울, 호로탄만 지나면 강물을 타고 그대로 바다로 갈 수 있었다. 바위가 힘에 부쳐서도 꿈틀거리는 이유는 또 다시 꺾인 궁예의 꿈 때문인가? 개성보다는 바다로 나아가려 했다는 상상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어느 쪽이든 이루지 못한 꿈은 그것의 지향을 더욱 절실하게 한다.』 <이재석의 임진강 기행 중에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냉엄한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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