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겨 온 글

달팽이를 말함 / 석여공

백수.白水 2014. 3. 12. 09:03

 

 

 

 

 

달팽이를 말함

 

사람들은 집을 지어 거기 깃들어 살고

죽어 그 집 끌고 저승길 가지 못해 집에서 죽지

물 같은 점액질의 달팽이는 스스로 짓는 집 한 채 없이

살면서 기와 한 장 올리지 못한 집 뒤집어쓰고

거기 깃들어 살지

더듬어 갈 곳이 어디 극락뿐이랴

그러다 죽으면 바람에 몸 녹이고

살던 집 텅텅 버려두어도

세간은커녕 아무도 깃들지 않아

사람으로 태어나

기어코 한 세상 잘 살자던 불면의 밤이야

차라리 마음마저 팽개치고 떠난 달팽이로

그냥 그렇게 꼬물거리며 살다 가겠네

내가 사는 집이 큰 집이다 작은 집이다 고대광실이다

탐낼 것 하나 없이 어느 날 내 꿈도

저리 맑은 바람 촛농처럼 녹아 버렸으면 좋겠네

죽은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

기와 한 장 올리지 못한 집을 뒤집어쓰고서라도

또 그렇게 천천히 더듬어 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