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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빛은 없었다?… 빅뱅후 38만년 지나 한줄기 빛

백수.白水 2014. 3. 22. 00:51

 

‘중력파 흔적’ 발견으로 본 우주의 비밀

 


 


17일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는 남극에 있는 바이셉2(BiCEP2) 망원경으로 우주배경복사를 관찰한 결과, 우주가 빅뱅 후 급격히 팽창했다는 ‘인플레이션’ 이론을 뒷받침하는 ‘중력파’를 찾아냈다고 발표해 전 세계 과학계를 흥분시켰다.

중력파는 질량이나 운동에 변화가 있을 때 발생하는 파동으로, 천체가 충돌하거나 폭발하는 천문학적 수준의 사건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사소한 일로도 생긴다. 그만큼 세상은 중력파로 가득 차 있지만 중력파는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검출이 어려웠다.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연구팀이 발견한 중력파는 빅뱅으로 탄생한 우주가 빅뱅으로부터 10-37초 후부터 10-32초까지 찰나보다 더 짧은 시간 동안 급팽창 과정에서 나온 ‘원시중력파’다. 빅뱅 후 38만 년이 흐른 뒤에야 우주에는 ‘빛’이 생겼는데, 이때 발생한 최초의 빛이 우주배경복사가 됐다. 최초의 빛은 원시중력파가 만든 왜곡된 시공간을 통과했기 때문에 그 흔적이 우주배경복사에 고스란히 남게 됐다. 연구팀이 찾아낸 우주배경복사 속 원형 편광 패턴이 바로 최초 빛의 흔적이다.

태초에 ‘빛’은 없었다

이번 연구결과로 밝혀진 것은 138억 년의 우주 역사 중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138억 년 전 대폭발이라고 부르는 ‘빅뱅’에서 시작됐다.

우주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힘인 전자기력과 중력, 약한 상호작용과 강한 상호작용이 모두 하나로 통일된 이른바 ‘대통일의 시대’를 겪은 뒤 급팽창하기 시작했다. 이때 시공간은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연구팀이 그 증거를 찾아낸 ‘인플레이션’의 시기다.

사실 빅뱅 이론의 초기 모델에는 인플레이션 단계가 포함돼 있지 않았다. 당시 빅뱅 이론에서는 우주가 ‘상대적으로 서서히’ 팽창해서는 오늘날처럼 균등한 우주가 존재할 수가 없다는 풀기 힘든 문제에 부딪혔다. 그러다 1980년 앨런 구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가 우주가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급팽창했다는 ‘인플레이션’ 이론을 제안함으로써 빅뱅 이론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빅뱅으로부터 약 3분 뒤, 급팽창을 마친 우주에서는 수소와 헬륨, 리튬 같은 입자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99% 이상이 이 과정에서 생겨났다.

성경에서는 빛이 마치 우주 생성 초기부터 있었던 것처럼 표현되고 있으나, 실제로 우주에서 빛이 태어난 것은 빅뱅 후 38만 년이나 흐른 뒤다. 이전까지는 우주의 밀도가 너무 높고 뜨거워 빛이 그 사이를 뚫고 나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주가 충분히 식고 밀도가 낮아지면서 빛 입자인 광자는 비로소 직진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이때 최초의 빛이 우주에서 깨어났다.

이 최초 빛의 흔적이 바로 우주배경복사다. 우주배경복사를 통해 우주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균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주 약간의 불균일 덕분에 우주에서 은하와 별이 만들어지는 것이 가능했다. 빅뱅으로부터 4억 년이 흐른 뒤의 일이다.

이석천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박사는 “인류가 예측하는 우주 역사의 굵직한 흐름은 이론과 실험값이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며 “우주에 대한 이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우주의 96%는 여전히 ‘베일 속’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꼼꼼히 설명할 수 있는 현대 천체물리학도 회의론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커다란 빈틈이 있다. 오늘날 주류 이론으로 자리 잡은 우주론이 정상 작동하려면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의 존재가 여전히 직간접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천체물리학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전체의 4% 정도에 불과하며, 아직 발견되지 않은 암흑물질이 26∼27%, 암흑에너지가 나머지 7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회의론자들은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96%를 끌어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현대 천체물리학이 우주를 잘 설명해왔고, 실험결과들이 이를 증명해주는 만큼,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역시 존재할 것이라 믿고 이를 찾기 위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 2013년 ‘힉스 입자’를 발견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역시 암흑물질을 찾기 위한 대대적인 실험 설비 업그레이드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센터 연구팀이 이번에 우주배경복사에서 중력파의 직접증거를 찾아냈지만 중력파를 직접 검출한 것은 아니다. 현재 중력파를 직접 검출하기 위한 연구가 미국과 이탈리아, 독일 등을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다.

이형목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 단장(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은 “2015년에 미국의 라이고(LIGO) 중력파 검출기 업그레이드가 완료되면 감도가 기존의 것과 비교해 10배 이상 높아지기 때문에 중력파를 직접 검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중력파를 직접 검출하면 우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증명하는 가장 극적인 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우주배경복사(宇宙背景輻射·cosmic background radiation) ::

우주 전체를 가득 채우며 고르게 퍼져 있는 초단파 영역의 전자기파로 빅뱅 이론의 가장 중요한 증거 중 하나다. 1965년 미국 전파천문학자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발견해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우상 동아사이언스기자>

 

 

우주론 연구는 ‘노벨상 노다지’

 



‘열복사’ 발견 윌슨박사 등 美연구팀 4차례나 독식

 

 

그동안 우주 생성의 신비를 밝힌 연구 성과가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우주배경복사 편광 패턴을 관측함으로써 중력파의 존재를 입증한 미국 하버드-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연구센터 연구진이 당장 올해의 유력한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급부상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주론과 노벨상의 인연은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뉴저지 주 벨연구소에서 근무하던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 박사는 전파 잡음을 제거하기 위해 마이크로파 탐지 실험을 진행하던 중 우연히 초기 우주 팽창 과정에서 생겨난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했다. 빅뱅 이론의 결정적 증거인 이 열복사를 발견한 공로로 이들은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우주배경복사 연구가 노벨상을 안겨준 사례는 2000년대 들어서도 있었다. 우주기원을 밝히기 위한 코비(COBE) 프로젝트를 주도한 조지 스무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과 교수와 존 매더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센터 박사는 우주배경복사가 복사선을 완전히 흡수하는 흑체(Black body)가 방출하는 ‘흑체복사’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균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해 2006년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됐다.

미국 천체물리학자 조지프 테일러와 러셀 헐스는 자신들이 발견한 쌍성 펄서(초신성폭발 후 생기는 2개의 중성자별)가 중력파를 방출하면서 궤도 에너지를 잃어 서로 점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아내 199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 연구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11년에는 초신성을 이용한 우주 가속팽창 연구를 수행해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알린 솔 펄머터, 브라이언 슈밋, 애덤 리스 등 미국 천문학자 3명이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전준범 동아사이언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