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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

백수.白水 2014. 4. 13. 16:28

 

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조성

  국가보훈처는 ‘4월의 6·25전쟁영웅으로 1951년 임진강 전투(설마리 전투)에 영국군 대위로 참전한 안소니 파라 호커리(Anthony Farrar-Hockley, 19242006)를 선정하였다. 그는 설마리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적의 포로가 되어 1953831일 판문점으로 귀환할 때까지 24개월 동안 무려 일곱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며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명예를 끝까지 지키려고 노력한 인물로 휴전 협정 이후 영국군에 복귀하여 북유럽 연합군사령관(대장)이 되었다.  설마리 전투는 6·25전쟁에서 UN군이 치른 대표적인 전투의 하나로, 19514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영국 글로스터(Gloster) 대대가 중공군의 파상공세에 맞서 처절하게 싸운 전투로 6·25전쟁사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실시된 고립방어의 대표적인 전례로 전사에 기록되고 있다. 글로스터 대대 장병은 중공군 3개 사단(42천여 명)의 인해전술에 맞서 수적인 열세에다 외부 지원도 끊겼지만 이들은 투항 대신 결전을 택했으며, 부대원 800여 명 중 40여 명만이 포위망을 뚫고 살아남고 나머지는 전사하거나 또는 적의 포로가 되었다.(인원수는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러한 글로스터 대대 장병들의 희생 때문에 중공군은 당초 계획보다 3일 이상 발이 묶였고, 그 사이 한국군과 UN군은 수도권 북방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서울을 사수할 수 있었다.  19576월 설마리 전투에서 자유수호를 위하여 싸우다 산화한 글로스터 대대 장병들의 넋을 추모하고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설마리 고지(파주시 적성면 감악산) 아래 암석에 전투비를 건립하였다. 이후 이곳 설마리전투비에서 매년 423일 추모식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 1992년에는 영국 찰스 왕세자가 다녀갔고 1999년에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다녀갔다. 한국을 방문하는 영국의 왕실과 정부 관계자들은 반드시 다녀가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는 설마리 전투 제63주년을 맞는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영국군을 추모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설마리전투비 주변을 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다. 추모공원 건립은 국가보훈처, 경기도, 파주시가 함께 추진하여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오는 423일 준공식을 개최할 예정이다.  영국은 6·25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규모인 군함 17척과 병력 56천명을 파병하여 기습작전과 특수작전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들 중 178명이 전사하였고 부상자 2674, 실종자 179, 포로 977명 등 많은 희생을 입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와 경제번영은 글로스터 대대 장병들과 같은 UN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름도 모르는 먼 타국으로 와 목숨 바쳐 싸워준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이 세계평화와 자유 수호를 위해 참전한 영국군의 고귀한 뜻을 후세에 전승하고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2014.04.09. 정해주 의정부보훈지청장]

 

 

 

 

 

 

 

 

 

 

 

 

 

 

 

글로스타샤교

 

추모공원에서 이 다리(설마천)를 건너면 설마리 고지 아래 산 바위벽에 벽돌을 쌓고 상하 각각 2개씩 모두 4개의 전투비()를 부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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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 [Battle of Solma-ri, 坡州 雪馬里 戰鬪碑]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마지리 산2-2에 소재하며, 2008101일 등록문화재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6·25전쟁 때 설마리전투에서 고지가 적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도 최후까지 설전을 벌이다가 전사한 영국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전적비이다.

 

6·25전쟁 때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영국군의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와 제170 경박격포대 c소대 장병들은 1951422일 경기도 파주시 설마리의 설마계곡에서 북한군과 중국군에 포위되어 4일 동안 격전을 치른 끝에 622명 중 39명만 살아 돌아왔다. 이들의 희생으로 중공군의 진격은 자연히 늦어졌고, 덕분에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에 새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설마리전투는 6·25전쟁에서 유엔군이 치른 대표적인 전투 중의 하나로, 고립방어의 대표적인 전투로 기록되는 등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957629, 영국군과 한국군 보병 제25사단은 설마리전투에서 자유수호를 위하여 싸우다 산화한 영국군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설마리 고지 아래 암석에 전투비를 건립하였다.

 

산 바위벽에 벽돌을 쌓고 상하 각각 2개씩 모두 4개의 비()를 부착하였다. 위쪽 2개의 비 가운데 왼쪽에는 유엔기를 새기고, 오른쪽에는 희생된 영국군의 부대 표지를 새겼다. 아래쪽의 왼쪽 비에는 한글로, 오른쪽 비에는 영문으로 각각 당시의 전투 상황을 기재하였다.

 

이 전적비는 영국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세계적 산업디자이너로 알려진 아널드 슈워츠먼(1936~ )이 당시 영국군으로 한국에 파병되었던 1957년에 디자인한 작품이다. 당시 유엔군의 참전 상황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파주시가 소유 및 관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