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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장경, 그 경이로움 속으로

백수.白水 2011. 5. 24. 07:15

 

화봉책박물관의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多經). 화봉책박물관 제공

 

‘비육신지필 급선인지필(非肉身之筆 及仙人之筆)’. 추사 김정희는 고려대장경을 일러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글씨가 아니라 선인의 글씨’라는 뜻이다.

올해는 고려시대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의 판각(板刻)을 시작한 지 1000년.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잇달아 열린다.

서울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의 ‘1011-2011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과 화봉책박물관(관장 여승구)의 ‘한국과 세계의 불경전’.

대장경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처럼 부처의 가르침을 기록한 불교 경전을 총망라한 것을 말한다.

가장 먼저 만든 것이 초조대장경. 초조는 처음 새겼다는 뜻이다.

초조대장경은 거란이 침입한 전란의 위기 속에서 1011년에 목판에 판각을 시작해 1087년 완성한 뒤 목판을 한지에 찍어냈다.

초조대장경은 송 거란 등의 대장경을 종합해 만든 것으로 당시로서는 가장 방대한 대장경이었다. 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작한 한자 번역 대장경이다.

초조대장경 목판은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됐고 현재 그것을 찍은 판본이 일부 전한다.

이것들이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초조대장경(대장경 초판본)이다.

초조대장경 목판이 모두 불에 타버리자 고려인들은 몽골 침입을 물리치려는 호국의지를 담아 대장경을 다시 만들었다.

이것이 재조(再雕)대장경으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대표적이다.

대장경은 고려인의 불심의 깊이와 불교문화의 수준, 인쇄출판 기술의 정수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한지에 찍어낸 목판본이 1000년 넘게 전해오는 것은 한지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한역 대장경으로는 동양 최대의 방대한 분량.

도자기와 대장경 컬렉션으로 유명한 호림박물관은 18일부터 9월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과 관악구 신림본관에서 ‘1011-2011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 특별전을 개최한다.

초조대장경, 재조대장경(목판본)을 비롯해 불경의 내용을 옮겨 적은 사경(寫經)대장경,

불경 관련 그림이 그려진 대장경, 중국 일본 티베트 등지의 외국 대장경 등 100여 점을 전시한다.

특히 국보 266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권2,

국보 267호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阿毗達磨識身足論) 권12 등 국보 4점과 보물 1점이 포함돼 있다.

국보 266호는 화엄경을 기록한 것이며 국보 267호의 아비달마는 부처의 지혜를 설명한 경전을 말한다.

초조대장경을 한두 점씩 선보인 적은 있으나 이렇게 국보 보물을 대규모로 전시하기는 처음이다.

국보 269호는 불교 경전의 내용을 시각적으로 쉽게 설명해주는 변상도(變相圖) 판화도 볼 만하다.


 

호림박물관의 국보 269호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佛說最上根本大樂金剛不空三昧大敎王經).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보관한다. 호림박물관 제공

 

고서 컬렉션으로 유명한 화봉책박물관은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화봉갤러리에서 ‘한국과 세계의 불경전’을 연다.

초조대장경 3점, 재조대장경 20여 점을 비롯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20여 점,

금은가루로 그린 사경 20여 점 등 350여 점의 불경 자료가 전시 중이다.

 
1000년 동안 이어져온 고려의 초조대장경.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초조대장경의 의미와 가치, 고려인들의 불심을 만나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