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 꽃

[스크랩] 마타하리

백수.白水 2014. 8. 4. 09:47

1917년 10월15일 아침. 파리 교외에서 한 여인이 총살되었다. 총살 직전 씌우려던 눈가리개마저도 거부한 채 그녀는 12명의 사수 앞에서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던지고 알몸으로 섰다. 그녀는 통상 마타 하리로 불리던 여성이었다. 본명은 마가레타 거트루이다 젤러(Margaretha Geertruida Zelle)로 네덜란드 출신의 무희였다. 그녀의 죄목은 스파이 혐의였다. 그 중에서도 한창 1차 대전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정보를 판 이중간첩 혐의였다. 당시 마타 하리를 재판한 프랑스 판사는 그녀가 독일에 판 정보가 프랑스 군사 5만 명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정도라고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사형을 선고하고 서둘러 집행했다. 마타 하리의 주검은 해부용 시신으로 처리되었다. 아름다운 미모로 유럽의 사교계를 오가면서 정보를 캐내 팔아먹었다는 팜므 파탈의 대명사 마타 하리. 그녀는 과연 스파이였을까?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름다운 무희

 

마타 하리, 즉 M.G.젤러는 검은머리에 올리브빛 피부, 커다란 갈색 눈, 아름다운 몸매를 가진 다소 이국적인 미모의 여인이었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네덜란드였지만 마타 하리는 무희가 된 이후 자신의 출신을 이런 저런 거짓말로 숨겼다.

실제로 젤러는 네덜란드의 사업가의 딸로 태어났지만 석유관계 사업을 하던 아버지의 파산으로 청소년 무렵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며 무척 어렵게 자랐다고 한다. 스무 살을 전후 한 즈음 젤러는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에 주둔하던 네덜란드인 장교 C.매클라우드와 결혼하고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 두 사람의 만남은 신문에 매클라우드가 낸 구혼광고로 인해 이루어졌다. 당시 식민지에 나가있던 유럽의 젊은 남성들은 백인 여성과 교제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백인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신문에 구혼광고를 냈다. 이 구혼광고에 응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젤러가 이런 식으로 매클라우드를 만나 결혼 한 것을 보면 당시 얼마나 그녀가 가난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남편이 있는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으로 간 젤러는 두 아이를 낳고 7년을 살았다. 그러나 이 결혼은 무슨 이유인지는 불분명하나 1901년 이혼으로 끝났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설과 의처증과 폭력 때문이었다는 설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이혼 후 젤러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유럽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가진 것 없는 이혼녀의 삶은 어디서나 그다지 녹록치 않았다. 빈털터리였던 그녀가 가진 것이라곤 아직도 젊은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뿐이었다. 한때 그녀는 프랑스 외교관의 정부로 살기도 하였지만 이 관계 또한 얼마가지 못했다.

젤러 인생의 전격적인 전환점은 1905년 그녀가 파리의 한 클럽에서 이국적인 미모를 한껏 돋보이게 하는 밸리 댄스를 선보이면서부터였다. 그녀의 동양적이고 자극적인 춤은 일약 유럽 사교계의 최대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남편과의 이혼으로 홀로 유럽으로 돌아온 그녀는 파리의 한 클럽에서

밸리 댄스를 선보이면서 유럽 사교계에 큰 화제를 모으게 된다.

 

노출이 많은 무대의상을 입은 마타 하리

 

그녀가 춘 춤은 정통 밸리 댄스는 아니었고 노출인 심한 의상과 자극적인 몸놀림을 바탕으로 한 스트립 댄스에 가까운 것이지만, 유럽 남성들은 그녀의 춤에 열광했다. 이때부터 젤러는 자신의 이국적인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이름도 마타 하리로 고쳤다.

마타 하리란 인도네시아어로 ‘여명의 눈동자’ 란 뜻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국적 용모를 더욱 신비롭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과거를 숨겼다. 마타 하리는 자신이 자바섬의 왕족으로 네덜란드인과 혼혈인 인도네시아 공주라고 과거를 날조했다. 때로는 인도의 여사제라는 거짓말을 퍼뜨리기도 하였다. 날조된 그녀의 이국적인 과거와 육체적인 매력은 색다른 눈요깃거리를 원하던 유럽남성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관능미로 유럽의 고위층을 사로잡은 마타 하리. 그녀의 미스터리한 과거와 이국적인 이미지는

색다른 눈요깃거리를 원하던 유럽남성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출처: en.wikipedia.org>

 

유럽 고위층 남자들의 혼을 빼놓다

 

마타 하리에 대한 입소문이 점점 퍼지면서 그녀는 파리 최고의 클럽인 물랭루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무희가 되었다. 마타 하리는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 대도시를 순회하며 매혹적인 댄서로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유럽 정치를 쥐락 펴락 하는 각국의 고위층과 관계를 맺었다.

그녀의 매력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유럽 남성들을 유혹하였다. 마티 하리의 이국적 매력과 자극적인 춤에 빠진 유럽 사교계의 남자들은 프랑스 군부와 정계의 고위층, 재계 인사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의 수상, 프로이센의 황태자 등등 나라와 분야를 막론하였다.

당시 해외의 식민지 쟁탈전으로 언제나 커다란 전쟁의 가능성을 품고 있던 유럽에서 각 국의 최고 정책 결정권자와 동시에 모두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언제라도 정보를 빼 내 스파이가 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마타 하리는 세계 1차 대전 전부터 영국의 정보 기관으로부터 의심을 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1차 대전이 일어날 당시 베를린에 머물러 이런 의혹을 더욱 가중시켰다.

마타 하리가 베를린에 간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한데, 스파이 교육을 받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지만, 그보다는 세월이 가면서 점차로 시들해지는 인기를 베를린에서 다시 회복해보려는 마지막 시도였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재기는 1차 대전의 발발로 좌절되었다.


체포당시의 마타 하리

 

스파이였나? 희생양이었나?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마타 하리는 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프랑스로 돌아오려고 하였다. 전쟁 중에 부상당한 20세 연하의 애인 블라디미르 드 마슬로프의 병문안 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독일에 적대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마타 하리의 무리한 프랑스 행을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특히 전쟁 전부터 마타 하리의 행동을 수상히 여겼던 영국의 정보기관은 베를린-마드리드간의 외교통신을 해독, 그녀의 스파이 행위를 잡아내고 프랑스로 들어가려는 마타 하리를 체포하여 3차례나 심문하였다. 마타 하리는 독일에서 얻은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조건으로 프랑스에 겨우 돌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녀는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었다. 마타 하리가 암호명 'H21' 라고 불리는 독일 스파이로 프랑스 정관계의 고급정보를 독일 측에 팔아 넘겼다는 혐의였다. 심문 과정에서 마타 하리는 독일군으로부터 스파이 제의를 받고 2만 마르크의 돈도 받았지만 스파이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이미 아름다운 무희에게 찬사를 늘어놓으며 추켜세우던 풍요의 시대는 끝났고, 전쟁이라는 각박한 현실을 맞이한 유럽에서 어느 누구도 그녀를 변호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범죄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소환되는 사람들은 모두 프랑스의 거물급 인사들이었다.

프랑스 고위층은 들끓기 시작했다. 외부의 적과 대치중인 때에 내부의 스캔들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빨리 사건을 끝내고 누군가 추문에 가까운 모든 비밀을 짊어져야만 했다. 마타 하리에 대한 재판은 너무 간단하게 끝났고 전시 상황이라는 명목 하에 사형집행도 서둘러 이루어졌다.

1999년 비밀 해제된 영국의 제1차 세계대전 관련문서에는 마타 하리가 군사 정보를 독일에 넘겼다는 어떤 결정적 증거도 없다고 밝히고 있다. 마타 하리가 실제로 스파이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녀는 한때 유럽을 들끓게 한 만인의 연인이었으며 또, 미모를 바탕으로 한 스파이 행각으로 총살당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여인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마타 하리는 오늘날까지도 뇌쇄적인 미모를 가진 속을 알 수 없는 여자 스파이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김정미 | 시나리오 작가, 역사 저술가

글쓴이 김정미씨는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관심이 많다. 역사 속 인물들의 면면에서 영화적 캐릭터를 발견하고 시나리오를 옮기는 작업을 하는 한편 역사관련 글쓰기도 병행하고 있다. [역사를 이끈 아름다운 여인들], [천추태후-잔혹하고 은밀한 왕실 불륜사], [어린이 역사 인물사전], [세계사 여자를 만나다], [그들은 어떻게 세상을 얻었는가] 등의 책을 썼다.

 







MATA HARI (1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