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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관음암과 천축사

백수.白水 2016. 2. 23. 09:03

 

 

[등산코스] 도봉서원터 - 구봉사 - 마당바위 - 관음암 - 마당바위 - 천축사 - 도봉대피소 - 도봉서원터

 

 

 

 

 

<<천축사 가는 길>>  -목필균-

 

먼 산빛을 친구 삼아/ 도봉산에 오르면/ 천축사 가는 길은 열려있다.//  젊은 까치 소리에 눈웃음 치고/ 이름 모를 풀꽃에도 손길을 주며/ 한 걸음 한 걸음 산길을 걸으면/ 노래하듯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가/ 오히려 내 갈 길을 재촉하니 재미있다.//  도봉산을 품어 안은/ 천축사의 끝없는 도량을 향해/ 일상의 상념들을 날려 보내면/ 근심은 바람 되어 맴돌다 사라진다.//  티끌 같은 몸뚱이에 자리 잡은/ 바위만한 욕심덩이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되돌아보는 시간./ 천축사 가는 길은/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하다.//

 

* 이 시는 천축사 원타 스님께서 신도 강정화님의 도움을 받아 글쓴이도 모르게 도봉산 입구에 詩碑로 세운 것이다. 세워진 때는 199712월인데, 동료 시인에 의해 글쓴이가 알게 된 것은 다음 해 3월이었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친필로 도봉산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석각(石刻)이다.

 

 

 

 

 

 

 

 

 

 

 

 

도봉서원 터

 

 

 

 

 

 

 

암각문 고산앙지(高山仰止)’계곡건너 바위에 새겨진 글씨로 1700(숙종26) 7월에 곡운 김수증(金壽增, 1624-1702)이 쓴 글씨다. 시경(詩經)에 나오는 것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라는 뜻이다. 김수증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봉사

 

 

 

 

 

 

보이는 네모난 구멍이 감실(龕室)이다. 석굴·고분 등의 벽 가운데를 깊이 파서 석불을 안치하거나, 묘의 주인공의 초상을 그려 놓은 곳도 역시 감실이다.

 

 

 

 

 

 

소나무의 표피가 고상하고 아름답다.

 

 

 

건너편엔 수락산이다.

 

 

 

 

 

 

 

 

 

 

 

 

 

 

 

맨 오른쪽이 선인봉일거다.

 

 

 

 

 

 

마당바위

 

 

 

 

 

 

 

 

 

 

 

 

 

 

 

 

 

 

 

 

 

 

 

 

 

 

 

관음암으로 들어선다.

 

 

 


 

관음암은 초기에 천축사의 부속암자로 무학대사가 건립하였으나 지금은 천축사와 별개의 사찰로 독립되었다. 창건이후 내내 도봉1동 산29번지에 있었지만 2011년에 산31번지로 이전하였다.

주지의 법명은 성원이며 신도수는 300여명정도 된다고...당우로는 극락보전, 산신각, 요사채, 오백나한전 석등 등이 있다. 오백나한전은 큰 바위를 지중으로 하고 있으며, 입구 오른쪽에 400년 된 전나무가 있다.

 

 

 

 

 

 

 

 

 

 

 

 

관음암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봉동 전경

 

 

 


 

 


 

 

 

 

 


 

 

 

 

 


 

 

 

 

 



 

 

 

 

 

 

 

 

 

 

 

 

 


 

 

 

 

 

 

 

 

 

 

 

 

 

 

 

 

 

 

화강암이 땅속에서 풍화를 받는 과정에서 미처 풍화되지 않은 암괴 즉 핵석이 노출되어 마치 탑처럼 쌓이거나 흔들바위형태를 하고 있는 것을 토르(tor)라 하며, 바위 밑 부분이나 측면에 암굴형태(감실모양)로 구멍이 파이는 것을 타포니(tafoni)라 하고, 바위상층부평면에 돌우물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나마(gnamma)라 한다.

 

 

 

 

 

천축사(天竺寺)

 

도봉산(道峰山)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673(문무왕 13)에 의상(義湘)이 만장봉 동북쪽 기슭에 있는 의상대(義湘臺)에서 수도할 때 현재의 위치에 절을 창건하고 옥천암(玉泉庵)이라고 하였다.

 

그 뒤 고려 명종 때는 영국사(寧國寺)를 창건한 뒤 이 절을 부속 암자로 삼았으며, 1398(태조 7)함흥으로 갔다가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하던 것을 상기하여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는 사액(寺額)을 내렸다. 절 이름을 천축사라고 한 것은 고려 때 인도 승 지공(誌公)이 나옹화상(懶翁和尙)에게 이곳의 경관이 천축국의 영축산과 비슷하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474(성종 5) 왕명으로 중창하였고, 명종 때는 문정왕후(文貞王后)가 화류용상(樺榴龍床)을 헌납하여 불좌(佛座)를 만들었으며, 1812(순조 12) 경학(敬學)이 중창하였다. 그 뒤에도 이 절은 영험 있는 기도도량으로 여러 차례 중수했는데, 현재의 당우는 1959년에 중수한 것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圓通殿복운각(福雲閣산신각·요사채 등이 있고, 참선도량인 무문관(無門關)이 있다. 특히, 무문관은 근래에 세운 참선 정진처로서 부처의 설산(雪山) 6년 고행을 본받아 한번 들어가면 4년 또는 6년 동안을 면벽수행(面壁修行)하는데, 방문 밖 출입은 일체 금지되어 있고 음식도 창구를 통하여 들여보내며 수행의 규범이 매우 엄하다. 고승 중 이 무문관에서 6년 또는 4년의 정진을 한 이들이 많다.

 

 

 

 

 

 

 

 

 

 

 

 

 

 

 

 

 

 

 

 

 


 

 

 

 

 

 


 

 

 

 

 

 

 

 

 

 

 

 

 

 

 

 

 

 

 

 

측면에 암굴형태(감실모양)로 구멍이 파이는 타포니(tafoni)현상.


 

 


 

 

선인봉(해발708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