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쳤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중앙 사대부에게만 집중된 당시 교육체계의 문제점과 구태의연한 교육방식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고는 여러 저술을 통해 아동교육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했다. 그중에는 지금 한국사회가 눈여겨봐야 할 내용도 적지 않다.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했고 다산학 18호(다산학술문화재단 발행)에 논문 ‘다산 정약용의 아동교육론’을 발표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세 가지 질문을 건네고 다산의 저술을 바탕으로 그 답을 정리했다. 》
Q. 가진 자만 배울 수 있나
“교육은 평등하다. 못 가진 자도 배워 높은 지적 수준에 오를 수 있어야 한다.” 다산의 형인 정약전(丁若銓·1758∼1816)은 1807년 흑산도에서 ‘사촌서실(沙村書室)’이란 서당을 열어 아동을 가르치면서 다산에게 격려의 말을 부탁했다. 다산은 이렇게 답했다.
“세계는 다 누에틀이다. 하늘이 백성을 여러 섬에 퍼져 살게 한 것은 누에 치는 아낙이 누에를 여러 누에틀에 펴놓은 것과 같다. 누에틀의 시각으로 볼 때 큰 섬은 중국이고, 작은 섬은 일본과 유구이며, 아주 작은 섬은 추자도 홍의도 가거도다. 구경하는 이들이 큰 섬을 부러워하고 작은 섬을 비웃지만 누에틀이라는 점은 결국 같다. 박학한 군자가 옛날 전적을 많이 쌓아놓고 법에 따라 가르치면 누구나 경서의 구두를 떼고 성현의 가르침을 파악하며 학업에 열의를 보이고 학자들과 어울릴 수 있다. 나아가 성인과 현인도 되며, 문장을 잘할 수 있고, 경세학도 익힐 수 있다. 작은 섬의 백성도 큰 섬의 백성과 다름이 없다.”(‘사촌서실기’)
다산은 이처럼 교육을 누에 치는 것에 비유하면서 작은 곳에서 키운 누에나 큰 곳에서 키운 누에가 차이가 없듯 사람도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배우나 좋은 곳에서 배우나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흑산도에서도 잘만 배운다면 중국에서 배운 것과 다르지 않으니 누구나 열심히 배우라는 것이다. 다산의 이런 교육관은 당시로선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한양과 그 주변 지역의 양반에게만 교육이 집중되던 시기에 지방, 그것도 전라도 섬 지역처럼 극단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서민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고 그곳 아이들도 공부에 열의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Q.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식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획득하는 능력과 방법을 가르쳐라.”
1812년 다산의 제자 정수칠(丁修七)은 아들이 공부할 나이가 되자 다산에게 교육의 목표와 방법을 물었다. 다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식 자체가 아니라 아동의 지식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지식이 미친다면 한 글자, 한 구절 모두 ‘글귀를 알아차리는 힘’(문심·文心)과 ‘슬기구멍’(혜두·慧竇)으로 안내하는 열쇠가 되지만 지식이 미치지 못한다면 제아무리 다섯 수레의 서적을 쏟아놓고 독파한다 해도 읽지 않은 것과 같다.”(‘사략평·史略評’) 다산은 “아동이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열어주는 데 학습의 목표를 두라”고 조언했다. 책을 열심히 읽고 암기했다고 하여 학습이 끝나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교사의 역할은 아동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데 있지 않고 인문학의 기초를 잘 가르쳐 이를 기반으로 아동이 다양한 활용능력을 갖추도록 돕는 데 있다.
이런 다산의 판단은 당시 아동의 교육 여건에 대한 분석에 바탕을 두었다. 다산은 아동이 학습에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이 12세에서 14세까지 3년간이며 그때도 300일 정도만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고 봤다. 아동이 너무 어리면 글을 읽어도 의미를 모르고, 사춘기가 되면 방황하니 공부에 집중할 수 없으며, 봄가을에는 날씨가 좋아 놀기에 여념이 없다는 것. 하지만 다산은 학습시간의 부족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놀이와 방황을 아동이 크면서 겪는 당연한 삶의 과정으로 봤기 때문이다. 또 다산은 아동기 삶의 목표를 공부에만 두지 않았다. 그 대신 이 기간에 아동이 스스로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터득하게 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Q. 공부에 흥미 갖게 하려면
“새 교육법과 새 교재를 개발하라.”
다산은 “법도를 따라야 지식의 길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진흙탕에서 허우적대는가?”(‘교치설·敎穉說’)라며 당시 통용되는 교육법과 교재가 지식을 늘리지도 못하고 오히려 학생을 혼동에 빠지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며 효과적인 교육법을 찾아내 적용했고 ‘아학편(兒學編)’ ‘소학주관(小學珠串)’ ‘아언각비(雅言覺非)’ 등 교재도 새로 만들었다.
다산은 아동의 학습능력에 따라 적절한 단계별 교육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습능력만 있다면 아이가 아무리 어려도 ‘논어’나 ‘시경’처럼 어려운 내용을 가르쳐도 좋다고 봤다. 체계를 세우고 흥미를 유발해 교육한다면 내용이 어려워도 학생들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는 것.“제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거듭 먹으면 물리고, 제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라도 자주 들으면 하품이 나온다. 15권에 달하는 수백 장의 책으로 대여섯 해를 공부하면 아무리 의지가 굳은 학생이라도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글을 원수로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러 달 한 책을 읽게 했다면 새로운 맛을 지닌 책으로 바꿔 줘라. 이것이 바로 정신이 번쩍 들도록 하는 법(환성성법·喚惺惺法)이다.”(‘교치설’)
다산은 아이가 공부에 꾸준히 흥미를 갖도록 하려면 새로운 교재로 바꾸고 교육법도 다양화해야 한다고 봤다. 그가 “모든 과목을 나누어 가르치되 간략하게 하는 것이 옳다”(‘경세유표’)고 말한 것도 아동으로 하여금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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