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오늘 품앗이를 했다.

백수.白水 2012. 6. 14. 18:30

고지란 가난한 사람이 농번기에 이르기 전에 식량을 대기 위한 수단으로, 논 한 마지기의 값을 정하여 모내기부터 마지막 김매기까지의 일을 해 주기로 하고 미리 받아쓰는 삯이나 또는 그 일을 말하는데, 지금은 농촌의 경제사정이 좋아져 품을 팔면 바로 품삯을 받을 수 있으므로 고지를 먹는 사람은 없으며 고지형태의 일도 모두 사라졌다.

 

두레는 중남부지방의 논농사 지대에서 한 마을의 성인남자들이 협력하며 농사를 짓거나, 부녀자들이 서로 협력하여 길쌈을 하던 공동노동조직을 말하는데, 지금은 노인회나 부녀회에서 공동기금 마련을 위해 공동작업을 하는 형태로 그 명맥이 일부 유지되고 있기는 하다.

 

 

아직까지 그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품앗이.

이란 삯을 받고 하는 일곧 노동을 말한다. 품을 판다는 것은 나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 것을 말하며 이때 받는 돈이 품삯이다. 앗다일을 해주고 도로 일로써 갚게 하다앗이는 명사형이다. 따라서 품앗이란 남에게 품(勞力)을 제공해준 만큼 다시 앗아 온다()는 말이니 노동력을 통한 갚음()이며, 서로 돌아가며 일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도움을 도움으로 갚아야 한다는 일종의 증답의례(贈答儀禮)와 상부상조(相扶相助)적 사고가 제도화된 것으로 보면 된다.

 

오늘 품앗이를 다녀왔다. 엄밀하게 말하면 품은 다 갚았는데 농사지원을 해 준 것. 금년 농사를 시작할 때 아내와 동갑내기로 가깝게 지내는 우진 네가 트랙터로 밭 500평을 갈아줬다. 일하는 것을 보면 남의 일이라고 건성으로 하는지, 아니면 내일처럼 정성껏 하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가. 3시간을 넘겨가며 얼마나 세밀하게 갈고 골을 타주는지, 그 마음씀씀이에 감동했다. 품삯으로 돈 십 만원 건네주면 되지만, 가깝게 지내는 사이로 돈으로 감사의 마음을 결제해 버리기에는 내 성격에 내 끼지 않는 일, 그날 점심 거나하게 사주고, 저녁에는 부부를 초대해 갈비 집에 가서 배 두드리며 먹고 노래방에 가고...

 

고마움을 받은 만큼 갚는 것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받은 은혜 계량하기는 어렵지만 배 이상으로 갚아야 된다는 것이 아내의 지론. 금방 되돌려 주는 것도 낯간지러운 일, 두고두고 갚아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그 집 힘든 일 있을 때면 가끔씩 밭에 나가서 도와준다. 고추 줄 맬 때 내가 좀 도와주고, 고추 순 딸 때 아내가 가서 도와줬고, 서리태 포트에 파종할 때 나는 아침나절, 아내는 하루 종일 도와줬다.

 

이사장으로 불리는 우진 할아버지. 나 보다 세 살이 많은데 많이 늙고 몸이 바싹 말라 삭정이처럼 가벼워보인다. 힘겹다고 이제 인삼농사는 접었지만 아직도 만평의 농사를 부부 두 사람의 힘으로 짓고 있으니 존경스럽다. 온몸을 짓누르는 고된 농사일, 평생을 눌려 살았으니 저리되었을 것이다. 월남참전용사로 고엽제후유증 때문에 정기적으로 보훈병원에 다닌다. 당뇨병이 있고 며칠 전에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고추농사 그거 보통일이 아니다. 나는 매년 150포기를 심고도, 소독을 하고 고추를 따고 말리는 일이 힘들어 금년부터 접었는데 그 집은 3,500포기를 심었다. 오죽하면 아내가 우진 할머니보고 사람이냐고 했겠는가. 키는 작지만 역도선수 장미란을 닮은 건장한 체구로 천하장사 슈퍼맨이다. 새벽 네 시 반이면 일어나서 아침밥을 해먹고 다섯 시 반이면 일터로 나간다. 시집간 딸이 무릎수술로 입원하는 바람에 백일도 지나지 않은 외손자를 데려다 열흘간 꼼짝 못하고 돌보다보니 농사일이 많이 밀려버렸단다.

 

오늘 서리태를 옮겨 심는다기에 도와주러 나갔다. 이사장은 백내장 수술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힘든 일 하면 안 된다지만 그 집 부부에, 품앗이 일군 둘을 불렀고, 우리 부부가 도와주는 것. 지난번 콩 한말을 25구멍짜리 포트 370개에 심어놓았는데 모종이 웃자라버렸다. 1,000평의 땅에 9,000포기 넘게 심는 일은 장난이 아니다.

 

나는 새벽 5시 반에 나가 수레에 모종을 실어 나르고, 심기 편하도록 군데군데 나눠놓는 일을 했다. 7시가 되니 품앗이 일군들이 나오고, 7시 반에 아내가 나왔다. 아내가 나오면 나는 집에 들어오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어림도 없다. 푸석거리는 땅위로 무거운 수레를 끄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 12시가 되어서야 내가 할 일이 모두 끝났다. 여자 넷이서 하는 콩 심기는 1/3이상 남았는데 나는 점심을 먹고 집으러 왔고, 아내는 다 심어주고 오겠단다. 집에서 늘어지게 한숨자고 일어났더니 3시 반, 아내가 얼굴 벌겋게 되어 들어온다. 한낮 뜨거운 햇볕에서 일하다보니 가슴이 답답하고 속이 메스꺼워 그늘에서 좀 누워 있다가 들어왔단다. 다른 사람들은 계속 심고 있고...

 

누구를 위한다는 것,  내일처럼 열심히 돕는다는 것, 힘은 들지만 뿌듯하고 보람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