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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의 입자 ‘힉스’ 찾았다

백수.白水 2012. 7. 5. 17:11

CERN “모든 면 일치 입자 발견… 존재확률 99.99994%”

 

전 세계 과학계가 48년간 애타게 찾아 왔던 ‘신의 입자’ 힉스(Higgs)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4일 오전 9시(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모든 면에서 힉스와 일치하는 입자를 찾았다”면서 “이 입자의 존재 확률은 99.99994%”라고 발표했다. 과학계에서 미지의 특정 입자가 존재한다고 하려면 반복적인 실험의 결과가 통계적으로 99.99994%의 확률을 넘어야 한다.

 

롤프 호이어 CERN 소장은 세미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힉스 입자를 찾은 것이냐”는 질문에 “비전문가라면 찾았다고 대답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자이기 때문에 이 입자가 힉스가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한 새로운 입자가 힉스인지는 추가 실험과 데이터 분석을 거쳐 12월쯤 확정될 것으로 과학계는 보고 있다.

 

CERN 실험에 참여해 온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한국CMS실험사업팀 연구책임자)는 “발견(discover)이라는 표현만 쓰지 않았을 뿐 힉스로 추정되는 입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힉스는 1964년 영국의 피터 힉스 박사 등 유럽과 미국의 물리학자 6명이 존재를 처음 예측했지만 그동안 존재를 입증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힉스의 존재가 증명되면 우주 탄생의 비밀을 찾아낼 수 있다.

 

힉스의 흔적을 잡아낸 아틀라스(ATLAS) 검출기. 힉스가 광자 2개(점선)로 붕괴되는 모습이다. CERN 제공

 

힉스 입자 발견 의미. ‘빅뱅직후(1조 분의 1초 이후)∼현재’ 우주 탄생과정 비밀 풀린다

 

 

전 세계 과학계는 힉스 입자의 존재가 확실시되자 흥분에 휩싸였다. 미국의 과학기술 전문지인 시넷(CNET)은 4일이 미국 독립기념일인 점에 빗대 “오늘은 과학계의 독립기념일”이라며 고무된 분위기를 전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설치된 두 검출기(ATLAS, CMS)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힉스의 질량이 약 125∼126GeV(기가전자볼트·1GeV는 10억 eV)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물리학계에서 힉스 입자가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한 영역에 포함되는 것으로 수소 원자 125개를 더한 질량과 비슷하다.

힉스 입자가 존재할 확률은 99.99994%다. 300만 번의 실험에서 한 번 정도 오류가 발생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말 CERN 측이 “힉스가 존재할 확률이 99.7%”라며 “힉스의 존재를 얘기하기엔 시기상조”라고 했던 상황과 비교하면 힉스 발견이 확실시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CERN의 지난해 발표가 ‘외계인(힉스 입자)’이 지나간 흔적을 발견한 것이라면 이번에는 외계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포착한 것에 해당한다”고 비유했다. 한국은 박 교수를 포함해 30여 명의 연구진을 CERN에 파견해 실험에 참여했다.

힉스의 존재에 전 세계가 들뜬 이유는 현대 물리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쌓아 온 체계가 옳다는 점을 인정하는 첫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강영 건국대 물리학부 연구교수는 “힉스가 존재한다면 지금까지 물리학자들이 자연계의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의미”라면서 “힉스의 발견으로 현대물리학의 뼈대로 불리는 ‘표준 모형(Standard Model)’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그동안 물리학자들은 자연계를 구성하는 물질을 쪼개고 쪼개 가장 기본이 되는 입자 12개(쿼크 6개, 렙톤 6개)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힘)은 4개의 매개입자(게이지 입자)를 통해 이뤄진다고 보고 자연계의 현상을 설명해 왔다. 여기에는 17번째 입자인 힉스도 필요하다. 이 17개 입자가 세상의 모든 물질과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만든다는 게 표준 모형의 핵심 개념이다.

지금까지 표준 모형을 구성하는 입자들은 힉스를 제외하고 모두 발견됐다. 힉스가 존재하지 않으면 표준 모형이 성립할 수 없다. 입자들이 힉스와 상호 작용하는 정도에 따라 질량이 결정된다는 게 표준 모형의 전제인데, 힉스가 없으면 입자들이 질량을 가질 방법이 없어진다. 질량이 없어지면 물질이 서로 힘을 주고받을 수 없다. 가령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질량이 다른 두 물체가 서로 끌어당긴다는 것인데 이런 법칙이 성립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표준 모형이 옳다면 힉스 입자는 있어야 하며, 힉스 입자가 없거나 예측과 다르다면 표준 모형이 바뀌거나 폐기하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물리학자들이 반세기 가까이 끈질기게 힉스를 찾아 헤맨 이유도 이 때문이다.

힉스는 빅뱅(우주 대폭발) 직후 우주의 탄생 과정을 알아내는 열쇠도 쥐고 있다. 이 교수는 “힉스가 존재하면 빅뱅 직후인 1조 분의 1초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우주 탄생 과정을 알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CERN은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해 하반기 추가 실험을 진행한 뒤 12월 힉스의 존재를 최종 판가름할 계획이다.

:: 힉스 ::
자연계를 이루는 기본입자 12개(쿼크 6개, 렙톤 6개)와 이들 사이의 힘을 매개하는 입자(게이지 입자) 4개에 질량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17번째 입자. 지금까지 관측할 수 없었고 태초의 순간에만 잠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돼 ‘신의 입자’로 불려 왔다.

 

픽터 힉스 등 6명이 존재 예측… 생존자 5명중 노벨상 나올듯...故 이휘소 박사 ‘힉스’ 용어 처음 사용


 

4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공개 세미나 현장에는 48년 전인 1964년 힉스 입자를 처음 예측한 영국의 물리학자

피터 힉스 박사(오른쪽)가 특별 게스트로 초청됐다. 왼쪽은 롤프 호이어 CERN 소장. 제네바=AFP 연합뉴스

 

 

힉스 입자가 존재할 것이라는 이론은 1964년 처음 등장했다. 4일 열린 CERN 세미나에서는 힉스의 존재를 최초로 추정한 물리학자들이 80세를 전후한 고령임에도 특별 게스트로 초청돼 현장 분위기를 달궜다.

힉스의 존재를 처음으로 예상했던 물리학자는 모두 6명이다. 이날 현장에는 영국의 피터 힉스(83), 벨기에의 프랑수아 앙글레르(80), 미국의 칼 헤이건(75), 제럴드 구럴닉 박사(76) 등 4명이 참석했다. 영국의 톰 키블 박사(80)는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고, 벨기에 물리학자 로버트 브라우트 박사는 힉스 발견을 확인하지 못하고 지난해 사망했다.

힉스 박사는 세미나가 끝난 뒤 “내가 살아있는 동안 힉스 입자의 존재가 확인됐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면서 “놀랄 만한 성과를 이뤄낸 CERN 연구진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 축하를 보낸다”고 소감을 밝혔다.


힉스 입자의 존재가 사실상 발견된 만큼 최초 추정자들의 노벨상 수상이 유력해졌다. 표준모형을 구성하는 입자가 발견될 때마다 노벨상이 하나씩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노벨위원회는 노벨상 수상을 최대 3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생존해 있는 5명이 모두 수상하는 이변이 일어나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힉스라는 이름을 처음 쓴 과학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저명 물리학자인 고(故) 이휘소 박사로 알려져 있다. 1967년 힉스 박사는 이 박사와 미지의 입자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이 박사가 1972년 미국에서 열린 고에너지물리학회에서 힉스의 이론을 언급하며 ‘힉스’라는 용어를 처음 썼다. 이후 힉스 입자로 이름이 굳어졌다.

힉스 입자 발견의 일등공신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다.

LHC는 둘레만 27km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원형 가속기로 스위스 제네바 인근 지하 100m 깊이에 묻혀 있다. 14년 동안 100억 달러(약 11조4000억 원)가 투입된 LHC는 2009년 가동에 들어간 이후 2년 만에 힉스로 추정되는 입자의 존재를 확인하는 쾌거를 이뤘다.

LHC는 양성자 여러 개를 뭉친 양성자 빔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킨 뒤 서로 반대방향으로 회전해 충돌시켜 이때 생성되는 입자의 자취를 통해 힉스를 확인한다. 힉스가 존재하는 시간이 워낙 짧아 힉스를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