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백수.白水 2011. 4. 3. 20:17

    2011.4.3(일요일)

 

아직 꽃은 피어나지 않았지만 4월이 되니 이곳도 완연한 봄날.

4월 6일이 조상의 산소에 성묘하며 찬 음식을 먹는다는 한식날.

오늘이 일요일이니 미리 산소를 찾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이고

들녘에서는 밭갈이를 하고 비닐하우스에서는 모판준비로 부산하다.

농사는 때가 있으니 나도 지난주 목요일 날 감자를 심었고,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3일간 도라지 이식 작업을 마쳤다.

도라지는 용각산의 주원료로 기침이나 가래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캐서 말려놨다가 감기가 왔을 때 달여 먹을 요량으로 심는 것인데

씨를 뿌리고 나서 10번은 풀을 매줘야 되고

일년생을 옮겨 심는데 꼬박 삼일이 걸린 셈이다.

사서 먹으면 편한데 국산을 고집하는 마누라 등쌀에 내 신세를 볶는 일이다.


나는 공휴일에 일하고 한가한 평일 날 나들이 하는 게 훨씬 편하다.

오늘아침 일찍 7시 반쯤부터 일을 하다가 아침식사를 위해 내려와 보니

린저 방에 새 글이 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밑줄 친 글이 눈에 쏘옥 들어온다.

본인의 고뇌에 찬 독백일수도 있고 누구를 향한 메시지일수도 있겠지...

“더 이상 사랑과 증오의 속박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긍정도 부정도 없이 자유지대로 가깝고 멀어지며,

기꺼이 탈주하며 회피하며 펄펄 날아다니고

다시 돌아서거나 또 다시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자유정신과 관계가 있는 것은 오직 더 이상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 그러한 사물뿐이다.“


속박과 자유라....

그런데 내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밖에서 식사하라고 부른다.

그러더니 이게 웬일. 무슨 연유로 이런 공명현상이....


아내가 밥상머리에서 구속과 속박 그리고 자유라는 말을 꺼낸다.

아침상에 올라온 계란찜을 화제로 올리며 엊저녁 TV에서 나온 얘기를 꺼낸다.

나는 피곤해서 소주한잔하고 일찍 잠들어 버렸는데,

우리나라 축산은 사육밀도가 너무 높다.

소는 물론이고 특히 돼지나 닭 같은 경우에는

몸을 돌리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면적에 너무 많이 집어넣고 키운다.

운동을 못하니 먹는 대로 살이 찌고 일찍 출하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박에서 오는 돼지의 스트레스를 생각해보라.

자연방사해서 키운 가축과 고밀도 사육한 가축의 질, 맛이 틀린다는 것이다.

계란도 놓아서 기른 닭과 집단 사육한 닭의 달걀을 깨서 보여주는데 질이 다르더란다.

구속과 속박의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몸인들 온전할 리가 없지.


그래서 우리 마누라 말이 우리 선조들 참 현명하다네.

닭도 풀어놓아 기르고, 돼지도 넓은 우리에 한두 마리만 넣고 집에서 나오는 구정물로 기르고,

개도 집에서 놓아기르다가 필요할 때 잡아먹었으니

짐승에게는 자유를 주고 사람은 질 좋은 고기를 먹은 것이 아니냐고, 


사랑도 증오도 경계를 넘으면 상대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본인 스스로를 속박하게 된다.

본인이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어 구속하게 되면

즉 정신이 구속되면 몸인들 온전하겠는가.

풀고 내려놓을 일이다.

내가 우리 새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증오의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연민의 정이 생기고, 이제는 사랑하게 되었다고 얘기하지 않던가.


생각과 정신이 중요한 것은 식물에도 있다.

식물 중에서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식물을 나는 인삼이라고 생각한다.

 

산삼을 사람이 밭에다 심으니 人蔘이라고 사람人자를 붙였지만

그 모양이 벌거벗은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이 많이 나오고

인삼의 머리를 腦頭라 하는데 (거꾸로 하면 두뇌가 되고)

식물에 뇌가 있는 머리가 있다고 이름을 붙인 선인들의 지혜와 재치가 놀랍다.

 

오늘 보니 도라지도 인삼과 비슷한 뇌두가 있다.

몸 전체 중에서 뇌두가 핵심이다.

땅에 수분이 너무 많거나 생육조건이 안 맞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반드시 뇌두 즉 머리부터 썩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온몸이 썩어 문드러져 버린다.

그러나 내가 삽으로 캐다가 몸이 반 토막이 났더라도

정상적인 뇌두부분을 옮겨 심으면 반드시 살아서 크게 되어있다.

오늘 내가 그런 사실을 발견했고 어린 모 중에서

뇌두가 성한지 아니면 살짝 맛아 갔는지 선별해서 심는 작업을 한 것이다.


동물도 심지어 식물 까지도 정신을 구속당하면 온 몸이 망가지는데

우리 인간이 스스로를 속박해서야 되겠는가.

진정한 자유란 신영복 교수의 말처럼 자기존재의 이유.

그 이유를 따라서 걸어갈 일이다.

사랑, 미움 그거 별거 아니다. 지나고 보면 일장춘몽일수도 있고...

사랑과 구속의 속박에서 기꺼이 탈출하여 자유지대로 훨훨 날아다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