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310p 분량의 장편으로 읽어 내릴수록 눈물겹다. 열심히 읽고 있지만 여태 <차례4. 아내 >까지 밖에 읽지 못했다.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소설 전편을 읽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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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나(실화 장편소설)
저자: 이재인
머리 말
나는 작자로서 내세울 만한 약력이 없다.
나의 지난 날들은 모두가 하잘 것 없는 것이고, 절망과 비참과 또 끝없는 방황의 연속이었을 뿐만 아니라 늘 어디로 가야하는 지 모르는 염려로 오늘날 까지 살아왔다.
굳이 밝힌다고 하면 어렸을 때는 의사가 되겠다던 꿈이 외로움을 알고부터는 문학의 길을 걷고자 하다가, 그것도 갑작스런 결혼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으며 생활수단으로 어쩔 수 없이 핸들을 잡은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실로 너무나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선 인생이기에 나는 늘 삶이 괴로웠고, 그래서 현실을 탈피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여태까지 전환점을 찾지 못했다.
이것은 어쩌면 내가 너무 무능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다만 운이 없는 인간으로 자위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내가 하고자 한 일이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는단 말인가.
그래도 나는 내 가족을 부양하여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나름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번번히 고용주측의 일방적인 불만으로 해고를 당했으며, 그래서 때늦은 철새처럼 이 직장에서 저 직장을 전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서글픈 현실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지금 이 시간에 핸들을 잡고 있는 모든 고용기사들의 슬픔이요, 그래서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속에 살아야 하는 그들 가족의 운명이기도 하리라.
나는 언제 어느 때나 떠날 각오는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마음 뿐 막상 갈곳이 없다. 그래서 늘 좀더 비참한 신세가 되어 끝내 밀려나곤 했던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몹시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들어도 못들은 채 보고도 못본 채 해야 하는 자가용 기사로서의 계율을 어겼기 때문이다. 어쨌든 알게 모르게 내 이야기 속에 휘말리게 된 분들에게 용서부터 빌어야 겠다.
좋든 싫든 십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와 내 가족에게 삶을 이어준 어른들을 욕되게 함은 인간의 도리가 아닌 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 젊음과 나의 모두를 불태워버린 지난 날들이 하도 허무하여 여기 되지 못한 독백을 하노니 너그럽게 용서하시고 이럴 계기로 가진자의 즐거움을 위하여 받아야 하는 못 가진자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조금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사실 내가 이 글을 쓰고자 한 의도는 황금의 우산속에서 놀아나는 전천후 인간들의 비리를 고발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 소설에 관계되는 주변 인물이 아닌 독자라면 누구나 작자의 진의를 이해하리라 믿는다.
<차 례>
1. 슬픔은 강물처럼
2. 영아의 일기
3. 그 해 겨울
4. 아 내
5. 산 넘어 산
6. 씨받이
7. 한 많은 소녀
8. 변호사의 집
9. 열 풍
10. 어떻게 하나
11. 비 정
12. 어디로 가나
13. 사미승
14. 뜬 구름
15. 아 빠
슬픔은 강물처럼 ( 1 )
병원에서 실려 나온 그 날 저녁이었다.
문병 온 손님들이 슬금슬금 아버지의 방에서 나오고 한참 있다가 큰 아버지마저 나오셨다. 다들 슬픈 얼굴이었으나 왠일인지 큰 아버지만은 몹시 언잖은 듯 화난 표정이었다.
이제 병실에는 아버지의 회사에 공장장으로 있는 외삼촌과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가장 친한 서울에서 오신 손님 한 분 뿐이었다.
잠시 후, 외삼촌이 나와서 응접실에 있는 녹음기를 들고 들어 가시고 나자 큰 아버지는 연신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면서 휑하니 밖으로 나가셨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 때 아버지의 유언을 녹음하셨다고 했다. 내용은 잘 모르지만 그 후 돌아가는 사정으로 보아 아버지의 공장은 외삼촌이 맡아 운영하기로 하고 큰 아버지는 일체 손을 대지도 못하게 했다. 아들인 나에게는 상속세를 물지 않으려고 그랬는 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 때 부랴부랴 공장을 외삼촌에게 매도한 것처럼 서류를 구며 놓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지 일 년이 조금 못 되어서부터 우리집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인사를 드리려고 할때마다 눈물을 감추려고 돌아 앉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그 당시 나의 어린 소견으로는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온 것인 줄 알았으나 어머님이 기어이 입원을 하시게 되고 또 내어 놓지도 않은 집을 복덕방에서 둘러보려 왔을 때에야 나도 대강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직 살아남은 가족을 위하여 혈육의 정을 끊으면서까지 믿고 맡겼던 공장을 외삼촌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버리고 어디로인지 자취를 감추어 버렸던 것이다.
아버지는 생시에 큰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북에서 단 둘이 월남을 하여 고학을 하면서 공부를 하였을 때는 그럴 수 없이 우애가 깊었다고 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부터는 서서히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아버지가 조그마한 목재소를 차려 운영을 하면서 돈이 조금 모이기만 하면 그것을 가져가서 사업을 한답시고 여러 번 날리신 후로는 더욱 발걸음을 멀리 하였고, 아버지도 더 이상 큰 아버지에게 돈을 대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여 사상공단에 큰 재재소를 차리고 자가용도 구입하여 공휴일이면 낚시와 골프를 즐기곤 하였으나 어머니와 동부인 하여 야외로 놀러 가시거나 영화 구경 같은 것을 간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집안에만 계셨으며, 가까이에 있는 시장을 가는 외에는 외출이라고 하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외삼촌댁에 갔다가 조금 늦게 오신 어머니는 그날 따라 일찍 퇴근을 하신 아버지에게 거의 죽도록 매를 맞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거의 매일 통금 몇 분 전이 되어서야 돌아오신다. 혹시 일찍 돌아오시는 날은 의례히 여러 명의 친구들을 대동하고 돌아와서 화투나 마작을 하였으며, 그때도 어머니는 손님들 앞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필요한 음식은 중국집에서 시켜다 먹었으며 잔 심부름 같은 것은 운전기사 아저씨에게 시켰다. 때문에 기사 아저씨는 늘 통금 직전에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래서 한 달에 두어 명이나 다른 얼굴로 바뀌였다. 그들의 불만은 늦은 귀가 보다도 때가 되어도 밥을 먹여주지 않은데 있는 듯 했다.
그때 어머니의 하시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할 정도로 모든 일은 아버지가 처리하였다. 심지어 회사에서 중역이 방문하여도 아버지의 명령 없이는 차 한 잔이라도 내어 오실 생각을 못하시는 어머님이고 보면 그까짓 기사 쯤이야 굶든지 말든지 아랑 곳 할 바가 아니였으리라.
지금 가만히 생각하면 우리가 이처럼 불행하게 된 것은 아버지가 너무나 어머니의 활동을 막아 어머니를 바보로 만들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아버지의 유언을 듣지 못하게 병실에서 쫓겨 난 그 길로 화를 내며 돌아가신 큰 아버지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다는 전갈을 받고 처음으로 시골에서 나의 집으로 오셨다.
큰 아버지는 미리 짐작을 하고 있은 듯 이렇다 저렇다 말 한 마디없이 묵묵히 장례를 치루었고, 역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의 무덤 앞에 쓰러져 있는 나를 일으켜 머리를 쓰다듬고 잠깐 품에 앉았을 뿐이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우리 두 남매는 이 년만에 천애고아가 되어 큰 아버지의 뒤를 따라 시골로 갔다.
...................<중 략>...............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 지, 그리고 또 꿈인지 생시인지 가느다란 염불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 누, 누구세요 ?."
가사 장삼을 헐렁하게 차려 입은 여승 한 분이 자기 옆에 결가부자를 하고 염불을 하고 있었다.
유진은 혹시 아빠의 천도를 위해 만길 아저씨가 보내신 스님이 아닌가도 생각되었으나 어쩐지 염불소리가 흐느낌처럼 들여서
" 스님은 어디서 오셨나요 ?."
하고, 물었다.
" 오 잠이 깨었나 보구나 ! 얼마나 고단했으면.....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스님은 학생이 망자의 따님이냐고 물었다.
" 네. 유진이에요."
스님은 눈을 감고 조용히 염주만 돌리 셨다. 염주을 돌리는 손이 떨리는 가 했더니 깜은 눈고리에서 눈물 방울이 맺히기도 했다.
그 때 저 아래에서 택시 한 대가 올라오고 있었다. 만길 아저씨의 차였다.
유진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 났다.
" 어머 아저씨 !."
" 그래. 네가 벌써 와 있었구나 !."
그때 만길 아저씨의 차에서 내려 뒤따라 오던 낯선 여인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검은 양장을 한 여인의 손에는 하얀 국화 꽃다발이 안겨져 있었다.
" 오오 당신 ! 당신은 순영씨가 아니오 ?."
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만길 아저씨가 눈을 뚱그렇게 뜨고 스님을 바라 봤다.
" 순영아 . 나다 나. 네 오빠 친구 만길이 !."
만길 아저씨가 껴안을 듯이 듬벼들자 스님은 한 발자욱 뒤로 물러나며 눈을 감고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
를, 계속하며 염주꾸러미을 열심히 돌려댔다. 떨리는 손의 염주꾸러미는 점점 속도가 빨라졌다.
만길 아저씨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머리를 쥐어박고 가슴을 두르리며
" 순영아, 제발 인간으로 돌아와 다오. 죽어서 부처가 되더라도 인간인 지금, 네가 인간을 위해서 살아야지 부처가 되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그것은 마치 부처님이 자기에게 하는 소리와도 같았고, 큰 스님의 꾸중 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 때 검은 양장을 한 여인이 들고 있던 꽃다발을 묘지 앞에 내려 놓고 두 번 절을 하고 나서
" 아가씨 이걸 받아 주세요."
핸드백에서 조그마한 인형을 거내어 여승 앞으로 내밀었다.
" 어머 ! 이 인형은 ?."
여승은 자기도 모르게 염주을 땅에 떨어 뜨리고 그 손으로 인형을 받았다.
" 오빠가 주신 아가씨의 인형이에요."
순영은 떨리는 두 손으로 인형을 받아 가슴에 품었다. 그러자 얼어 붙었던 온몸이 소리가 들릴 듯이 녹아 내리기 시작했다.
땅에 떨어진 염주꾸러미는 아래로 까마득히 굴러가 형체조차 보이지 않았다.
- 끝 -
< 이 소설은 지금은 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 한 운전기사의 일생. 구성상30%는 허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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