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는 서민이 헐벗어 바친 세금...그걸 떼먹어? 죽여야지"
○ 마르크스 읽지도 않은 자들이 마르크스 떠들어대는 세상이야
○ 지금 우파 좌파가 어디에 있나. 좌우 넘는 공정한 세상 만들어 야지
○ 돈이 나빠? 난 요즘 돈이 좋아. 옛날엔 악의 징표라고 봤는데
○ 사람사이 소통이야. 공자도 돈 하면 눈이 커졌다고
○ 朴대통령 서거에 욕도 안 나왔어, 나라 먹여 살리려 애쓰다 갔지...
○ 朴당선인 18년간 고독속에서 가슴에 칼 품고 지켜, 그게 내공
○ 부친은 게릴라전 공산주의자. 우익이 날 죽이려고 해 총 던져
○ 지하란 땅속에나 갈 놈이란 뜻, 유식한 놈들이 '芝河' 한자 붙여
긴급조치 위반자 석방(1975) 2.15긴급조치 위반자 석방조치로 출감한
시인 김지하씨가 인사차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 술대접을 받고 있다.
긴급조치 위반자 석방(1975) 지학순 주교 석방을 환영하는 원주시민. 75.2.19
五賊사건 2회 공판정에 나온 피고인들. 왼쪽부터 김지하 부완혁 김승균 김용성.
《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수감돼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39년 만인 이달 4일 무죄를 선고받은 김지하 시인(72)을 이튿날 강원 원주에서 만났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지지 선언을 했던 그는 인터뷰에서 1970년대 고초를 회고하며 박정희 시대와의 화해를 말했다. 인터뷰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비속어, 존칭 생략 등 그의 육성을 대부분 그대로 싣는다. (*)은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고 붙인 설명이다. 》

김지하 시인이 무죄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부인 김영주 토지문화관 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시인이 귀가하는 대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TV에서는 김 시인의 기자회견 장면이 나왔다. 느닷없이 ‘돈’ 이야기를 꺼내 듣는 이를 당혹스럽게 했다. “27억 원씩 받고 도망간 여자(통합진보당 이정희 의원을 지칭)도 있는데 사형선고 얻어터진 김지하가 몇 푼 받아서야 되겠느냐. 5억이 아니라 500억, 5000억 정도 주던가. 적어도 27억 이상은 줘야지.” 그의 발언은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때와 장소에 어울린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몇 시간 뒤, 김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더니 “하기 싫다. 난 내일 (원주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토지문화관 구경이나 오든지” 하며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 말을 들으며 얼굴을 마주하고 인터뷰를 청하면 가능성이 없지 않으리라는 작은 기대가 생겼다.
이튿날 토요일(5일)에 길을 나섰다. 서울에서 두 시간여. 토지문화관에 들어서니 부인 김 관장이 있었다. 기자는 김 시인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꼼짝 못한다는 김 관장을 설득했다. 마침내 김 시인이 오후 7시경 문화관으로 들어섰다. “혼자 정선 아우라지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기자회견 때 돈 이야기만 하셔서 당혹스러웠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수십 년간 떠든 게 민주주의였는데 민주주의 얘길 또 해? 지루하기 짝이 없지. 풍자? 그게 아니야. 누구는 제멋대로 떠들다가 27억 먹고 튀는 판이야. (이정희 의원이 대선후보 사퇴한다는) 기사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쥐새끼 같은 ×, 지랄하고 자빠졌네’라는 말이 튀어나왔어. 우습더라고. 하하하.”
그의 호탕한 웃음을 따라 기자도 웃었다.
“나도 나이가 들었어. 법원 쪽에는 공손히 인사했어. 근데 기자들을 보니 뭔 말을 하긴 해야 하는데… 느낌이 어떠냐길래 ‘아무 느낌 없다’ 하니 실망한 눈치였어. ‘이 자식들이 왜 실망을 하지?’ 다시 보니까 다 젊어. 똥구멍 같은 내 입에서 뭔가 나오길 기다리는 것 같아. 그래서 돈 이야기 했어. ‘나는 요즘 돈이 좋다. 왜? 돈이 나빠? 돈 싫어하는 사람 손 들어봐.’ 아무도 손드는 사람 없데. 나는 옛날엔 돈을 악(惡)의 징표라 봤어. 오래 살다보니 돈이라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수단이야. 아들에게 돈 주려다가 안 주면 인상 쓴다구. 부자지간에도 그래. 돈이 얼마나 중요한데.”
―민주투사가 속물 같아 보였습니다.
“공자도 돈 하면 눈이 커지는 사람이었어. 돈 많은 제자를 아꼈지(*자공·子貢을 말하는 듯). 나는 매일 돈 없어서 부인한테 ‘병신’ 소리 들어.(김 관장이 ‘내가 언제 그랬어요?’ 하자 시인은 다시 껄껄 웃었다.) 은행 가서 몰래 돈 꺼내 택시 타고 다녀서 이 사람한테 혼나…. 실제로 나는 지금 돈이 필요해. 두 아들 놈 유학 보내 공부시켜야 해. 아들 둘이 대학엘 못 갔어. 요즘 세상에 대학도 못 나오면 어디에 쓰나. ‘두 아들이 대학도 못 갔다’ 해도 놀라는 사람이 없어. 욕 안 하기로 맹세했지만 그럴 땐 ‘×발’ 소리가 절로 나와. ‘×발새끼들, 자기 자식들은 대학 졸업시켰으니까. 대학 못 보낸 부모 한(恨)을 모른다.’ 아이들 속에도 한이 맺혔을 거야. 나는 아비로서의 한이 또 있어.”
쩌렁쩌렁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잦아들었다. 김 관장이 “아니, 울려고 그러셔? 우는 건 또 처음 봤네” 하자 다시 우렁찬 목소리가 나왔다.
“안 울어. 내가 왜 울어…. 어떻든 그날 기자들 보니 갑자기 돈 이야기 한번 하자 생각이 들더라구. 근데 젊은 기자들 얼굴이 하나같이 ‘네가 돈 때문에 재심신청했구나’ 하는 표정이야. 그걸 보고 더 하기 시작했지. 내가 그런 면이 있거든. 남이 싫어하면 더 해. 하하하. 그런데 (회견 끝나고) 나오면서 후회가 들더라구.”
―(기자회견 내용이) 걱정이 되긴 되셨나 보네요.
“그럼, 나는 소심한 남자야.”
소년처럼 맑은 미소가 번졌다. 다시 거친 말이 이어졌다.
“내가 오적(五賊) 쓸 때도 사업가들이 뇌물 주는 건 욕하지 않았어. 하지만 국고금 빼먹은 놈은 찢어 죽여야 한다고 했어. 내 신념이야, 아니 민중의 신념이야. 장사꾼이 뇌물 주는 것은 상관없다 이거야. 그런데 국고금이라는 건 서민들이 헐벗어 바친 세금이야. 그걸 떼먹어? 죽여야지. 거기에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집권한 자들이) 돈을 쳐먹어? 스스로 혁명가라고 자부하는 목포 광주 한(恨)의 천재들이? 망월동 피값 받은 외에 또 받아?”
비록 욕설은 난무해도 그의 말은 받아 적으면 시가 될 듯, 발음도 정확하고 운율과 리듬까지 있어 몰입하게 했다. 김 시인은 이번 무죄 판결과는 별도로 오적 판결(선고유예)에 대해서는 못마땅한 눈치였다.
“스톡홀름대 한국문학회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처음 번역한 외국 문학이 오적이야. 나보고 참관하라 해서 스웨덴까지 갔잖겠어. 동양 최고 시인이 김삿갓 다음에 김지하라더군. 청중이 일제히 박수를 쳤어. 이런 비슷한 일이 러시아, 중국, 미국 등에서 있었어. 미친 생각이지만, 만약에 노벨상을 내게 준다면, 국가에서 오적을 유죄라고 하는 상태에서 주어지면 어떻게 돼. 나라 망신 아닌가. 물론 나는 반체제 작가로 영웅이 될 테지만(웃음)…. 나꼼수는 저질이야. 그런 것들로 무슨 선거를 이기겠다고. 내가 썼으면 간이 덜덜 떨리게 쓴다. 근데 그런 글을 오적 이후 못 썼어.”
그가 먼저 선거 이야기를 꺼내길래 화제를 선거로 돌렸다.
―이번 선거 흐름을 어떻게 봤습니까.

“마르크스 읽지도 않은 자들이 마르크스를 말하는 세상이야. 그런 사람들이 노무현 정권 때 전시작전권 반환 외에 한 것이 뭐야. 그것 도로 돌아갔어. 부동산도 완전히 실패했지. 그 다음에 NLL(서해 북방한계선) 취소? 김정일에게 돈 갖다 바친 것. 그것들 꽁무니 따라서 문재인이 또 튀어나왔어. 김대중이 흉내 냈지. 김대중은 돈 갖다 안 바쳤는가? 북에서 날아온 포탄은 거기서 나온 거야. 그 돈은 우리 세금 아닌가? 문재인이 그 꽁무니 따라왔으니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찍어. 이번 선거에서 원탁회의 어쩌구에서 안철수에게 장관 5개를 주고 누가 몇 개를 먹고. 그것을 지들이 결정해서 문재인에게 보고한다 해서, 까불지 말라 혼내려고 대장(아내)에게 물어봤어. 아내 말이 ‘조져!’(웃음) 그래서 내가 원고를 신문사에 보냈어. 원고는 교정됐어. 원래는 그것보다 더 지독했어. 마침 신문에 (글) 나간 날이 원탁회의 하는 날이었더군. 나는 몰랐어.”
그의 말이 이어졌다.
“(민주당은) 자기 쇄신 안 하면 다 망해. 국민 모두가 이석기 이정희 하는 거 봤어. 앞으론 그런 행동 다시 못해. 다시 말해 간첩행동 못한다 이거야. 그렇다고 우파가 옳으냐, 그것도 아니야. 서경석 목사가 전화해서 수만 명이 모인 우파 집회에 나오라 하더군. 내가 왜 가냐 했더니 ‘박근혜 지지했잖아요’ 이래. 그래서 ‘네 눈엔 그렇게 보이냐. 좌우를 넘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야지 무슨 우파 집회야. 지금 우파, 좌파, 중간파가 어디에 있나. 이번 선거를 봐. 좌파 우파로 투표한 게 아니야. (국민들이) 속에 들어 있는 생각으로 찍은 거야.”
―안철수 씨는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올까요.
“안철수는 깡통이야. 아무것도 몰라. 그 사람 전공이 뭔가. 융합과학이야. 그런데 그 사람 정치가 융합과학에 맞는 것인가? 지금 융합과학은 유전자까지 확대되고 있어. 하지만 확대할 때는 조건이 있어. ‘절제’라는 동양적인 제약 사항을 끌어들여야 해. 정치에서 절제란 할 말 못할 말 구분하고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구분하는 거야. 그런 것도 없는 사람이 자기 전문영역과 정치의 관계도 모르고, 여야 관계도 몰라. 밑에서 박수 쳐 주니까 붕 뜬 거지. 그런 사람을 깡통 아니면 뭐라고 해.”
―안철수 씨도 시간이 지나면 단련될 수 있을까요.
“끝났다니까. 정치란 게 하고 싶다고 매일 할 수 있는 게 아냐. 배우하고 똑같아. 한번 찍히면 끝난 거야. 문재인 옆에서 왔다 갔다 한 사람들이 대안이 없으니까 ‘안철수, 안철수’ 한 거야. 게다가 개표 전날 미국으로 튀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문재인을 지지했으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봐야 할 것 아냐. 도대체 ‘선거’라는 행위를 뭘로 보는 거야. 선거는 국민의 결정이지 자기들 결정이 아니야. 미국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정치 또 한다고 했지? 미친 사람 아니야? 그런 사람을 데려다 뭐에다 써먹어.”
―왜 박 당선인을 지지했죠.
“남자의 시대가 가고 여자의 시대가 왔다는 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해온 말이야. 근데 박근혜 혼자로는 불가능할 것 같았어. 그래서 이원집정제를 생각했지. 박근혜가 가능하려면 남자 중에 보조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본 거야. 안철수 쪽에서 도와준다면 혹시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지. 근데 자세히 보니까 안철수가 깡통이야… 아내도 박근혜가 좋다 하더라구. ‘아버지 어머니 모두 총탄에 죽었다. 그런 상황에서 18년 동안이나 고독 속에서 무엇을 생각했겠느냐, 어떤 내적(內的) 상태가 왔는지 나는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 거야. 그 말을 듣고 내가 놀라서 대꾸를 못했어. 거기까진 생각 못했거든. 박근혜가 내공이 쌓였을 것이라고 결론 냈지. 내공이 뭐냐, 독한 마음이야. 뭔가를 하겠다는 독한 마음. 박근혜가 (지난해 12월 13일) 여기 토지문화관에 왔을 때 ‘당신 내공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어. 그러면서 아버지 이야길 꺼냈지.”
김 시인은 옛일이 주마등처럼 흐르는 듯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미쳤었어. 참선을 지독하게 하면 치유 효과가 있다더라고. 그래서 시작했어. 잘 때도 가부좌를 틀 정도로 독하게 했지. 얼굴은 해골이 됐어. 참선 100일을 끝내고 101일째 되는 날이었어. 낮 12시에 교도소 방송에서 박정희가 죽었다고 나오는 거야. 그때 떠오르는 게 있었어. 공(球)이 세 개가 떠올랐어. 그게 참선이야. 공마다 이름이 있었어. 첫째 공은 인생무상, 둘째 공은 안녕히 가십시오, 셋째 공은 나도 곧 뒤따라갑니다. 껄껄 웃음이 나오더라구. 참선이 코미디야 코미디. 이튿날 12시에는 또 추모방송이 나와. 방송에 나온 김수환 추기경의 첫마디가 인생무상! 아따, 나 그렇게 소름 끼치기는 처음이네. 무서워서가 아니야. 내가 인생무상을 생각했는데 가톨릭의 거인이 인생무상을 이야기하니 소름이 끼친 거야.”
“정치가 뭐냐고? 모든걸 제자리에 앉히는거지”
4시간여 인터뷰를 하는 동안 김지하 시인은 피로한 기색이 없었다. 우주론 동학이론에서부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여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인생무상이라… 그건 어떤 느낌이었나요. (박정희 대통령이) 잘 죽었다는 통쾌함?
“그런 게 아니야. 차원이 달라. 나는 사람을 극단적으로 미워한 적이 없어. 참선을 하면서 박정희를 생각해 보니 ‘자기도 나라 먹여 살리려 애쓰다 갔지 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전처럼 욕이 안 나와. 이 이야기를 박근혜 앞에서 했어. 그런데 얼굴이 하나도 안 변해. 눈물은커녕 웃음도 없어. 조금은 감동할 줄 알았는데 꼼짝도 안 해. ‘김지하니까 경계해야겠다’는 것도 아닌 거 같았어. 그냥 독한 거야. 그래서 내가 속으로 ‘18년 동안 자기 혼자 가슴 안에 칼을 세우고 혼자서 지켰구나.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내공이다’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박근혜에게 이렇게 말했어. ‘당신이 뭘 해낼 사람이다’.”
―(박 당선인이) 앞으로 잘할까요.
“잘할 거야. 잘 안하면 설 자리가 없어. 가난한 사람 먹여 살려야 해. 지금 국운이 서 있어. 3000년 동안 남성이 여자를 억압해 왔어. 남성주의, 가부장제 역사에서 여성 지도자가 나올 때는 대세가 움직인다는 거야. 지금이 바로 개벽기야. 음(陰) 개벽이야. 양(陽) 지배에서 음 지배로 넘어가는 때야. 이번에 5060세대가 움직였어. 5060세대는 민주화운동과 산업화의 주체야. 그들이 달라졌다는 것은 국운이 바뀐 거야. 또 젊은 세대 34%가 박근혜를 지지했어. 이것이 국운을 움직인 힘이 아니면 뭔가.”
―만약 당선인이 잘못하면?
“알게 뭐야. 내게 책임 있어? 나는 책임 질 생각 없어. 내 할 일 하면 돼. 글 쓰면 돼.”
다시 화제를 과거로 돌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많이 미웠나요.
“지독했지. 가랑이를 찢어서 개한테 줄까. 미워할 수밖에 없지. 내가 그렇게 얻어터졌는데. (기자를 보며) 불로 지지는 것만 고문이라고 알지? 그렇지 않아. 천장이 내려오고 벽이 다가들어와. 가끔 밑바닥도 올라와. 24시간 감시받으며 독방에 오래 있으면 누구라도 정신착란에 빠져. 온몸을 뒤틀고 몸부림치면서 소리를 지를 때마다 정보국에서 연락이 와. 항복하라고. 차(車) 사 준다 어쩌고 하면서 ‘각하에게 편지 한 통 쓰세요. 나라를 위해 같이 좀 일 좀 합시다. 뭐가 어렵습니까?’ 나는 면회실에 걸린 태극기를 가리키며 ‘태극기가 왜 저렇게 생긴 줄 아세요?’라며 딴청을 부렸지. 내가 (그들에게) 손들 수 있어? 손들 수 없지.”
―인생무상을 깨닫고 감옥에서 나왔는데 왜 그 뒤로도 마음고생을 했나요.
“(내가) 미쳤었다니까. (갑자기 호통을 치며) 한번 말하면 왜 못 알아들어. 정신병이었다고 정신병! 나는 미쳤었어. 10년 동안 정신병원을 열두 번이나 들어갔어. 지금은 약을 안 먹지만 항우울제 안정제 수면제로 폐인이 됐다고. 그것 때문에 온 가족이 우울했어. 아내는 정보부와 빨갱이들 사이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세 번이나 살해될 뻔했어. 고생을 강조하고 싶진 않아. 하지만 언젠가 책을 쓸 테니 기다려. 신문에 쓸 내용은 아니야. 왜? 더러우니까. 돈이 나오고, 나한테 속임수를 쓰고, 간첩이 나오는데. 아직 (책 쓰기엔) 일러.”
옆에 있던 김 관장이 조용히 말을 받았다.
“처음에 붙잡혀 간 후 1년 동안 면회도 안 됐다. 김지하 죽었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는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오는데. 그런데 소문이 들리기로 백낙청, 이영희(*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1929∼2010)를 말함.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등의 책으로 386세대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인간들이 모여 김지하 욕을 한다는 거야. 내가 이영희 집에 서슬이 퍼래서 쳐들어갔지. 이영희가 너무 놀라 담배를 거꾸로 물었을 정도였어. 김지하가 형무소에 들어간 초부터 백낙청과 이영희는 김지하를 씹었어. 자기들 마음에 안 들었던 거지.”
다시 김 시인의 말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 시골에서 돈이 안 올라오면 강의실에서 잤거든. 그래서 우리 패거리 별명이 거지야(웃음). 근데 이영희가 나한테 술 취해서 ‘김지하는 거지’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당신이야말로 거지다’ 했지. ‘매일 프롤레타리아 만세를 부르고, 없는 사람 만세 부르면서 내가 밥 얻어먹으려고 손 벌리는 게 뭐가 나빠. 당신이야말로 더러운 거지야. 사상(思想)거지, 당신 글 다 읽어봤는데 당신 창작물이 어디에 있어. 아사히신문, 뉴욕타임스, 인민일보 인용한 것 외에 더 있나?’ 그랬더니 후배들이 낄낄 웃고.”
시인은 마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듯 아이처럼 깔깔댔다.
―얼마 전 신문 칼럼에서는 백낙청 교수를 비판하셨어요.
“내가 옛날부터 다 말했던 거야. 다만 (공개적으로) 참은 거지. 옛날에 백낙청한테도 이야기했어. 지금 우리나라 민중 형태는 밑바닥이다. 이쪽(민중)부터 들어올려야 한다. 중산층이 형성되기 시작할 때 당신이 배운 미국 문학을 하면 좋겠다. 문학은 고통의 산물이야.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하버드 갔다 온 걸로 사람들 겁주고, 가르치려 들면 안 되지. 심지어 (내가) 감옥에서 막 나온 뒤에 실천문학에서 나하고 백낙청 대담을 시켰어. 며칠 후 (당시 주간이었던) 이해찬(전 국무총리)이 전화를 했어. 백낙청이가 자기가 말한 부분을 수정한다고 원고를 가져갔다는 거야. 그러면서 나한테도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하라고. 내가 그랬지. 아니 대담 원고를 수정하는 놈도 다 있냐.
또 있어. 내가 장모(*소설가 박경리)를 만나기도 전이야. 백낙청이 장모 문학평을 썼어. ‘시장과 전장’이란 책이었어. 근데 이걸 완전히 멜로드라마로 만들어 놓은 거야. ‘시장과 전장’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야. 그걸 백낙청이 멜로드라마로 만든 거야. 이런 자가 평론가라고 나서고 대담원고를 수정해? 내가 그 동네 풍경을 잘 알아. 한국 문화를 알려면 한국 문학전통에 집착을 해야지. 배우지도 않고 미국 소설 몇 개를 읽고 들어와서 휘저으려고 하니. 그런 문학 지식이 지식이야? 이번에 쓴 칼럼이 그 이야기야.”
문득 그에게 인생이란 뭘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김 관장님은 아까 제게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선생님은요?
“인생은 한 번 왔다 가는 거야. 내가 오래 살고 싶을 것 같아? 돈 많이 벌어서? 지금 이렇게 정신 차리고 있는 것만도 사실 무리야. (옆눈으로 김 관장을 보며) 나는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야. 소심한 사람이 대게 마누라 한마디에 움찔해. ‘헤어집시다’ 하면 바로 ‘안 돼’라고 말해. 밥은 얻어먹고 살아야 할 것 아냐. 하하하.”
―선생의 병을 고친 한의학자 장병두 할아버지가 선생을 보고 ‘서 푼짜리 분노를 집어치워라’고 했다던데 그 분노는 뭐였나요? 박정희였나요?
“모두 포함한 건데, 못났으니까 분노를 느낀 거야… 집안이 불행했지. 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였어. 기관총 들고 게릴라전까지 간 사람이야. 우익들이 나를 가마니에 넣고 목포 앞바다에 집어넣는다고 마을 사람들이 말하니까 기관총 내던지고 하산했어. 자수한 거지. 굴욕이 심했을 거야. 자살 기도를 세 번이나 했어. 불행했어. 전쟁은 끝났지만 고향(목포)으로 갈 수 있었겠나. 흘러 흘러 원주로 왔지. 판자로 지은 극장에 영사주임으로 있으면서 당시 열세 살이었던 나를 불러 원주에서 함께 살게 됐어.”
그의 입에서 듣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가슴 아픈 한국 현대사 그대로였다.
“굶지는 않았지만 가난했어. 돈이 생기면 아버지는 술을 드셨지. 그래도 나를 서울대학까지 보낸 거야. 나는 외아들이었고. 이런 내가 어떻게 공산주의가 되겠나. 공산주의에 개인은 없어. 내가 감옥 들어간 뒤 나더러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라고 한 것은 다른 놈들이 만들어 붙인 거야. 4·19 이후부터 이상하게 자칭 마르크시스트들이 나를 대장으로 만들려는 분위기가 있는 거야. 나는 아닌데 말이야. 그 뒤로 몇십 년 동안 사람들이 심심하면 전화를 해 ‘아무개가 형님 찍어 죽인다 했어요’라는 거야. 내가 뭐라 대꾸했는지 알아? ‘네가 더 나쁜 놈이다, 동지를 고자질하고, 뭐하는 새끼냐. 전화 또 하면 죽일 거야.’ 한국의 자칭 혁명가들이 잘하는 고자질, 그게 나를 위해서가 아니야. 내 이름이 왜 지하인줄 알아?”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기자는 “지초 지(芝)에 물 하(河) 아닙니까”라고 답했다. 그가 허허 웃었다.
“땅속에나 갈 놈이라는 뜻이야. 나중에 유식한 놈들이 한자를 붙인 거지. 한글로 그냥 ‘지하’야. 서울대 문리과대학 다닐 때 시화전을 했어. 그 당시 우리 세계에서는 시화전 한번 하면 이름이 나게 돼. 그러니까 이름이 중요하잖아. 내 본명이 김영일이야. 그런데 같은 이름이 5명이나 됐어. 그러던 참에 동아일보에 있던 선배 한 명이 술 사준다고 오라는 거야. 당시에 낮술 사주는 선배는 큰 선배였지. 얼큰하게 취해 학교로 가려는데 돈이 한 푼도 없는 거야. 그래서 걸었어. 길가를 지나는데 ‘지하 이발소’ ‘지하 다방’ 옳다, 지하다. 그때부터 내 이름을 지하라고 한 거야… 더러운 이름이야.”
그의 말끝이 너무 쓸쓸해 기자 마음까지 쓸쓸해졌다.
문득 화제를 바꾸고 싶었다.
―뱀띠시죠?
“맞아. 근데 하나도 안 즐거워. 올해 (서민들은) 고통의 해야. 내년 봄까지도 안 좋을 것 같아. 그 대신 이 고비만 넘기면 참 좋은 시절이 올 것 같아. 물론 내 생각이니 믿지는 말고(웃음). 요즘 나는 무조건 아내 (생각) 따라가. 옛날에 나는 빠르고 단호했는데 지금은 안 맞아. 그래서 기다려야지, 신중해져야지 해. 박근혜에게 국민들 희망이 집중되는 것을 보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안도였어. 이제 좀 살겠구나, 이제 나는 글만 쓰자. 나머지는 후배들에게 맡기고… 이제 짐을 놓았어.”
―정치가 뭡니까?
“정치? 모든 것을 제자리에 앉히는 거지.”
역시 그다운 대답이었다. 저녁을 먹으러 인근 식당으로 옮겨서까지 진행된 4시간여 인터뷰 동안 그는 걸림과 막힘이 없었다. 기자는 그를 만나기 전 그의 모진 삶을 연민했다. 하지만 때로는 두 눈을 부릅뜨며 욕설과 호통을 치면서 화를 내고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표정으로 깔깔대는 모습을 보며 기자는 ‘태어나서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사람의 모습이 저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김지하 시인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 학생시위로 4개월 투옥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등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1970년 사상계에 발표한 풍자시 ‘오적’ 으로 반공법 위반, 1개월 투옥
△1973년 ‘토지’의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
△1974년 민청학련 주모자로 기소돼 사형 선고(긴급조치 4호 위반)
△1975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 동아일보에 연재한 옥중수기 ‘고행 1974’와 관련해 재구속(반공법 위반), 노벨 문학상·평화상 후보로 추천
△1978년 무기징역에서 20년으로 감형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
△1941년 목포 출생
△1959년 중동고등학교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학사)
△1985년 미국 명예인권실천 박사
△1993년 서강대 명예문학박사
△명지대, 영남대, 동국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역임
△현재 원주 상지대 출강
인터뷰=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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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적(五賊) / 김지하
김지하는 1941년 전남 목포시 대안동에서 전기 기술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영일"이고 글을 쓰면서 "지하"라는 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목포에서 중학교 2학년때 원주중학으로 전학하면서, 성당에 나가게 되어, 원주교구의 지학순 신부를 만나게 되며, 둘은 70년대 반독재 투쟁의 동료로써의 인연을 맺습니다.
서울 중동고에 진학, 백일장에서 입상, 시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서울대 미대 미학과에 입학한 김지하는 4.19 시민혁명 직후인 1960년 5월 판문점 남북학생회담 대표 3인의 한명으로 뽑히기도 했죠..
그러나, 5.16 쿠테타 이후 학생 통일 촉진운동은 꺽이고, 김지하는 주동자로 쫒기게 됩니다..
서울대학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학생연합회의 소속으로 선언문을 발표한 김지하는 체포, 구금되었다가 넉달만에 풀려납니다. 이런 수난 끝에 1966년 8월 입학 7년반 만에 대학졸업장을 받게 되죠..그러나 다시 지명수배자가 되자 탄광으로 들어가 피신, 일을 하다가 폐결핵을 얻어 서대문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러한 끝없는 저항과 도피의 시간속에서도 김지하는 피를 토하듯 시를 썼고, 이 시들을 읽은 문학평론가 "김현"은 월간지<시인>의 편집을 하던 "조태일"에게 넘겨, 김지하의 시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됩니다..
월간지 <사상계>의 편집장 "김승균"은 1970년 5월호를 기획하며, 세간에 나돌던 오적촌을 주제로 김지하에게 시를 청탁합니다. 오적촌은 정치를 잘해보겠다고 나선 박정희 이하 군인들이 권력을 잡은뒤에 초호화 저택을 짓고 부귀영화를 누리며 사는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었죠..
사상계 편집장 김승균은 대학시절부터 학생운동을 함께한 김지하의 필력을 믿었고, 김지하는 불과 사흘만에 3백행이 넘는 장시를 담시의 형식으로 완성합니다.. 그것이 그 유명한 <오적> 이죠..
담시 <오적>이 발표되고, 1970년 6월 3일 김지하는 북괴의 선전활동에 동조했다는 반공법 위반으로 긴급 체포 됩니다.. 박정희 정권과의 반체제, 민주화운동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된거죠...
김지하의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5 종류의 도적이라고 풍자한 시
김지하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위에 거론한 5 종류의 도적이 저지르는 부정과 부패 탐욕 등을 통렬하게 비판하였고, 특히 다섯 도적을 표현을 한자를 표현하였는데 한자 마다 개견(犬)자가 들어가 풍자의 극치를 이룬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오적(五賊)
1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옛날 상달 초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 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재벌)1), 국회의원(국獪의猿)2),
고급공무원(고급功無猿)3), 장성(長猩)4),
장차관(暲차관)5)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배꼽 같은 천하흉포 오적(五賊)의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안에는 큰 황소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놈이 모여
십년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 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2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해 입고 돈으로 모자해 쓰고 돈으로 구두해 신고
돈으로 장갑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이,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봐라 저 재벌놈
재조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치고 계자치고 고추장치고 미원까지 톡톡쳐서
실고추와 마늘 곁들여
날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까기 여념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쥔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뜀에 정보얻고 수의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샀다가
길뚫리면 한 몫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원에 쓱싹,
노동자임금은 언제나 외상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할애비요
구워삶는 재조는 뙤놈술수 빰치겄다.
또 한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투성이 몽둥이에 혁명공양 휘휘감고
혁명공약 모자쓰고 혁명공약 배지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들고 대갈일성,
쪽 째진 배암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축재는 축재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선거는 선거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건설이닷, 모든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
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 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遇昧)국민 그리알고 저리
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3
셋째놈이 나온다 고급공무원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말구
어허
저놈 뒤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해끗해끗, 피두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간같이 높은 책상 마다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도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위엔 서류뭉치, 책상밑엔 지폐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마담 위 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넷째놈이
나온다 장성(長猩)놈이 나온다
키크기 팔대장성, 제밑에 졸개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이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공단 울긋불긋, 천근만근 훈장으로
온 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장성(長猩)놈 재조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한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먹고
엄동설한 막사없어 얼어죽는 쫄병들을 일만하면
땀이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지을
재목갖다 제집 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쉬엇 열중열중열중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마누라 화냥끼 노리개로 묶어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서수
공방전(雲雨魚水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귀몰(神出鬼沒)
마지막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끼어
삐적삐적 술지게미 가득고여 삐져나와
추접무화(無化) 눈꼽낀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상이닷,
아사(餓死)한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먹고 입찰에서 왕창먹고 행여나 냄새날라 질근질근 껌씹으며
켄트를 피워물고 외래품 철저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듣고 뒤쫓아온 말잘하는 반벙어리 신문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자네 핸디 몇이더라?
4
오적(五賊)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놈들한테 붙잡히면 뼉다귀도 못추리것다
똥줄빠지게 내빼 버렸으니 요즘엔 제사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겄다.
이라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이 몰씬몰씬 무르익어가는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망신시키는
오적(五賊)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하늘에 날벼락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내려 쏟아져 퍼붓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포도대장 거동봐라
울뚝불뚝 돼지코에 술찌꺼기 허어옇게 묻은 메기
주둥이, 침은 질질질,
장비사돈네팔촌 같은 텁석부리 수염, 사람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방울 눈깔, 마빡에 주먹혹이 뛸 때마다
털렁털렁
열십자 팔벌이고 멧돌같이 좌충우돌, 사자같이 으르르르릉
이놈 내리훑고 저놈 굴비엮어
종삼 명동 양동 무교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모두 쓸어모아다 꿀리고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 뜯고 물어 뜯고 업어메치고 뒤집어던지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꺾고 깎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리고 직신작신 조지고 지지고
노들강변 버들같이 휘휘낭창 꾸부러뜨리고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쿠리, 긴 칼, 짧은 칼, 큰칼, 작은칼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 호각 개다리 소다리 장총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연탄 구토탄 똥탄 오줌탄 뜸물탄 석탄 백탄 모조리 갖다 늘어놓고 어흥
-
호랑이 방귓소리 같은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쪼그린 되민증들이 발발
전라도 갯땅쇠 꾀수놈이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이 발발발 떨어댄다.
네놈이 오적(五賊)이지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다바이 다 합쳐서
오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녀, 포주, 깡패, 쪽쟁이
다합쳐서
풍속사범 오적(五賊)이 바로 그것 아니더냐
아이구 난 펨프이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껌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도롭프스팔이, 쪼코렛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오적(五賊)이 그아니냐
아이구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더욱 좋다. 거지, 문둥이, 시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합쳐서
우범오적(五賊)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배고파서 돈벌라고 서울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네다.
이리바짝 저리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없이 쏙쏙 기어나오는건 아니랑께롱 한마디뿐이겄다
포도대장 할 수 없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봐라
오적(五賊)은 무엇이며 어디있나 말 만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말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옳다됐다 내새끼야 그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 하도좋아 제무릎을 탁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 버렸던지 무릎뼈가 파싹 깨져
버렸겄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놈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겄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라
안비키면 오적(五賊)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오적(五賊)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훌렁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레같은 저 함성 범같은 늠름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일성,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갓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손상, 백성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렸다.
5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들러보니 눈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 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푸른 용트림이 기둥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仙女) 가득
몇십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원짜리 정원수(庭園樹)에 백만원짜리 외국(外國)개
천만원짜리 수석비석(瘦石肥石), 천만원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門)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女大生) 식모두고 경제학박사 회계두고
임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제학박사 집사두고
가정교사는 철학박사 비서는 정치학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박사
박사박사박사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속에 에어턴 넣고
새들 행여 죽을세라 새장속에 히터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속에
냉장고넣고
대리석 양옥(洋屋)위에 조선기와 살쩍얹어 기둥은 코린트식(式)
대들보는 이오니아식(式)
선자추녀 쇠로치고 굽도리
삿슈박고 내외분합 그라스룸 석조(石造)벽에
갈포발라 앞뒷퇴 널찍터서 복판에 메인홀 두고 알매달아 부연얹고
기와위에 이층올려 이층위에
옥상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風), 본따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風),
돼지우리 왜풍(倭風)당당
집밑에다 연못파고 연못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 듯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강철함롱, 봉그린 용장, 용그린 봉장, 삼천삼백삼십삼층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전자시계, 전자밥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 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거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액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鳥蝴蝶人物)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점 걸어두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화기, 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애태리화기,
호피담뇨 씨운테레비, 화류문갑 속의
쏘니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카메라,
산호책장 곁의 알씨에이 영사기, 호박필통에 꽂힌 파카만년필, 촛불켠 샨들리에,
피마주기름
스탠드라이트, 간접직접 직사곡사 천장바닥 벽조명이 휘황찬란 호화율율.
여편네들 치장보니 청옥머리핀, 백옥구두장식, 황금부로취, 백금이빨,
밀화귓구멍가게, 호박밑구멍마게, 산호똥구멍마게,루비배꼽마게, 금파단추,
진주귀걸이, 야광주코걸이, 자수정목걸이, 싸파이어팔지
에어랄드팔지,
다이야몬드허리띠, 터키석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암야에 횃불처럼
도도무쌍(無雙)이라!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콧구멍볶음, 염소수염튀김,
노루뿔 삶음, 닭네발산적, 꿩지느라미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바톱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안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원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식혜,
파인애플화채, 무화과 꽃닢설탕 버무림, 롱가리트유과, 메사돈약과, 사카린잡과,
개구리알구란탕, 청포우무,
한천묵, 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짐빔,
선약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째주, 보드카, 람주(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노짜로다
저게 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良心)이란 두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6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잔두잔 헐레벌떡 석잔넉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쳐먹었는지
이빨이 확 닳아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내
부딪쳐가면서
씹어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껏 그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이 말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채어 오라묶어 세운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가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客愁)가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찾고 쪼각달 희게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흐르는데
어쩔꺼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쌌는데 어쩔꺼나
콩알같은 꾀수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우리꾀수 어쩔꺼나
전라도서 굶고살다 서울와 돈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사정 누가있어 바로잡나
잘가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가거라.
7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집 솟을대문,
바로 그곁에 있는 개집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하매,
포도대장 이말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같은 거지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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