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불역군자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말이다.
신라 경순왕릉(敬順王陵)
임진강 고랑포구
내 고향은 장단 고랑포
<춘허 성원경 지음. 청범 진태하 씀>
내 고향은 임진강포구 고랑포외다.
달 밝은 밤일랑 징개미 춤추었고
비에 젖은 날이면 자라 덩실 노닐었소.
내 고향은 경순왕 잠드신 고랑포라오.
봄이면 장구채랑 찔레 꺽어 배불리고
삘기 뽑고 싱아뜯어 봄을 먹고 자랐소.
파평산 앞에 앉고 감악산 빗겨베어
소문난 고호팔경 예나 다름없건만
어이타 인가 없는 휴전선이 웬말이오.
고구려 호로고루城 망대(望臺)
숭의전 [崇義殿]
사적 제223호로 조선시대에 고려의 태조·현종·문종·원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사당.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데 새 왕조를 연 다음 전 왕조 왕의 위패와 왕릉을 보존하는 것이 전통적인 예의였기 때문에 세워진 것이다.
1397년(태조 6) 귀의군(歸義君) 왕우(王瑀)에게 이 지역의 봉토를 주고 머물면서 고려 태조의 묘를 세우도록 했다. 1399년(정종 1) 숭의전 건물을 짓고 고려 태조와 8왕(혜종, 현종, 원종, 충렬왕, 성종, 경종, 문종, 공민왕)의 제사를 봄가을로 2번 받들도록 했다. 그러나 1425년(세종 7) 예법에 제후는 5묘를 세워야 하는데 고려의 8위는 부당하다 하여 태조 · 현종 · 문종 · 원종 4위만을 받들도록 했다.
그리고 고려조의 충신 16명(복지겸, 홍유, 신숭겸, 유금필, 배현경, 서희, 강감찬, 윤관, 김부식, 김취려, 조충, 김방경, 안우, 이방실, 김득배, 정몽주)의 위패도 봉안 배향하고 있다.
6·25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던 것을 1973년 왕씨 후손이 정전(正殿)을 복구했고, 1975~76년에 이안청 · 배신청 · 삼문을 원래의 위치에 복원했다.
뒤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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