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사주를 봤다는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세종)임금이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을 불러서 명하기를 “유순도(庾順道)와 더불어 세자(世子)의 배필을 점쳐서 알려라”하였다. 계량이 약간 사주(四柱)의 운명을 볼 줄 알았고, 순도는 비록 유학에 종사하는 자이나 순전히 음양 술수(陰陽術數)와 의술(醫術)로 진출한 자였다.’(조선왕조실록 세종 7년·1425년)
이런 기록도 나온다. ‘세종이 어떤 일을 점쳐 보려고 점술가 지화(池和)에게 사람을 보냈더니, 집에 없었다. 동네를 찾아보니 (지화가) 술이 취하여 횡설수설하고 교만한 말투로 “오늘은 술이 취하여 점칠 수가 없다” 하는지라 그대로 아뢰니 임금이 크게 노하여 의금부에 잡아다가 문초하고 귀양 보냈다.’(세종 26년·1444년)
그렇다고 세종이 점술을 맹신한 것은 아니다. 실록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나는 본래 복자(卜者·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또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이 있는 것은, 연전에 복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7, 8월에 액(厄)이 있다” 하더니, 7월에 이르러 병이 발생하였다. 복자가 또 이르기를 “금년에도 역시 액이 있다” 하므로, 연희궁(衍禧宮)으로 이어(移御·임금이 거처를 옮김)하여 이를 피하려고 하였더니…7월에 또 경미한 질병을 얻었으니, 복자의 말이 허망하지 않은 것 같다.’(세종 8년·1426년)
복술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실생활에서 맞는지 안 맞는지 검증해 보려는 세종의 실험정신의 일단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열린 마음이 있었으므로 과학이 융성할 수 있었으리라. 노비 출신인 장영실에게 종3품의 높은 벼슬을 주어 중용한 것도 세종이기에 가능했다.
음양학에 대한 세종의 관심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태종에게서 영향 받은 바 크다. 태조와 무학대사가 남다른 인연이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성계가 변방관리로 있을 때 인근 함경도 설봉산(雪峰山) 토굴에서 수도하고 있던 무학대사를 찾아가 “헌 집에 들어갔는데 집이 무너져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나왔다. 또 거울이 깨지고 꽃이 떨어졌다. 꿈 해몽을 해 달라”고 했다.
무학대사가 답하기를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나온 것은 임금 왕(王)자요, 거울이 깨어졌으니 어찌 세상에 소리가 없겠는가, 또 꽃이 떨어지면 반드시 열매가 맺는 법이니 머지않아 군왕(君王)이 될 꿈”이라고 했다. 무학대사는 풍수에도 조예가 깊어 태조가 한양을 조선의 수도로 정하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
태종 이방원도 역학에 심취했다. 이성계의 5남으로 태어난 그는 세자로 책봉되지 못했으나 훗날 왕자의 난을 일으켜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에 오른 인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그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태종은 고려(高麗) 공민왕(恭愍王) 16년 함흥에서 탄생했다. 어머니가 한씨였는데 점치는 사람(복자)에게 아들의 사주를 물었더니 “귀하기가 말할 수 없으니, 조심하고 복자에게 경솔히 물어보지 마소서”라고 했다.’
태종은 어릴 적부터 이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서 성장했으며 왕이 된 후에도 신하들과의 담화자리에서 자신이 출생할 때 점을 봤음을 여러 차례 털어놓았다고 한다. 또 왕이 된 이후에도 그는 사주와 음양오행을 담당관리에게 연구하게 하고 중국의 책들을 구해 오기도 했으며 그리고 송도로 서울을 옮길 때나 한양으로 환도할 때 등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때 역술가에게 길흉화복을 점치게 했다.
조선은 유학을 숭상하였다. 그러다 보니 유학자들이 역학을 연구했다. 세종은 주역공부에도 열심이었다. 집현전에 나가 학자들과 주역의 이치에 대해 토론하기를 즐겼으며 실제 생활에 적용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복자들을 음양학이라 불리는 분야의 관리로 등용해 배속시켜 두고 실무를 보게 했다. 점술가들을 전문직으로 인정한 것이다. 세종은 음양학이 농사와 건강, 국가의 길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봤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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