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시대의 유물
1.가로날도끼
주먹도끼와 형태적으로 유사하지만 넓적하고 날카로운 자르는 날을 가지고 있어 마치 오늘날의 도끼 모양을 하고 있다. 날은 몸돌에서 떼어질 때 생긴 자연날을 그대로 이용하거나, 길이 축과 직교하는 방향에서 한 두 번의 타격으로 만들며, 날 잔손질은 거의 하지 않는 것이 특징적이다. 날을 제외한 몸통과 아랫부분은 양면떼기로 잔손질하여 마무리한다. 주먹도끼와 마찬가지로 구석기시대 전기의 대표적이 석기이며, 경기도 연천 전곡리유적과 파주 금파리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도끼로 번역된 명칭에도 불구하고 실제 용도는 자르는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
2.주먹도끼
구석기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석기로 아프리카, 유럽, 서남아시아 및 인도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일대에서 널리 발견된다. 양면이 대칭을 이룬 타원형이거나 삼각형을 하고 있으며, 단면은 볼록렌즈처럼 두툼하다. 가장자리 전체에 날카로운 날이 마련되어 있고, ‘도끼’라는 명칭과는 달리 끝부분이 뾰족하며, 실제로는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한 ‘다기능연모’였다. 주된 용도는 대형동물의 도살 및 해체용으로 추정되고 있다. 임진강 한탄강 유역의 경기도 연천 전곡리, 원당리, 경기도 파주 금파리, 주월리 등과 같은 구석기시대 전기의 유적들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으며, 충북 단양 수양개와 같이 중기의 유적에서도 소량 발견된다.
3.좀돌날몸돌
흑요석 격지를 좀돌날몸돌로 가공한 예. 돌날면을 만들기 위해 양면가공한 후 돌날면에서 직각방향으로 타격하여 타격면을 완성하였다. 몸돌을 완성한 후 단 1차례의 좀돌날떼기만을 하였을 뿐 더 이상 이용하지는 않았다.
일본에서 출토되는 란꼬시기법의 몸돌과 유사한 형식이다. 좀돌날기법은 5cm이하의 작은 돌날을 떼어 내 가공된 뼈나 나무에 끼워 사용하였던 후기구석기의 후반부의 석기제작기법이다.
4.좀돌날몸돌
흑요석재 돌날을 좀돌날몸돌로 가공하였다. 돌날의 굽 반대쪽에 좀돌날을 떼기 위한 타격면을 마련하였다. 타격면은 돌날의 배면에서 연속적인 떼기를 베푼 후, 최종적으로 돌날면에서의 한차례 떼기로 완성한 것으로 일본의 북해도지역을 중심으로 출토되는 히로사토기법의 몸돌과 동일한 기술적, 형태적 특징을 갖고 있다. 좀돌날기법은 5cm이하의 작은 돌날을 떼어 내 가공된 뼈나 나무에 끼워 사용하였던 후기구석기의 후반부의 석기제작기법이다.
5.밀개
후기구석기시대 동안 크게 유행한 돌날 밀개의 한 전형. 흑요석제 돌날을 소재로 하였으며 한쪽 끝을 둥글고 가파르게 가공하여 작업날을 만들었다. 양쪽 긴 변의 잔손질은 날카로운 가장자리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등면에는 앞 서 떼어진 돌날의 흔적이 평행선의 형태로 남아 있다. 밀개의 작업날은 비슷한 유형의 석기인 긁개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디며, 주로 의류 제작을 위한 가죽 가공에 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밀개는 실제 통계적으로 추운 기후대의 유적에서 출토량이 훨씬 높아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해준다.
6.슴베찌르개
박편의 양쪽을 다듬어 끝부분을 뾰족하게 만들어 주먹도끼보다 작으며 자루를 달아서 창이나 찌르는 무기로 사용한다.
7.뚜르개
구멍을 뚫거나 옷감을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8.새기개
돌날의 주변부에 잔손질을 한 후 끝 부분을 크게 때려 내서 날카로운 조작기같은 날을 만든 석기로 나무에 홈을 넣는 작업에 사용한다.
9.찍개
자갈돌을 한쪽 방향에서만 타격을 가하여 격지가 떨어져 나간 면과 원래의 자갈 돌면이 날을 이루는 석기로. 나무를 자르거나 사냥할 때 사용한다.
구석기시대의 유적
1.전곡리 선사유적지
경기 연천군 전곡면 전곡리 178-1
한탄강변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한탄강·임진강 줄기를 따라 구석기시대 유적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전곡리 유적이 규모가 가장 크고 넓은 지역에 걸쳐 있다. 1978년 처음 발견되어 1979년부터 현재까지 여러 차례 발굴조사를 하였다. 그 결과 주먹도끼, 사냥돌, 주먹찌르개, 긁개, 홍날, 찌르개 등 다양한 종류의 석기를 발견하였다. 그 중 유럽과 아프리카 지방의 아슐리안 석기 형태를 갖춘 주먹도끼와 박편도끼가 동북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전곡리 선사 유적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밝혀 줄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한국과 동북아시아 지역의 구석기 문화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
충남 공주시 장기면 장암리 98외
공주에서 대전으로 가는 금강가에 있는 구석기시대의 유적이다. 구석기시대란 인류가 돌을 깨뜨려 도구로 사용하고 사냥이나 물고기잡이, 식물채집을 통해 생활한 문화단계를 말하는데, 인류가 태어나 1만년 전까지의 시기로 보고 있다. 찍개·긁개·주먹도끼·새기개 등의 석기류가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후기 구석기층의 집자리에서는 숯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으로 연대측정을 한 결과 약 2만 5천년에서 3만 년전의 집터임이 확인되어, 당시에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하였음을 알게 되었고 전후 시기에도 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꽃가루를 조사한 결과 이 일대에 소나무·전나무·목련·백합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에 사람이 살았음을 처음으로 알게해 준 중요한 유적이다.
3.파주 가월리 및 주월리 구석기유적
경기 파주시 적성면 가월리 산95-6외, 주월리 309외
파주 가월리와 주월리에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이다. 이 유적은 연천 전곡리 유적과 이어지는 한탄강-임진강 유역의 구석기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구석기시대란 처음 인류가 등장한 때부터 약 1만년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이후의 일이다. 발굴조사 결과 4∼5만년 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생각되며, 출토 유물에는 양면 가공석기(주먹도끼), 찍개, 긁개, 몸돌 따위와 크고 작은 석기재료들이 있다. 이 유물들은 무엇보다 당시 도구 제작과정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들이다.
이곳은 석기가 집중해서 발견되는 문화층이 있어 매우 중요하다. 전곡리 유적과 함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구석기시대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4.단양 수양개 선사유적
충북 단양군 적성면 애곡리 182-1
단양 적성면 수양개에 있는 후기구석기시대에서 초기철기시대에 걸친 유적이다. 남한강가 충적대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을 끼고 있는 주위의 환경이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기에 적당한 곳으로, 발견된 석기들은 다양하고 당시 만들었던 기술도 특징을 보이고 있다. 특히 후기구석기시대에서 볼 수 있는 돌날몸돌과 자루를 끼울 수 있도록 슴베가 달린 찌르개는 중국 화북지방, 시베리아 남부지방, 일본 열도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에서 나온 석기들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구석기시대 유적 주변에서 초기철기시대 집터가 발견되었는데, 집터의 생김새가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어 중원지역 철기시대 생활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수양개 유적은 우리나라 선사문화와 동아시아 선사문화의 교류를 밝히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5.순천 월평 구석기유적
전남 순천시 외서면 월암리(월평마을) 189-1외 일원
순천월평구석기유적은 조계산 남쪽 줄기의 끝자락 구릉지에 위치하여 서쪽과 북쪽은 송광천이, 남쪽은 외서천이 감싸고 흐르는 천변 퇴적층에 접하고 있다. 5만평에 달하는 넓은 면적과 안정적인 입지조건 하에서 유적이 발견되어 1998년의 1차 발굴과 2001년의 2차 발굴 결과 8개의 지질층과 4개의 구석기문화층이 노출되었으며 9,400여점의 후기구석기 유물이 수집되었다. 또한 순천월평구석기유적은 후기구석기시대와 철기시대를 포함한 선사와 역사시대의 문화층이 잘 남아있으며, 유적의 규모는 5만여평 이상으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후기구석기시대 유적으로는 큰 규모이다. 충북 단양수양개선사유적(사적제398호), 강원 홍천 하화계리 유적과 더불어 국내 최대의 후기구석기유적으로서 신석기문화와의 연속선상에서 우리나라의 선사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6.제천 점말동굴 유적
충북 제천시 송학면 포전리 산68-1
점말동굴 유적은 남한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시대의 동굴유적이며, 조선계 석회암지대에 발달된 구석기시대의 동굴유적으로 용두산 동남향 사면 중간쯤의 병풍바위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굴을 중심으로 근처에 6개의 가지굴이 발달되어 있다. 1973~1980년까지 8차에 걸쳐 연세대 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기·중기·후기 구석기문화의 뚜렷한 3개의 문화층이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과학적인 년대측정방법과 출토유물·층위퇴적 양상 등으로 볼 때 전기 구석기와 중기 구석기(66,000년)·후기 구석기(18,660년)로 밝혀져 구석기시대 전시기에 걸친 문화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유적이다. 동굴의 규모는 입구 너비 2~3m이고, 굴 안쪽이 막혀 있어 전체길이는 확인할 수 없으나 현재 확인된 길이는 12~13m이며, 동굴 입구가 동남향으로 뚫려 있어 선사인이 생활하기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동굴유적에서는 털코뿔이·동굴곰·짧은꼬리 원숭이 등의 동물화석 20종 굴과 석기·뼈연모·예술품 및 식물화석 등 풍부한 고고학적 유물이 발달되어 구석기시대의 자연환경·생활상·기술발달과정 등을 밝히는데 중요한 유적이 된다.
점말동굴은 자연현상으로 쌓인 토양·석회암 낙반석·구른 자갈돌·석회마루 등은 퇴적층위의 구분과 기후환경을 밝히는데 도움이 되며, 사람이 밖에서 들여 온 사냥감·뼈연모·석기 등 고고학 자료는 유적의 시대편년과 선사시대 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7.장흥 신북 구석기유적
전남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신북마을 일원(9-19번지 외)
장흥 신북 구석기유적은 장흥군 장동면 북교리 신북마을이 자리한 검은둥이 언덕(해발 190~165m)의 남쪽에 있다. 신북유적의 규모는 유물이 확인된 범위를 기준하면 약 12만여㎡으로 추산되고, 유물이 들어있는 지층의 분포 범위로 보면 신북마을을 포함한 언덕 전체가 해당되어 약 30여만㎡으로 추정된다. 2002년 8월에 국도2호선 장흥-장동간 도로 확포장 구간도로 건설 구간의 교량 터파기 공사 때 문화층이 드러나면서 발견되어 2003년-2004년 사이 7개월간의 발굴조사(조사기관 : 조선대학교 박물관, 조사 면적18,000여㎡) 결과 3만여 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그래서 2004년 5월 11일 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장흥 신북구석기유적 보존회”가 결성되었고, 2004년 6월 22~24일“동북아시아의 후기구석기문화와 장흥 신북유적”이란 제목으로 국내외 저명한 구석기학자들이 참여한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된 바 있다.
장흥 신북유적은 한국에서 보고된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 가운데 가장 크고 유물의 밀집도도 높다. 그리고 신북유적을 중심으로 반경 12㎞ 범위에 20여개의 구석기유적들이 유적군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신북유적은 거점 유적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화덕자리가 6개 이상 드러났고, 대표되는 뗀석기로는 좀돌날(세형돌날)몸돌, 새기개, 밀개, 슴베찌르개, 창끝찌르개 등이 있으며, 유적의 중심 연대는 22,000년 전(방사성탄소연대)으로 재어져 후기구석기 후반의 석기발달상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특히 국부 마제석부를 포함한 새로운 종류의 간석기들이 소량이지만 대부분 문화층의 중간과 아래에서 드러나서, 이제까지 ‘타제기법은 구석기시대’, 그리고 ‘마제기법은 신석기시대’라는 고정 관념을 재검토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국부마제석부는 일본열도에서 약 35,000년 전에 나온 예가 많아 구석기시대에 마제석기의 출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편 이 유적 흑요석의 성분분석(PIXE) 결과 그 원산지가 백두산과 일본(큐슈 등)으로 추정되었다. 이 점은 유베쯔기법의 좀돌날몸돌, 슴베찌르개와 함께 신북유적의 후기구석기인들이 일본열도와 교류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장흥 신북유적은 후기구석기시대의 생활상과 문화상을 잘 보여줄 뿐 아니라, 우리나라 후기구석기유적 중 가장 크고 유물의 밀집도도 높은 유적이다. 그리고 일본, 중국, 시베리아 등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후기구석기문화와의 연관성을 풀 수 있는 귀중한 유적으로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아주 크다고 하겠다. <출처:문화재청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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