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기언(眉叟記言) 中 무술주행기(戊戌舟行記)는 미수 허목이 효종9년(1658) 6월에, 한강에서 하류로 내려가 다시 배를 타고 임진강을 거슬러 연천군 징파리 강가의 징파나루(징파도)까지 3박4일 동안 주위를 둘러 본 기행문으로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된다.
『마전(麻田) 앞의 언덕 강벽(江壁) 위에 옛 진루가 있었는데, 지금 그 위는 총사(叢祠 잡신을 모시는 사당)가 되었고, 그 앞의 나루를 당포(堂浦)라 하는데, 큰물이 들면 나루길이 트였다. 물은 깊고 여울은 얕은데다가 바람이 없어, 돛을 내리고 물살을 거슬러 배를 끌어 오강(烏江)을 지나자 수세(水勢)가 꺾이고, 바람이 저절로 순해졌다. 그래서 다시 돛을 들어 올리고 호구협(壺口峽)을 나서니, 여울의 돌이 몹시 험한데 이를 마차산(摩嵯山)이라 한다. 북쪽 기슭은 산이 깊고 물살이 급하며, 영평(永平)의 물이 여기서 합류하는데, 그것을 상포(上浦)라 하고, 그 동쪽은 도가미(陶哥湄)인데, 흰 자갈과 평평한 모래사장이 많았다.』
미수의 배는 당포성에서 호구협으로 오른다.
멀리 하류의 당포성이 보인다. 사진 오른쪽이 썩은소(나루)이며 절벽위에 미강서원터가 있다. 이곳에서 상류쪽 도감포까지를 호구협(壺口峽)이라 했다. 미수가 탄 배는 호구협을 지나서 도감포에 이른다.
흐른다. 산도 흐르고 물도 흐른다. 물은 흐르다 막히면 산을 돌고 돌아 강으로 나가지만, 산이 물에 막히면 그 흐름은 거기서 끝나고 만다. 마차산이 흐르다가 멈춰선 임진강 남쪽의 주상절리절벽, 절벽위의 둔덕을 마포리의 '된버지'라 한다. 도감포 앞에 흰 자갈과 평평한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마차산(摩差山)은 동두천시 소요동과 전곡읍 간파리의 경계에 있는 높이588m의 산이다. 동두천을 관통한 신천(新川)은 北으로 흐르다가 전곡에서 한탄강에 합류되고, 마차산은 신천(新川)과 나란히 북으로 흐르다가 마침내 북쪽에서 갈 길을 가로막는 한탄강과 임진강의 합수지점, 도감포에서 그 흐름을 멈춘다. 도감포 앞 전곡읍 마포리의 임진강 남벽인 된버지의 주상절리석벽이 마차산흐름의 끝이다.
영평(永平)의 물이란 전곡읍 신답리 아우라지에서 영평천이 한탄강에 합류한 것을 이르니 한탄강이라는 말이다
.
『호구(壺口)를 지나면 율탄(栗灘)이고, 율탄 위는 마탄(馬灘)이고, 여울 위의 암벽 사이에는 못물이 괴어 있는데, 깊고 험하여 놀 수 없었다. 마탄을 지나면 기탄(岐灘)이고, 기탄을 지나면 유연(楡淵)이고, 유연 위는 유탄(楡灘)이고, 유탄을 2, 3리 지나면 휴류탄(鵂鶹灘 부엉이 여울)에 이른다. 그 위가 징파도(澄波渡)이고, 또 그 위 귀탄(鬼灘)에서 웅연(熊淵) 문석(文石)까지 7, 8리인데, 문석이란 것은 웅연의 그늘진 벼랑의 돌 위에 초서(草書) 같은 글이 있는 것인데, 기이하여 분별할 수가 없었다. 전에 어떤 고을 원이 부수려 했으나, 글자가 깊이 새겨져서 고칠 수 없었다 한다. 강가의 옛일[古事]은 기록할 만한 것이 많으나 물어볼 곳이 없었다. 징파도(澄波渡)에서 배에서 내려 돌아왔다. 미수(眉叟)는 쓴다.』
나루터의 위치는 이재석의 '임진강 기행'에 좀더 자세히 묘사된다
.
『우정리에서 동이리로 이어지는 강둑길로 들어섰다. 건너에서 장진천이 들어온다. 마탄이다. 아래로 하중도가 형성돼 있고 물은 여러 갈래로 흘러내린다. 기탄이다. 남계리 석벽은 우뚝하고 도감포까지 길게 이어진다. 율탄이다. 황공천으로 길이 막혔다. 임진강을 두고 멀리 길을 돌아야 했다.』
율탄(栗灘)
율탄(栗灘)은 미산면 동이리의 도장거리와 군남면 남계리 계림동 사이에 있는 임진강의 큰 여울을 말한다.
동이리의 도장거리는 "동이리코스모스길 주상절리"로 많이 알려진 곳이며, 남계리의 계림동에는 '임진강 매운탕집'이 있다. 임진강 매운탕집 아래로 옛나루터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매운탕집 윗집에서 사시는 오씨 할아버지(83세)에 따르면 이곳을 '밤여울나루'로 부른다고 한다.
화진벌은 한탄강과 임진강이 예각으로 만나는 뾰족한 삼각형 대지위에 펼쳐져 있다. 벌과 닿은 쪽으로 두 강은 높다란 절벽을 만든다. 지반에 콘크리트 기둥을 박아 고층빌딩을 세우듯 두 강은 현무암 기둥을 촘촘히 세워 화진벌을 받치고 있다. 360헥타르. 1백만 평이 넘는 너른 벌이 돌기둥 위에 펼쳐져 있다.
화진벌은 행정구역으로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에 속한다. 속한다기 보다는 남계리가 화진벌이고 화진벌이 곧 남계리다. 벌은 산으로 막히는 지점까지 수평으로 벋어있다. 삼각의 벌에서 강과 닿아있지 않는 한쪽 변으로 마을이 자리한다. 마을에서 뻗어 나오는 격자형 길을 따라 주민들은 일터를 오간다. 마을에서 강이 만나는 합수머리 도감포까지 펼쳐진 들은 다른 것이 거의 섞이지 않은 오롯한 농경지다. 간혹 보이는 건물들은 벌의 가장자리로 물러나 있다.
수직의 건축물이 섞이지 않은 벌은 수평을 실감하게 한다. 이 정도 규모의 벌은 임진강에서 흔하지 않지만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수직이 섞이지 않은 풍경은 화진벌이 아니고는 만날 수 없다. 한쪽으로 감악산이 우뚝하지만 벌을 둘러싼 것은 인공이 아니라 자연이며 그마저도 멀찍이 물러나 있다. <임진강기행에서>
남계리 계림동에 있는 ‘임진강매운탕집’
매운탕집에서 '밤여울나루터' 강바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강 건너 미산면 '동이리양수펌프장’이 보인다.
밤여울나루터. 배는 남계리 ‘임진강매운탕집’밑에서 ‘동이리 주상절리코스모스길’남쪽 끝을 오갔다고...
밤여울나루터. 이곳과 강 건너 저쪽은 지척, 옛날처럼 나룻배로 건너면 십분도 채 걸리지 않으련만, 걸어서 도달하려면 수십km, 자동차로도 372번 도로를 돌고 돌아 수십 분이 걸린다.
나루터는 옛날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세월이 흐르고 지역개발이 되면서 나루터에는 교량이 들어선다. 예전에 마포리에서 동이리로 건너는 마포나루에 시멘트로 된 ‘마포교’가 있었으나 홍수로 유실 되었다. 이번에는 그 자리에 더 크고 튼튼한 현대식다리를 놓는데, 이 다리는 다시 율탄을 건너 전곡읍으로 빠지게 된다.
율탄에서 멀리 도감포가 보인다.
말여울(馬灘)
군남면 왕림리에서 흘러내려와, 372번 도로에 있는 황지리의 댕골교와 신선교를 지난 개울물은 임진강으로 흘러든다. 이곳이 마탄이다. ‘임진강 기행’의 저자는 이 물을 장진천이라 했으나, 개울은 그리 크지 않으며 현지 확인결과 개울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화진벌로 물을 끌어올리는 양수펌프장이 있는 곳, 물은 이곳 관낭 앞에서 임진강과 합쳐지는데 이곳이 바로 마탄이다. 말여울(馬灘)은 관낭 북쪽에 있는 임진강 여울로 지형이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형국(渴馬飮水形局)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마탄에서 기탄을 보다.
마탄의 절벽 위 화진벌 용암대지에서 하류의 율탄을 보다.
기탄(岐灘)
임진강교에서
하류로 흘러내리는 물이
우정리에서 흘러든 황공천을 만나고, 황지리에서 개울물이 마탄으로 흘러드는 곳, 임진강물이 이 곳에 이르면 강 가운데 퇴적되어 있는 모래섬으로 인하여 몇 갈래로 갈라진다 하여 기탄(岐灘) 이라 하였다.
우정리 임진강교에서 하류로 내려오는 강둑길은 이곳에서 황공천으로 길이 막힌다.
유연진(楡淵津)
유연진(楡淵津)은 지금의 임진교보다 200m상류에 있었던 화이트교가 있었던 자리로 옛날에 군남면 진상리와 왕징면 무등리 사이를 잇는 나루터(유연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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