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들국화

백수.白水 2013. 9. 28. 19:04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

 

안도현의 시, '무식한 놈'의 전문이다.

 

싸늘해진 가을들판, 찬이슬 맞으며 피어나는 가을꽃.

나는 개망초와 감국(甘菊 = 黃菊)은 가려내겠는데 그에 감국과 산국(山菊)이 헷갈리고,

쑥부쟁이 · 구절초 · 벌개미취는 설명을 들어도 도저히 구별할 수가 없다.

 

그리 힘든데 굳이 가리려들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앞으로 아는 꽃은 아는대로 그 이름을 불러줄 것이며, 

내가 분별할 수 없는 꽃은  모두 들국화라 할 것이다.

 

 

 

개망초꽃

주황색과 흰색의 유홍초는 자주 눈에 띄나 이런 색깔은 처음이다.

달맞이꽃

익모초꽃

 

 

우슬

 

 

 

나는 이것들을 '들국화'라고 불렀다. 들에 피는 국화처럼 생겼으니까. 들에 피는 깨는 '들깨'라고 하고, 들에 피는 꽃은 '들꽃'이라고 한다. 촌에서 ''이란 매일 오가며 보는 그런 곳이다. 들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들판''귀한 장소나 귀한 것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는다.

 

대개 귀하지 않고 흔한 것, 깨질까 소중하게 다루지 않아도 되는 것들의 터전이다. '야생'이라는 단어의 '()'가 곧 ''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쑥부쟁이, 구절초, 벌개미취, 개망초, 산국, 감국을 통칭해서 '들국화'라고 불렀다. 국화처럼 생긴 것은 내 눈에 모두 들국화였던 셈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비슷하지 않다. 6월에 한창 피는 개망초는 계란처럼 생겼다고 해서 '계란꽃'이라 불렀지만 '식물도감'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계란꽃'은 없다. '들국화'가 없는 것처럼. 들국화는 우리들의 정서일 뿐이다. 쑥부쟁이와 구절초, 벌개미취는 서로 닮은 것으로 가을에 한창 피어오르는 잡초다.

 

우리가 들에서 흔히 보는 것은 쑥부쟁이다. 구절초, 감국, 산국, 벌개미취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쑥부쟁이는 잡초처럼 피어난다. 구절초, 감국, 산국은 잡초라고 하지 않고 산야초라고 부른다.

 

보다 넓은 의미이기도 하지만 한편 머리에 의식된 '고상한' 어감을 준다. 들국화 쑥부쟁이에서는 이름이 풍기는 이미지처럼 '애환'이 묻어나온다. '쑥부쟁이'하면 두 가지가 연상된다.

 

가난한 생활에 끼니를 이어주던 쑥과 같은 나물, 또 한편으로 중풍으로 누워 있는 엄마와 엄마를 간호하던 아버지. 온 종일 들에서 살았던 우리 부모들은 전쟁이나 가뭄이 들었을 때 쑥부쟁이로 끼니를 이어갔다. '쑥부쟁이'라는 말 속에는 애절한 삶이 담겨 있다. '쟁이'는 장인에게 붙이는 낮춘 말이다. '소리쟁이'는 소리를 많이 낸다고 해서 '쟁이'라고 했다. 귀엽게 붙여진 이름도 있다. 쑥부쟁이는 아무래도 쑥과 관계가 있을 법하다.

 

옛날에 가난한 대장장이 큰 딸은 동생들의 끼니를 채우기 위해 매일 쑥을 캐러 들에 나갔다. 동네사람들은 그녀를 '쑥을 뜯으러 다니는 대장장이네 딸'이라고 해서 '쑥부쟁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쑥부쟁이가 쑥을 캐러 나갔다가 사냥하다 함정에 빠져 봉변을 당한 한양 총각을 구해주었다. 그들은 서로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이듬해 다시 오마고 했던 총각은 세월이 흘러도 돌아오지 않았다. 쑥부쟁이는 시집도 가지 않은 채 쑥을 뜯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죽은 언덕 아래에는 나물이 많이 났는데, 쑥부쟁이가 죽어서까지 동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려고 나물로 돋아났다고 해서 동네사람들은 그 나물을 '쑥부쟁이'라고 불렀다.

 

쑥부쟁이는 양지가 바르고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우리가 흔히 길가나 들판에서 보는 것은 개쑥부쟁이다. 4월부터 어린 것을 뜯어 나물로 먹는다. 아직도 시골장에 가면 쑥부쟁이 나물을 뜯어다가 파는 할머니들이 있다. 쑥부쟁이는 봄에는 봄나물로, 겨울에는 말린 나물을 불에 불려 조리해 먹는다. 좀 억세진 잎을 물에 데쳐 말려서 겨울에 먹으면 좋다. 쑥부쟁이가 나물로 손색이 없는 이유는 정유가 있어 맛이 졸깃하고 풍미가 있는 탓이다. 특히 비타민 C가 풍부하다. 100g 성분을 보면 43kcal 칼슘과 인, 비타민이 많으며 니아신도 많다.

 

쑥부쟁이잎은 소화를 잘되게 하고 혈압을 내리며, 기침과 천식에 좋아 즙을 내어 마신다. 한방에서는 해열제와 이뇨제로 쓴다. 잎에서 즙을 내어 벌레 물린 데에 사용하며 항균 작용도 한다. 꽃이 피었을 때 쑥부쟁이잎과 줄기를 말려 감초를 넣고 달여서 그 물을 하루 3회 공복 때 마시면 어깨 결림에서 오는 심한 통증 및 복통을 가라앉힐 수 있다. 진통 효과가 아주 크다. 들국화 무리에 속하지만 구절초나 감국처럼 여유롭게 향미를 즐기는 '꽃차'로 애용되기보다 반찬으로 먹던 나물로 기억하는 것은 쑥부쟁이에 가난과 고된 삶의 애환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출처>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약이 되는 잡초음식), 변현단 글, 안경자 그림, 2011.12.16,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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