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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솥과 면도날, 문제점-해법이 닮았다?

백수.白水 2011. 4. 29. 18:26

 

 

■ 창조적 문제해결 TRIZ이론

밥을 지을 때 밥맛을 감소시키는 요인과 면도날로 깔끔하게 수염을 깎을 수 없는 이유,

태양전지 제작 시 광(光)효율이 떨어지는 원인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전혀 다른 문제들로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본질은 완전히 같다.

문제의 본질이 같다면 그 해결 방법도 일맥상통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A분야 문제에 대한 해법을 알아내 B분야 문제의 해결책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창조적 문제해결 이론인 트리즈(TRIZ)에선 이를 ‘재발명’이라고 부른다.

재발명을 하려면 서로 다른 분야에 서로 다른 용어로 표현된 문제들의 유사성을 파악해야 한다.

DBR 79호(2011년 4월 15일자)는 트리즈의 재발명 방법론을 생생한 사례와 함께 소개했다.

○ 사례 1. 밥솥 온도의 딜레마

1980년대에는 전기밥솥으로 맛있는 밥을 짓기가 어려웠다.

밥을 빨리 맛있게 지으려면 고온으로 가열해야 하지만, 높은 온도로 인해 물이 밖으로 빠르게 증발해버려

밥이 퍼석거리게 되는 부작용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온에서 가열하면 쌀알이 잘 익지 않거나 익히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

온도를 올려야 할까, 내려야 할까.

○ 사례 2. 면도날의 힘에 관한 딜레마

전기면도기로 수염을 깎을 때 예전에는 면도날에서 자꾸만 수염이 빠져 나와 삐뚤삐뚤 깎이곤 했다.

털을 깎자면 면도날로 털에 어느 정도 힘을 가해야 하지만,

정작 힘을 주면 어떤 털은 잘 깎여도 어떤 털은 면도날에 눌려 잘 깎이지 않았다.

털에 힘을 강하게 가해야 할까, 약하게 가해야 할까.

○ 사례 3. 태양전지 광(光)효율의 딜레마

빛을 전기로 바꾸는 시스템인 태양전지는 여러 소재로 만들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소재가 반도체 성질을 가진 실리콘이다. 하지만 실리콘 태양전지는

빛을 흡수할 수 있는 대역이 좁아 태양광 가운데 고작 30%(이론적 변환 효율)만 전기로 바꿀 수 있다.

엔지니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조성을 바꿔 흡수 대역이 넓어지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매우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좀 더 빠른 방법으로 흡수 대역이 각각 다른 물질을 겹겹이 배치(탠덤형 태양전지·tandem cell)하는 방안이 있다.

하지만 이 공정은 비용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겹겹이 쌓은 층에 태양광이 흡수돼 전기로 변환되지 못하고 사라지곤 한다. 여러 층을 쌓아야 할까, 쌓지 말아야 할까.

위 세 가지 사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하지만 그 본질은 놀랍게도 닮아 있다.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활동이 되레 시스템의 본질적 기능 수행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트리즈의 방식대로 문제를 서술해보면 ‘어떤 활동은 시스템에 유익한 효과를 내지만

동시에 다른 유해한 효과도 유발한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밥솥 사례는 ‘온도를 높이면 쌀이 잘 호화(쌀에 물을 넣어 가열하면 점도가 높아지는 현상)돼 밥맛이 좋아지나,

쌀을 호화시키는 또 다른 요소인 물이 제거돼 호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밥이 퍼석해진다’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면도날 사례도 ‘털에 힘을 강하게 가하면 털은 잘 깎이나, 털이 눌리기 쉽다’는 형태로 정리할 수 있다.

이때 사람들은 대개 밥 짓는 온도를 ‘적당하게’ 한다거나 면도날에 힘을 ‘적당하게’ 주는 방법부터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의 활동을 ‘적당하게’ 하는 방법 외 전혀 다른 해결책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특정 활동 수행을 위해 가하는 작용이 역기능을 일으키지 않도록 대상물에 미리 ‘반작용’을 거는 방법이다.

실제로 밥 짓기 사례는 100도 이상으로 가열을 하면서도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압력(반작용)을 걸어주는 압력밥솥 개발을 통해 딜레마를 해결했다.

면도날 딜레마 역시 털이 면도날에 눌리지 않도록 반작용 역할을 해주는

가로대(전기면도기에서 털을 잡아주는 철망 형태의 구조물)를 설치해 문제를 해결했다.

두 사례 모두 반작용의 구체적인 종류는 다르지만 역기능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상물(사례 1은 물, 사례 2는 털)에

미리 반작용을 가해둔다(사례 1은 가압, 사례 2는 가로대)는 점에서 비슷한 해결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태양전지 광효율의 딜레마를 살펴보자.

여기서 문제는 ‘각각의 파장에 대응하는 태양전지를 만들어 층층으로 부착하면

여러 파장의 빛을 발전에 활용해 전기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으나,

여러 층이 빛을 흡수해 중간에 광손실이 일어나 전기 생산 효율이 감소한다’는 점이다.

특정 작용이 기능성과 효율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악영향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밥솥이나 면도날 딜레마와 동일한 구조다.

밥솥과 면도날의 딜레마를 해결한 방법을 태양광 사례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밥솥에서는 물(수증기)에 반작용을 가했고, 면도날에서는 털에 반작용을 가했다.

태양전지에서도 빛에 반작용을 가할 수는 없을까. 빛은 다양한 파장대역을 가지고 있다.

지금처럼 서로 다른 파장대역에 대응하는 대신 빛에 반작용을 가해 하나의 파장을 가진 빛으로 만들 수 있다면

여러 층을 쌓지 않고도 여러 파장의 빛을 전기로 바꾸는 게 가능하다. 과연 그런 방법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빛의 파장 자체를 바꿔 전기 생산 효율을 증가시킬 수 있다.

최적의 파장대역보다 긴 파장의 빛은 파장을 줄여주는 상향변환(up-conversion) 형광체를,

최적의 파장대역보다 짧은 파장의 빛은 파장을 길게 바꿔주는

하향변환(down-conversion) 형광체를 도입하면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통찰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김연아 선수의 점프가 재능 때문이라는 생각과 같다.

김연아 선수는 수천, 수만 번의 연습과 실패를 통해 자신의 점프를 만들었다.

이미 아는 문제라 하더라도 각도를 달리 해서 새로운 해결책을 찾는 통찰력은 끊임없는 연습의 결과다.

특히 서로 다른 분야의 어려운 문제는 의외로 닮은 구석이 많다. 해결책도 마찬가지다.

다른 분야의 상식적인 해결책을 통해 분야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유사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훈련을 꾸준히 할 필요가 있다.

송미정 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부장 triz_institute@hanmail.net@@@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트리즈(TRIZ) ::
창의적 문제해결 방법론을 의미하는 트리즈는 옛 소련의 과학자 겐리히 알트슐러가 ‘모든 발명 과정에 공통의 법칙과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전 세계 특허 200만 건 중 창의적 특허 4만 건을 추출해 분석한 결과를 체계화한 이론이다. 삼성전자 등 많은 기업에서 문제해결 방법론으로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