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해를 보내면서...

백수.白水 2013. 12. 31. 19:53

 

 


 


 


멀리까지 따라 나가서 가는 해()를 보내고 왔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늦게 해가 지는 서쪽, 그리고 가장아름다운 곳,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 그린 임진적벽도(臨津赤壁圖)의 배경인 자장리적벽앞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歸村한 뒤로는 매년 강둑길을 걸으며 한해를 뒤돌아보곤 한다.

집에 들어와서는 일 년 내내 걸어두었던 옷을 걷어내 허공에 대고 훌훌 털어 다시 걸 듯,

지난해에 써두었던 送年의 글을 읽어보고 낡고 먼지가 낀 곳은 털어내어 다시 올리곤 한다

 

사람들은 강물이 흐르고 세월이 간다고 하지만, 정작 흐르고 가는 것은 세월과 강물이 아니라 강둑에 서있는 우리 자신이 아니겠느냐고..

강둑에서면 늘 되뇌며 공감하는 어느 사진작가의 절창(絶唱)이다.

야은 길재선생도 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곳없다고 했거늘,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歲月이 간다는 것은 해와 달이 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24절기표를 보니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네.

人生행로를 표로 그리면 그 또한 이러한 것이라. 歲月(해와 달)은 가운데자리에 있고 우리가 그 둘레를 걸어 도는 것이니, 결국 우리가 산다는 것은 세월의 강둑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늘 같은 궤도를 걷는 것이 아니다.

매번 다른 길, 때로는 엉뚱한 길로 들어서서 질퍽거리다가 엎어지기도 하고,

어찌어찌 하다보면 한 바퀴 다 돌아 일 년이 되고, 뱅뱅 돌아가며 나이테()를 더한다.

흐트러지지 않고 잘 걸어 왔는가? 그리고 내일은 어느 길을 걸을 것인가?

 

임진강빙판위에 쌓였던 눈이 오늘 질퍽하게 녹아버렸다.

발밑 얼음장 아래로 강물은 쉼 없이 흐르고 물고기 떼 지어 노닐지만 이 물이 북한 땅인 임진강 상류의 물인지 아니면 한탄강에서 합류된 물인지 근원을 알 수가 없고, 언제 출발해서 지금 예까지 내려 왔는지 굳이 가릴 필요도 없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 발밑을 흐르고 있는 강물일 따름이다.

가는 해와 오는 해, 그 찰나의 순간을 어찌 구분하여 헌것과 새것으로 획을 그을 수 있다는 말인가.

 

흰 눈에 찍힌 내 발자국이 내 과거요, 앞으로 내딛는 발길이 내 현재요, 눈앞에 펼쳐진 눈밭이 나의 미래인 것이다.

발뒷굼치는 어제인 것이고, 딛고 선 발바닥이 오늘이며, 앞굼치 발가락은 내일을 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이렇게 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어깨에 걸머메고 세월의 강둑길을 걸어가는 것.

내가 걸어온 길이 흐트러졌다고 되돌아가서 다시 걸어 올수도 없는 일 아닌가.

후회스럽다면 이 순간부터 바로 걸으면 될 일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apthwang?Redirect=Log&logNo=80201602093>

 

김광석 - 어느 60노부부의 이야기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막내아들 대학 시험 뜬 눈으로 지내던 밤들

어렴풋이 생각 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큰 딸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이 흘러가네 흰머리가 늘어가네

모두가 떠난다고 여보 내 손을 꼭 잡았소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며칠 전 TV에서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라는 노래를 가슴 저리며 들었던 일이 있다.

아침에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내어 아내에게 들려주었는데... 눈물을 펑펑 쏟는다.

참 당황스러웠다. 자식 키워서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빈 둥지를 지키는 어미의 마음이 너무 시린가 보다.

비우고 내려놓아야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위로를 했지만 쉽게 털어 내지를 못한다.

새해에는 아내의 가슴이 거위깃털처럼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지 않는 샘.  (0) 2014.01.03
겨울 탁구  (0) 2014.01.02
딱따구리의 빈둥지.  (0) 2013.12.30
까치는 바람 부는날 집을 짓는다.  (0) 2013.12.30
풍비박산(風飛雹散)  (0) 201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