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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정리] 연천군 원당리 구석기유적

백수.白水 2014. 2. 6. 07:34

 

연천 원당리에서 구석기시대 유물 발굴 

 

 

한반도에서 전기구석시시대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층위와 유물이 경기 연천에서 발굴됐다. 건국대박물관(관장 최무장교수)는 지난달 15-20원당2리의 논 4개 지점을 발굴한 결과 2개지점 지하 7층에서 석영암제와 긁개 등 20만년이상 된 전기구석기시대 5점이 출토됐다고 밝혔다.

 

발굴팀을 지휘한 최관장은 "이번에 발굴된 유물은 지하3-4층에서 78년에 발굴된 전곡리 및 남계리유물과는 달리 7층에서 발견돼 전기 구석기시대 유물임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원당리 구석기시대 유적은 임진강변에 위치한 논으로 지난 19951백여점의 구석기시대 타제석기가 발견된 이후 건국대박물관이 2년째 발굴조사를 벌여왔다. <한겨레 1996. 08.21>

 

 

 

 

한양대 문화재연구소(소장 배기동)에 따르면 최근 장남교 가설구간인 경기 연천 장남면 원당리를 조사한 결과 모두 1,580점의 구석기 유물을 발굴했다. 10만년~5만년 전의 것으로 짐작되는 유물 가운데는 11점의 주먹도끼가 나왔다. 이는 임진강 일대 구석기 유적에 대한 단일조사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구석기유적인 전곡리 유적에서도 17차례 조사에서 13점이 나왔을 뿐이었다.<경향신문, 2009-08-19>

 

1996년부터 2003년까지 6차 발굴된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구석기 시대 유적의, 3, 4차 발굴된 4층과 5차의 3층은(위에서 아래로)은 전기 구석기 시대 약 30~50만 년에 해당되며, 이 유적의 2(위에서 아래로)은 중기 구석기 시대 약 5만 년에 해당된다. 원당리 1차 발굴의 상층 3, 4층은 후기 구석기 시대에 속하는 2만 년 전후 시기로 추정하였다. 축토된 석기는 석편제 긁게, 밀개, 송곳, 첨두기 등이다. 6층과 7층은 전기 구석기 시대 말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1차 발굴 지역에서 북서방향으로 1km, 지점의 3, 4차 발굴 그리고 5, 6차의 발굴 결과는 한반도 구석기시대 전기와 중기의 표준을 세울 수 있는 성과를 가져 왔다. 3차 발굴된 7개의 구덩이에서 식물이 모두 463점 출토되었고, 그 중 4층에서 출토된 것은 421점이며, 2pit4pit 2층에서 출토된 것은 42점이다. 1pit 4층의 50점 석물 중 외날찍개(end-chopper)5점이며, 492점 석물 중 19점이 외날찍개이다. 그밖에 석편 1점과 74점의 외날찍개 그리고 한반도 최고의 연대로, 50만 년 전의 소형원형 돌무지가 발견되어 사람의 거주를 뒷받침해 주었다

.  <2011.09.23 |http://cafe.naver.com/heeya6673/394>

   

 

 

 

지적편집도로 정확한 위치 보기

http://blog.naver.com/ybm0913/40205950640

 

 

연천군 원당리 구석기유적 발굴지점

 

발굴지역: 원당2리

위치

지번지목

조사주체

발굴연도

출토유물

구야(九野)

904

건국대박물관 3

19981999

찍개, 클리버, 톱니날석기, 긁개, 밀개 등

932-1

건국대박물관 3

1998

초퍼 석핵 작은 도끼 긁개 송곳 첨두기 조각기 등 구석기시대 중기 말(5-6만년) 석물 200여점

954

경기고고학연구소

20022003

주먹도끼, 대형 첨두기, , 몸돌 등

()장남교북단

701-4

건대박물관 2

19961999

찍개 몸돌 긁개 밀개 찌르개 새기개 칼 등

702,703

건대박물관 2

19961999

마제석부, 마제석촉

()장남교북단

504

건대박물관 1

19961997

긁개, 밀개, 단면기, 첨두기 등의 뗀석기

신장남교가설공사 구간

504-12

한양대박물관

20062009

주먹도끼류 14점 등 유물 100여점

※904답과 932-1묘는 접해 있음.

건국대박물관 두 개의 지점(1,2,3)에서 총 625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1) 원당리 904 답 [구야지역]

 

 

 

 

연천군 장남면 사무소에서 옛 구야동 방향 농로 길로 약 500m 떨어진 경작지로 동쪽으로 약 150m 지점은 임진강변이다. 유적의 지형은 북쪽으로 5.4°정도 경사졌으며, 해발고도 37m 정도이다. 이 유적은 1998~1999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층위는 기본적으로 4개로 구분된다.

 

원당지역의 기본적인 구조도 임진강변의 다른 유적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하부의 기반암인 현무암 위를 실트층, 모래층과 찰흙층이 덮고 있다.

 

출토유물은 찍개, 클리버, 톱니날석기, 긁개, 밀개 등으로 구석기시대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건국대학교박물관

, 연천 원당리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조사보고서(2,3,4), 2001

 

 

2) 원당리 932-1 묘 [구야지역]

 

 

연천 원당리 구석기유적 발굴조사(3차) 지도위원회의 자료
 1. 유적의 명칭 : 경기도 연천군 원당리 구석기유적 2. 위치 및 면적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932-1 밭 약 1,000평
3. 발굴조사단 구성
* 조사단장 : 최 무 장(건국대학교 박물관장)
* 지도위원 : 정 영 화(영남대학교 교수)
                  임 효 재(서울대학교 교수)
                  최 복 규(강원대학교 교수)
* 조 사 원 : 채 현 석(건국대 박물관 학예과장) 외

4. 지도위원회의 개최 계획

* 일시 : 1998년 8월 22일(토) 오전 11시
* 장소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932-1 발굴 현장

5. 발굴 현황

1998년도 원당리 구석기유적 발굴조사는 원당리 제3차 발굴이다. 금번 발굴은 1998년 7월 21일부터 예비조사를 시작하여 본 발굴을 진행, 8월 10일까지 5㎡의 구덩이를 5개 굴착하였다. 금번 발굴지역은 1, 2차(96년, 97년) 발굴 장소로부터 동북방향으로 약 1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이곳 유적에서 동쪽으로 약 150m 지점은 임진강변 이다. 이곳 유적은 과거에 구야동(現 원당리)이라고 불리웠다. 유적은 북쪽으로 5°(5.4°) 정도 경사졌다. 해발은 37m이며, 토층은 기본적으로 4층으로 나누어진다. Ⅳpit 남벽의 두께는 150cm이다.

-.1층 경작토 두께 15cm
-.2층 암갈색점토 두께 50cm
-.3층 갈색점토 두께 50cm
-.4층 암황갈색점토(모래소량섞음) 두께 35cm

유물은 2층과 4층에서만 출토되었다.

2층 유물은 원래 언덕의 삭평 관계로 동쪽의 Ⅳpit, Ⅱpit, Ⅲpit만 잔존되었으며 석기는 석영제 위주로 초퍼, 석핵, 작은 도끼(cleaver), 긁개, 송곳, 첨두기와 극소수의 조각기(burin)등으로 조성되었다. 유형학적인 시각에 의하면 작은 도끼 등의 존재로 시기는 구석기시대 중기말(약 5-6만년)에 해당한다.

4층(암황갈색)은 end-chopper 위주의 문화층이다. 석재는 기본적으로 강자갈이다. 암석 종류는 석영암, 현무암, 변성암 그리고 극소수의 유문암이 섞여있다. 현무암 석기로 뚜렷하게 가공된 것은 아직 확인하기 어려우나 그 크기와 유형은 석기임이 틀림 없다. 흥미 있는 내용은 석기와 석재가 2개 혹은 4개씩 무리를 이루어 때로는 일직선으로, 때로는 2개 또는 4개씩 하나의 군을 이루고 놓여 있는 점이다.
이 돌무더기의 간격은 30-50cm정도이거나 때로는 100cm 사이에 놓여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Ⅰpit의 석물은 45개이다. 그 중에서 석영암 강자갈 17점, 석영제 망치 1점, 변성암 초퍼 2점, 석영암 석편 긁개 1점, 그리고 기타는 모두 현무암 석재이다. 현무암 석재는 대부분이 장방형 또는 삼각형이다. 이것들의 크기는 길이 15.5×너비9×두께 4.5cm이며, 작은 것은 길이 11×너비 9×두께 4cm이다. 다만 현무암의 부식이 심하여 석기로 판단하기는 아직은 어렵다.
변성암 강자갈제 end-chopper는 2점이다. 그 중 1점은 석편을 북쪽에 그대로 남겨놓아 복원이 가능하다. 강자갈 1단에서 유일하게 몸체의 중심을 향하여 1점의 석편을 경사지게 떼어내었다. end-chopper의 크기는 길이 12×너비 9×두께 6cm이다. 이 강자갈에서 떼어낸 석편의 크기는 길이 7.5×너비 4×두께 2.5cm이다. 또 다른 1점의 end-chopper는 강자갈 일단에서 2편의 석편을 떼어내었다. 크기는 길이 9.5×너비 7×두께 7cm이다.
석영(Quartz)의 석기는 1점으로 망치이다. 이타원형(Subspheroids)이다. 아타원형의 1면에서 비교적 작은 석편들이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상대 일단의 일변에서 크게 석편 일점이 제거되어 망치를 손에 잡을 때 엄지가 그곳에 놓이게 되어있다. 오른손에 이 망치돌을 들고 석기를 제작한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크기는 길이
11×너비 10×두께 9cm이다.

석영암(Quartzite)제 석편 긁개 1점은 유일한 석편 석기이다. 석영암 강자갈에서 떼어낸 석편이다. 벽개면 오른쪽 일변의 등면에서 안쪽으로 제2가공하여 긁개를 만들었다. 석편은 거의 삼각형이며, 자연타격면을 가졌고 타격점은 뚜렷하다. 크기는 길이 9.3×너비 6.7×두께 3cm이다.

제Ⅱ PIT
석물은 모두 90점이다. 석물은 동쪽에 치중되어 있다. 석물은 석영암제가 절대다수이며 그 다음은 화강암제 석물로 30점이며, 변성암은 8점이다. 변성암제의 end-chopper는 5점이다. 석영암제 end-chopper는 8점이며 그 중에서 chopping-tool은 2점이며, 석핵 1점 그리고 석영제 석편 4점, 석영제 첨두기 1점 그리고 송곳 1점 들이다.
석영암제 end-chopper의 크기는 작은 것은 길이 10.5×너비5.5×두께 4.5cm이며 큰 것은 길이 11×너비 8×두께 6.5cm들이다. 변성암제의 end-chopper는 작은 것은 길이 6.5×너비 7×두께 6.5cm이며 큰 것은 길이 9.5×너비 8.5× 두께 6.5cm들이다. 석영제의 석핵 1점은 비교적 큰 석편을 3점 이상 떼어내었다. 타격면은 자연면이다. 크기는 길이 13×너비 9×두께 5.5cm이다. 석영제 1점은 자연타격면을 가 졌다. 1변은 석편의 자연면을 이용하고 1변을 거칠게 가공하여 point를 만들었다.
석영제 석편중 비교적 큰 것은 석핵(강자갈)에서 떼어낸 석편이다. 타격면은 자연면이다. 등면(타격면)을 중심으로 양면에서 비교적 커다란 석편이 떨어져나갔다. 그 결과 벽개면 양면이 만나는 1변은 자연적으로 날이되어 예리하다. 칼 등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크기는 길이 7.5×너비 6×두께 5cm 등이다. 유일하게 화강편마암제 석편제 긁개 1점이 확인되었다. 자연타격면을 가졌으며 등면 왼쪽면을 벽개면에서 등면 방향으로 거칠게 제2가공하여 날을 만들었다. 크기는 길이 9.7×너비 5.5×두께 2cm이다.

제Ⅲ PIT
5개의 구덩이중 최북단에 있다. 최북단의 해발은 35.28m이다. Ⅰpit에서 50cm두께의 둑을 사이에 두고 동북으로 7m 지점에 있다. 이곳의 토층은 남벽과 동벽 코너부분은 4층이며 북벽에는 다만 2층으로 나누어진다. 동벽 코너 1층 두께 18cm
               2층 두께 28cm
               3층 두께 60cm
               4층 두께 45cm
동북 코너 1층은 표토로서 교란되어 대단히 두텁다. 두께 45cm이다. 2층은 감색점토로 두께 55cm이다. Ⅲpit의 남동코너에는 Ⅰpit 2층(암갈색)이 28cm두께이며 동북코너에는 2층(암갈색점토)은 사라지고 다만 표토와 3층 갈색점토만 있다. 따라서 소수의 석물은 남동코너에서 보면 3층에 속하고 동북코너에서 보면 2층에 속하고 있다. 석물중 유물의 유형에 의하면 Ⅲpit의 유물은 2층 즉 중기 구석기시대 말기에 해당된다.
석물은 모두 14점이다. 석영암 강자갈 2점, 석영암제 양단초퍼 1점, 석영제 석편 긁개 2점, 석영제 칼 1점, 석영제 강자갈 1점, 변성암제 강자갈 5점, 변성암제 초퍼 1점, 변성암제 석편 1점, 현무암제 강자갈 2점 등이다. 석영암제 양단초퍼 1점은 강자갈 1면의 양단에서 각각 1편씩 비교적 큰 석편을 떼어내었다. 크기는 길이 11.5×너비 10×두꼐 4cm이다. 석영제 긁개 2점 중 큰 것 1점은 준비된 타격면을 가졌다. 타격점은 뚜렷하다. 등면의 양변을 벽개면에서 등면 방향으로 정교하게 제2 가공하여 긁개를 만들었다. 크기는 길이 5.7×너비 4×두께 2.5cm이며 작은 것은 자연타격이며, 타격점은 뚜렷하지 않다. 등변과 벽개면상의 각 변에 제2가공하여 긁개를 만들었다. 크기는 길이 3.5×너비 4.3×두께 1.2cm이다. 석영제 칼 1점은 자연타격면이며, 타격점은 뚜렷하지 않다. 등면은 전체가 자연면이다. 비교적 긴 석편제이다. 1면은 두텁고 1변은 사용한 흔적이 있다. 크기는 길이 6.5×너비 2.6×두께1.3cm이다.
변성암 초퍼 1점은 소형강자갈 일단에서 석편 1점을 떼어내어 end-chopper를 만들었다. 크기는 길이 7.5×너비 8.5×두께 5cm이다. 변성암제 석편 1점은 소형강자갈 일단에서 떼어낸 석편이다. 타격점은 뚜렷하지 않다. 크기는 길이 5.5×너비 3.5×두께 1.5cm이다.

제Ⅳ PIT
Ⅳpit의 석물은 102점이다. 5개의 중

의 상태가 보이지 않는다. 석물군 사이의 간격은 30-40cm이다. 그러나 흥미있는 내용은 남동 코너 앞쪽으로 중앙에 2점의 석영과 석영암제의 석기를 중심으로 하나의 원형이 이루어져 있는 점이다.

석영제 또는 화강암제 강자갈로 조성된 원형의 북쪽 주위에는 10cm, 15-20cm 간격을 두고 현무암 강자갈 4점과 변성암제 강자갈 1점 등 5점으로 원을 이루고 그 사이에 석영암제 end-choper 1점이 놓여 있다. 그리고 동북 코너 앞에는 현무암 강자갈 1점과 변성암 강자갈 2점 그리고 석영암제 end-chopper 1점 등 4점으로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원형(small stone circle) 석물 둘레 사이에 출입구(?)로서 동쪽방향에 1개와 남쪽 사이에 1개의 출입구(?)를 두었다. 출입구(?)의 너비는 동쪽이 70cm, 남쪽이 70cm이다. 동북코너앞에 또 하나의 원형 유구가 있다. 이 유구는 전자 보다 조금 크다. 거의 원형으로 동서 143cm, 남복 140cm이며, 출입구는 동쪽과 남쪽 두 곳 이다. 동쪽문은 80cm, 남쪽문은 60cm의 너비를 가졌다. 가장 큰 유구는 타원형이다. 긴 장축은 동서로 205cm, 너비는 남북방향으로 180cm이며 문은 서북과 남북방향에 각각 설치되어있다. 전자문은 100cm이고 후자는 60cm이다.
석영암, 현무암, 변성암제 강자갈 또는 석기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원을 만들고 그 사이에 강자갈 1점을 두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출입구(?)를 만들고 그 중간에 석기 또는 석제 2, 3점을 놓은 것은 유구로 보기는 어렵고 석기 제작과정의 하나의 작업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원형의 석열유구(?)는 작업장소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을 가진 유구로 볼 것인지 장차 깊이 연구하여 볼 필요가 있다.
Ⅳpit 석기는 end-chopper 위주이다. 석영암제 end-chopper는 5점이며, 변성암제는 4점이다. 석영암제chopping-tool은 1점, 석영제 마치 1점 그리고 석영암제 chopping-tool 1점과 변성암제 석편 1점 등이다. 이 변성암제 석편은 end-chopper를 만들기 위하여 강자갈 1단에서 떼어낸 것이다. 크기는 7×너비 4×두께 3.5cm이다.
현무암 강자갈은 상기한 바 같이 40점 이상이다. 그 중 현무암 석편제 밀개 1점은 준비된 타격면을 가졌으며 그 상대 일단을 거칠게 가공하여 밀개를 만들었다. 밀개의 크기는 길이 7.5×너비 4×두께 3.5cm이다. 석영암제 end-chopper의 크

[사진1] 1.발굴지 전경, 2.1pit 전경, 3.1pit 서벽 층위
[사진2] 4.2 pit 전경, 5.2 pit 서벽 층위, 6.3pit 전경 [사진3] 7.3pit 남벽 층위, 8.4pit 전경, 9.4pit 서벽 층위 [사진4] 10.5pit 전경, 11.5pit 남벽 층위

 

 

3) 원당리 954전 [구야지역]

 

 

 

 

유적은 2002~2003년 발굴조사된 유적이다. 원당리904 유적의 동남방향으로 약 200m 지점에 있으며 임진강의 북동쪽에 작은 언덕처럼 남아 있는 경작지이다.

 

해발이 33m 정도되는 암갈색 점토층에서 전형적인 구석기시대 석기가 출토되었다고 보고되었다. 출토유물은 주먹도끼, 대형 첨두기, 과 전형적인 타격점이 준비된 몸돌 등이다.

 

경기고고학연구소, 연천 원당리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조사보고서(5), 2003

경기고고학연구소

, 연천 원당리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조사보고서(6)』, 2003

 

 

  

4) 원당리 701-4 [(옛) 장남교 북단] 

 

파주 주월리·가월리유적보다 조금 하류지역에 위치하는 이 유적은 사행하는 임진강 북안의 구릉성 대지 위에 있고, 퇴적은 매우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발굴조사는 1995년부터 3차례에 걸쳐 건국대학교박물관이 진행(1996-1999)했다.

 

층위 구성은 지점에 따라 다르나 표토층심회적색찰흙층(2문화층)황갈색찰흙층암황 갈색찰흙층홍갈색찰흙층(1문화층)황색모래층진홍색모래층적갈색모래층현무암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문화층이 확인되는데 아래층인 1문화층에서는 찍개를 비롯하여 르발르와 몸돌·긁개 · 등이 나왔다. 격지석기들은 모두 자연타격면을 가지고 있다.

 

2문화층 출토 석기는 긁개·밀개·찌르개 ·새기개 등으로 대부분 소형이며, 석재는 거의 석영이다. 이들 석기 대부분은 자연타격면을 가졌으며, 격지떼기와 제2

차 가공은 거의 직접타법을 사용하였다. <전곡선사박물관>

 

 

 

 

사진 왼쪽부터 주먹찌르개 (pick, L:138) 주먹도끼 (handaxe/biface, L:185)

주먹도끼 (handaxe/biface, L:209) 긁개 (scraper, L:125) 가로날도끼 (cleaver, L:165)

 

 

 

5) 원당리 702답, 703답 [(옛) 장남교 북단]

 

 

 

 

 

 

파주 두지리에서 원당리로 넘어가는 장남교를 건너 약 70m 지점에 위치하며, 원당리504 임 유적에서 남동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경작지에 분포하고 있다. 이 곳에서 길이 12.5cm, 두께 0.5~2.0cm의 화강암 재질의 마제석부 1점과 길이 3.3cm, 두께 0.3cm로 결구 흔적이 남아 있는 마제석촉 1점, 높이 5.4cm, 두께 0.5~0.8cm의 미완성 마제석촉 1점이 수습되었다

 

 

 

 

6) 원당리 504임 [장남교 북단]

 

 

 

유적은 1996~1997년 발굴조사되었다. 연천 장남면사무소가 있는 원당1리에서 도로를 따라 마을 안쪽으로 3km 가량 가면 임진강과 장남교에 이르게 된다. 파주 주월리 일대에서 남행으로 방향을 바꾼 임진강이 다시 서북쪽으로 방향을 바꾼 지역으로 원당지역은 임진강이 둥글게 싸고도는 강의 북안지역이며, 퇴적이 두텁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곳이다.

 

층위는 기본적으로 하부의 기반암이 현무암 위를 실트층, 모래층과 찰흙층이 덮고 있으며, 유물은 대체적으로 찰흙층에서 산발적으로 발견되지만 찰흙층의 하부인 모래층과의 점이지대에서도 많이 발견되고 있다.

 

긁개, 밀개, 단면기, 첨두기 등의 뗀석기가 출토되었다.

 

건국대학교박물관, 연천 원당리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조사보고서(1), 1996 건국대학교박물관, 연천 원당리 구석기시대 유적 발굴조사보고서(2,3,4), 2001

 

 

7) 원당리504-12 임야  [신 장남교 가설구간]

  

 

 

 

글쓴이 : 문화재연구날짜 : 09-04-23 16:59

 

연천 원당리 구석기유적

 

-장남교 가설공사 문화재 시굴조사-

 

I. 조사지역 개관

 

조사대상지역의 행정구역상 위치는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2리 일원이며, 위도경도 상으로 북위 37°5758.4, 동경 126°5332.2에 위치한다. 이곳은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의 함박골과 임진강을 경계로 마주보고 있다. 임진강은 가월리를 지나 내려오며 조사지역을 감아돌 듯이 장좌리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두지리의 함박골과 원당2리 사이에 장남교가 위치하고 있다.

 

조사지역은 문산에서 37번 국도를 따라 연천방향으로 진행하다 두지교차로를 통과하여 좌측의 장남교를 건너면 북편으로 조사구역이 위치한다. 조사지역은 장남교 가설구간으로 북서-남동방향으로 긴 평면형태를 띠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다. 조사구역의 북쪽으로는 낮은 구릉들이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임진강이 지나가고 있다. 조사구역 일대의 해발고도는 약 18~25m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조사구역에 인접하여 원당리 구석기유적이 위치하고 있는데, 원당리 구석기유적은 건국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다량의 구석기 유물이 채집되어 1996년과 1997, 1998, 19994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지점은 두 개의 지점으로 각각 본 조사대상지에서 서쪽으로 약 70m 지점과 북서쪽으로 1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다. 조사 결과 두 개의 지점에서 총 625점의 유물이 출토하였다.

 

II. 조사내용

 

1. 층위

조사지역은 북서에서 남동으로 세장한 형태로 인삼밭과 저수지 등 조사가 불가한 지역이 조사지역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조사의 편의성과 기록의 용이성을 기하기 위해 지형적인 차이를 고려하여 조사지점을 3개 지점으로 구분하였다. 1지점은 조사지점의 임진강과 가장 인접한 구릉지에 해당하며, 2지점은 조사지점 중앙 3단의 논 경작지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3지점은 2지점과 남북방향 소로를 경계로 북서쪽으로 위치한 논 경작지 일부와 북편 능선 사면의 말단부를 포함한다.

 

조사지점의 층위양상은 지점별로 차이를 보이고는 있으나, 일반적인 층위 양상은 제일 아래에 기반암인 현무암 혹은 풍화암반이 위치하고 있으며, 색조에 있어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갈색점토층이 1~1.5m 두께로 확인되며 이 갈색점토층 상부에 토양쐐기가 확인된다. 갈색점토층의 상부로는 지표 및 교란층이 위치하고 있다.

 

1) 1지점

 


1지점의 층위양상은 아래부터 점토층에 현무암괴가 혼입된 층이 위치하고, 그 상부로 명갈색점토층이 위치하고 있으며, 그 상부에 갈색점토층, 지표 및 교란층이 순서대로 위치한다.

1지점의 북서편 저수지 부근의 피트에서는 경작․교란층 아래로 바로 현무암괴가 확인되고 있다. 원당 1차 발굴 보고에 의하면 1996년 여름 조사지역 일대에 장남교가 잠기는 홍수가 있었는데, 당시 홍수로 인해 남동편 구릉의 지표가 흘러내려 현무암괴가 노출된 기록이 있다. 1지점은 기존의 원당리 유적에서 동쪽으로 약 70m가량 떨어진 지점으로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판단된다.

전체층위에서 갈색 점토층과 명갈색 점토층에서 유물이 확인된다.

층 위

두께(cm)

특 징

지표, 교란 경작층

20~25

경작이 이루어진 층으로 암갈색 점토층이 삭박된 후 퇴적되었다. 색조는 갈색을 띄며 20cm 정도의 두께로 남동편지역 전체에 걸쳐서 나타난다.

암갈색점토층

30~45

연갈색의 쐐기문양이 관찰되는 층으로 쐐기문양이 시작되는 층은 삭박되어서 확인되지 않는다. 점토는 짙은 암갈색을 띄고 있으며 남동편 지역 대부분에서 나타난다. 점토층 상부에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명갈색점토층

40~55

암갈색 점토층 하부에서 관찰되는 층으로 상부층에 비해 색조가 밝고 단단하며 점성이 높은 특성이 있다. 유물이 출토되는 층이다. 부분적으로 현무암괴가 혼입되어있다.

명갈색점토

+현무암괴 층

40

명갈색 점토층 하부에서 관찰되는 층으로 명갈색점토에 다량의 현무암괴가 혼입되어 있는 양상이다.

2) 2지점


2지점은 3단의 논 경작지로 이루어져 있다. 층위양상은 유물포함층인 갈색점토층 상부로 황갈색 점토층이 나타나고, 상부로 재퇴적된 층위, 표토․경작층의 순서로 확인된다. 지점에 따라서는 경작층 하부로 바로 갈색점토층이 나타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지점별로 차이가 있지만 현재까지의 조사결과 황갈색점토층상부와 갈색점토층에서 유물이 출토한다.

층 위

두께(cm)

특 징

지표, 경작, 교란층

20~25

논으로 경작이 이루어졌던 층으로 색조는 회청색을 띄고 있다. 조사지역 전체에 걸쳐서 나타나며 20cm 정도의 두께이다.

재퇴적층

갈색사질점토

20~100

재퇴적된 층으로 색조는 갈색을 띄고 있으며 약간의 점성이 있다. 조사지점의 일부에서만 확인되며 경작층 바로 아래 점토가 나타나는 부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흑갈색 사질점토

50~60

구 경작지층으로 추정되며 어두운 흑갈색의 색조를 띄고 있다. 조사지점 일부에서만 확인되며 경작층 바로 아래 점토가 나타나는 부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황갈색 사질점토층

40~60

암갈색 사질점토층 하부 층으로 점성이 높고 부분적으로 조립질 석립이 혼입되어있는 양상이다.

황갈색점토층

10~20

황갈색 사질점토층 하부 또는 경작층 하부에서 확인되며 쐐기문양을 포함하고 있는 층이다. 밝은 황갈색의 색조를 띄고 있으며 점성이 높고 단단하다. 부분적으로 수평층리 구조와 함께 쐐기문양이 확인되며 지점에 따라서 유물이 출토하고 있다.

갈색점토층

20~150

황갈색점토층 하부층으로 쐐기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갈색의 색조를 띄고 있고 점성이 높고 단단하다. 유물이 출토하고 있다.

 

 

3) 3지점


3지점의 층위양상은 아래부터 풍화력층이 위치하며, 그 상부로 유물포함층인 황갈색점토층과 암갈색점토층이 확인된다. 이 점토층의 상부로 지표 및 교란층이 위치한다. 토양쐐기는 암갈색점토층 상부에서 확인되며 암갈색점토층은 상부 층위가 삭박된 상태이다. 지점에 따라서 경작층 하부로 삭박된 갈색 점토층이 바로 확인된다. 암갈색점토층 상부와 황갈색점토층에서 유물이 출토한다.

층 위

두께(cm)

특 징

지표, 경작, 교란층

15~25

논으로 경작이 이루어진 지점은 회청색 경작층이 이외의 지역은 갈색의 색조를 띈 지표, 교란층으로 나타난다.

매립층

40~50

매립층으로 켜를 이루며 2매가 나타나며 풍화력과 암갈색 점토가 혼입되어 있는 층이다.

암갈색점토층

125~140

삭박된 상부 쐐기문양을 포함하고 있으며 쐐기문양은 명갈색이다. 점토층은 어두운 갈색의 색조를 띄고 있으며 점성이 매우 높고 매우 단단하며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황갈색점토

20~50

갈색점토하부에서 확인되는 층으로 황갈색의 색조를 띄고 있으며 점토층 하부로는 풍화력이 혼입되어있는 양상이다. 점성이 높고 단단하며 유물을 포함하고 있다..

풍화력층(Ⅴ)

-

황갈색 점토가 부분적으로 혼입되어있는 풍화력층으로 레벨이 낮은 지역인 경우 경작층 하부로 풍화암반이 나타나는 양상과, 경작층 하부로 점토층이 1m 이상 확인 된 후 풍화력이 나타나는 양상이 있다.

2. 출토유물
1) 유물출토상황
조사지점에서 교란층, 점토층에서 출토한 석기는 총 133점이며 점토층 출토유물은 100점이다. 유물의 분류는 기본적으로 임진-한탄강 유역 구석기유적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클라크와 클라인딘스트의 분류체계(Clark & Kleindinst classification system, Clack 1969)를 따라 성형석기, 반입석재, 버리는 석재로 분류하고, 석핵 및 박편은 제작과정석재로 구분하였다.

조사지점 전체에서 제작과정의 석기로 분류된 석핵과 박편이 25점이며, 천석과 석괴 등 반입석재가 37점이다. 성형석기는 4점이 확인되는데, 부리형석기(bec) 1점, 홈날(notch) 1점, 긁개(side-scraper) 1점, 그리고 석기제작도구인 망치돌(hammer) 1점이 확인되었다.



석핵(core) 일괄


박편(flake) 일괄


석재는 대부분 석영과 규암이 대부분이며 일부 현무암과, 풍화된 석재들도 일부 확인된다.

구분

유물종류

수량

성형석기

긁개류(scraper)

1

홈날(notch)

1

부리형석기(bec)

1

석기제작도구

망치돌(hammer)

1

제작과정석기

석핵(core)

10

박편(flake)

11

반입석재

천석(cobble, pebble)

19

석괴(chip, chunk)

46

버려진석재

석편(debris)

10

100

2) 층위별 유물 출토 현황
구석기시대 퇴적층에서 수습된 총 100점 중에서 반입석재와 버려진 석재를 제외한 석기는 23점이다.

조사지역의 층위별 유물 출토 현황을 살펴보면 먼저 1지점의 유물포함층은 2개로 경작, 교란층 하부에서 확인되는 갈색점토층과 C.P.(Control Pit; N1W3-Ⅱ 피트)의 갈색점토층 하부에서 나타나는 명갈색점토층이다. 갈색점토층에서는 박편 6점, 석핵 6점, 부리형석기 1점, 긁개 1점이 출토하였으며 명갈색 점토층에서는 박편 4점과 망치돌 1점이 출토하였다.

2지점의 경우 점토층의 범위 확인을 위해 확장조사를 실시하였기 때문에 기반암을 확인하지 않았다. 조사는 유물이 출토하는 층까지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지점별 차이는 있으나 2개의 유물포함층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경작층 바로 하부에서 갈색점토층이 나타나는 양상과 재퇴적된 사질토가 두텁게 나타나는 층 하부로 황갈색점토층 그 아래로 갈색점토층이 나타나는 양상이 확인되며, 황갈색점토층과 갈색점토층에서 유물이 출토하고 있다. 갈색점토층에서 박편 1점을 확인하였다.

3지점의 경우 유물포함층은 2개로 경작층 하부에서 확인되는 (암)갈색점토층과 그 하부층인 황갈색 점토층이다. 갈색점토층에서 석핵 1점, 황갈색점토층에서 석핵 2점이 출토하였다.

 

지 점

층 위

출 토 유 물 현 황

1지점

갈색점토층

flake 6점, core 6점, bec 1점, scraper 1점

명갈색점토층

flake 4점, hammer 1점

2지점

갈색점토층

flake 1점

갈색사질층

core 1점

3지점

황갈색점토층

core 2점

갈색점토층

core 1점

 

IV. 조사결과
1) 지점별 조사내용
본 조사에서 총 21개의 피트를 구획하여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조사지역을 조사가 불가능한 지점을 경계로 3개 지점으로 구분하여 구석기 문화층의 범위를 확인하였다.

 

1지점의 경우 북서편 저수지부근의 NOW6-Ⅱ피트, N2W5-Ⅱ피트, N3W4-Ⅱ피트에서는 표토, 경작층 하부에서 바로 현무암괴가 노출되어 있어 층위가 남아있지 않은 반면 남서쪽으로는 경작층 하부에서 삭박된 갈색점토층이 확인되며, 그 하부로 명갈색 점토층이 확인된다. 갈색점토층 상부와 명갈색 점토층 하부에서 유물이 출토한다.

 

2지점에서는 3단으로 이루어진 논 경작지 중 저수지 부근 1단에서는 재퇴적층이 1m 이상 계속되다가 지표수 및 지하수의 유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양상이며, 2단과 3단의 조사결과 경작층 하부로 바로 점토층이 나타나는 양상과 경작층 하부에 구경작층과 재퇴적층이 1m~2m 두께로 확인되며 그 아래로 점토층이 확인된다. 2매의 점토층이 확인되는데, 쐐기문양을 포함하고 있는 황갈색점토층과 그 하부로 갈색점토층의 양상이며 지점에 따라 황갈색 점토층과 갈색 점토층에서 유물이 확인되고 있다.

 

3지점의 경우 경작층 하부로 바로 풍화암반층이 나타나는 조사지역 북편에 위치한 능선 말단부 사면과 경작층 하부로 점토층이 확인되는 자연층위를 이용한 논둑과 논 경작지 지점이 있다. 2매의 점토층이 확인되며 (암)갈색점토층과 황갈색점토층으로 2개의 층에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층위가 남아있지 않은 일부지점을 제외하고는 1~3지점의 전체 조사구역에 걸쳐서 구석기 시대 문화층이 확인되고 있으며, 그 중 3지점의 자연층위를 이용해 논둑으로 이용중인 N8W21 피트에서 퇴적층이 비교적 잘 남아있는 양상이다.

2) 문화층의 성격

조사결과 지점별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구석기 시대 문화층이 부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CP를 통해 확인한 층위양상은 대부분의 층위가 삭박되어 구석기시대 문화층은 상당부분 훼손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굴조사의 특성 상 석기유물이 확인되는 지점까지만 조사를 실시하여 조사지역의 전반적인 문화층의 성격을 규정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며, 유물포함층에 있어서도 지점별로 색조는 같으나 해발고도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구석기시대 층간의 상호 연결은 다소 무리가 있으며, 층위를 통해 문화층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가 축척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의 조사결과로 볼 때 유물 출토 현황과 석재 또한 층위별로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출토유물의 대부분이 반입석재와 버리는 석재로 아직까지 석기 공작이나 제작기법상의 특징을 보이진 않는다.

다만 대부분의 조사지점들이 유물이 출토되는 지점까지 조사가 이루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구석기문화층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가 이루어져 많은 데이터들이 축척된다면 유적의 성격을 밝히는데 유용하리라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