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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 대모산성[楊州大母山城]

백수.白水 2014. 2. 13. 07:07

 

겨우 212m에 지나지 않는 야트막한 야산이다. 오르기도 그리 험하지 않다. 그러나 막상 올라서면 천지사방이 훤히 보인다. 길목을 지킬 수가 있다. 높아야 요지가 아니고 자고로 이런 곳이 전략적인 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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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789

 

천보산(天寶山) 일원[=양주분지]

 

의정부에서 43번국도를 따라 포천으로 가다 보면 송우리까지 좌측으로 나란히 달리는 낮으막한 산줄기가 있다. 쌍탑이 서있는 의정부 천보산(337m)에서 시작하여 활처럼 굽은 이 산줄기는 회암사 북쪽의 큰 천보산(423m)과 칠봉산(506m)을 일으켜 세우고 동두천시 송내동까지 반원형을 그리는데 도상거리 약 19.5km의 산줄기를 천보산맥이라고 부른다. 산맥의 남쪽은 의정부시, 북쪽은 동두천시, 동쪽은 포천시가 되며 서쪽으로 양주시가 산맥에 포근히 싸여 있는 형상이다. 천보산맥이 정확하게 반원을 그리고 있고 그 안에 양주분지가 있다.

 

 

 

 

임진강유역에서 한강유역으로 연결되는 주요교통로

 

아래의 다섯 갈래 주요 하천로는 천보산맥 일원의 보루군에서 합쳐진 후 다시 중랑천로와 왕숙천로를 이용하여 한강유역의 보루군으로 연결된다.

 

현재까지 남한지역에 확인된 고구려성곽은 70여개정도로 이들 성곽은 한강이북의 경기북부지역에 집중 분포하는데 아차산과 용마산을 중심으로 하는 한강유역, 양주분지를 포함하는 천보산맥일원, 그리고 임진. 한탄강유역 등 3개소의 공간적인 범위를 보여주는데 이중 18개소가 임진강유역에 밀집 분포하고 있다.

 

   •신천로:    - 철원 - 차탄천로 - 은대리성 - 대전리산성 - 신천로 - 천보산맥일원 - 중랑천로

   •간타천로: - 토산 - 사미천로 - 당포성 - 아미성 - 간파천로 - 천보산맥일원 - 중랑천로

   설마천로: - 토산 - 사미천로 - 호로고루 - 칠중성 - 설마천로 - 천보산맥일원 - 중랑천로

   문산천로: - 개성 - 장단 - 덕진산성 - 문산천로 - 천보산맥일원 - 중랑천로

   포천천로: - 철원 - 포천천로 -  반월산성 - 포천천로 - 천보산맥일원 - 왕숙천로 - 한강유역

 

 

양주 대모산성 [楊州大母山城]

 

경기도 양주시 어둔동과 백석읍 방성리에 연접한 대모산(212.9m)에 있는 삼국시대의 山城으로 2013621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史蹟) 526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57,742이다. 양주산성이라고도 한다.   분지형을 이룬 산꼭대기를 돌아가면서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원래는 내성과 외성의 2중 구조로 되어 있었으나, 현재 내성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개성 쪽에서 서울로 오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으로 한강의 요충지인 광진, 북쪽으로 임진강가의 요충지인 적성(積城)과 매우 가깝다. 또한 북서 방향의 유일한 통행로였던 광적면 일대를 굽어볼 수 있고, 수락산 봉수대와 곧바로 봉화 교신이 되던 곳으로, 양주 지역을 포함해 이 지역 일대를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나그네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kcyun3/18353173 <365 ~361>]

 

산성 정상의 대지는 면적이 약 1,653이고 타원형을 이룬 성벽은 둘레가 약 1.4이다. 북쪽의 문터로 짐작되는 곳 좌우측과 동편 등 3곳에 7080m의 성벽이 대체로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다른 곳은 대부분 무너졌다. 현재 성벽의 높이는 45m 안팎이고 너비는 지세가 가파른 남쪽은 6m, 완만한 북서쪽은 8m 정도 된다.  축조방법은 먼저 땅을 골라 다진 다음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단을 만들어 들여쌓기 한 것으로, 경사각은 50도이다. 이런 방식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주로 이용된 것으로 경주의 명활산성, 단양 온달산성, 적성 등에서도 나타나며, 현존하는 성벽은 6세기 중엽 이후의 것으로 추정된다.

 

성 안에는 건물터로 추정되는 평지가 여러 곳 있는데 가장자리에 둥근 주춧돌들이 흩어져 있고, 주변에서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을 비롯하여 기와·자기·철기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우물이 5군데 있고, 1980년대 초 발굴조사 때 군창(軍倉) 터가 발견되었다.  5세기 중엽까지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6세기 중엽까지 고구려에 속하였고, 그 이후는 신라에 속하였다. 즉 삼국이 서로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던 곳으로, 여기서 발견된 유물에서 고구려·신라·백제의 양식이 모두 나타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석축이고, 둘레가 906척이며, 높이가 5척이라 하였는데, 실제 둘레는 약 1,410m이다.  동북쪽이 높고, 남서쪽으로 경사진 곳을 둘러싸고 축조되어 있으며, 북문지와 남문지가 있고, 성안에 건물터와 우물터가 있다. 성의 북쪽으로 낮아진 대지에도 토루의 흔적이 있으며, 이곳에서도 저장유구가 다수 발견된다.  성벽은 바깥쪽의 아래가 보축(補築)된 형식으로서, 성벽의 외측 하단에 기울기가 느슨한 벽체를 바깥 아래 사면부터 쌓아올려 성벽의 중간에서 본 성벽에 닿도록 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경사면을 이루도록 축조되어 있어 이러한 성벽의 가장 모범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성벽은 외면이 장방형이 되도록 가공된 할석을 수평고임하여 축조하였고, 보축된 성벽은 아래에서 위로 오르면서 계단상으로 축조되었다. 문터는 북문과 남동쪽의 문이 조사되었다.  북문은 문의 바깥이 단절된 현문형식(懸門形式)으로 계곡을 향한 부분에 있고, 너비 5.4m의 문구부(門口部)에 측벽의 너비는 6.4m이다.  남동문도 계곡을 향한 위치에 현문형식의 것으로 문초석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문짝을 지탱하면서 여닫는 장치에는 반원구상(半圓球狀)의 중심 축수(軸受)장치가 박힌 채 발견되었다. 건물지는 정상부의 평탄한 암반에서 4곳이 확인되어 조사되었다.  성안에서는 말모양 토우(土偶)와 삼국시대의 각종 그릇이 출토되었고, 활촉과 쇠낫·도끼·투겁창·말재갈··보습(삽모양의 쇳조각)을 비롯하여 청동거울과 청동말·청동도장·개원통보 등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德部(덕부) · 德部舍(덕부사) · () · () · 富部(부부) · 大浮雲寺(대부운사) · ()’ 등의 명문이 있는 기와를 비롯한 많은 종류의 기와편도 출토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로 보아 이 산성은 삼국시대 이래 사용되어 온 것으로, 현재의 석축은 통일신라와 고려기에 보수를 보아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양주 대모산성은三國史記,世宗實錄에서 매초성(買肖城)의 기사를 근거로 매초성(買肖城)으로 비정(比定) 되기도 하며, 新增東國輿地勝覽,萬機要覽,京畿誌,京畿邑誌,輿圖備志,大東地志등에서 양주 대모성산(大母城山), 대모산성(大母山城)의 기록이 확인된다.

 

임진강과 한강 유역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한 대모산성은 주변의 산성 중 주 교통로에 위치하여 단지 방어만을 목적으로 축조된 것이 아니라, 행정치소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복합적 성격의 유적으로, 양주지역의 전술적 요충지 또는 치소로서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장방형으로 가공한 화성암계 변성암으로 높이 약 7.5m 내외의 외벽을 쌓아 올린 다음 그 외부에 삼각형 모양의 단면형태를 띤 45m 높이의 보축을 덧대어 축조한 우수한 축성술과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현문식(懸門式) 성문구조, 축조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성벽 등 67세기의 고대 축성기술을 구체적으로 밝혀낼 수 있는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1980년부터 1998년까지 7차례 이루어진 발굴조사로 635점의 금속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최고관리계층이 소유할 수 있었던 청동 팔찌, 청동 도장 등은 대모산성의 위상을 보여주며, 각종 농구류, 공구류 등을 통해 대모산성을 중심으로 그 관할지의 농업·수공업 생산력이 높았고 주변지역에서 생산된 많은 농산물과 수공업품이 대모산성으로 집중·관리되어 물류 거점의 역할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성의 西北방향에 있는 방성리에서 본 대모산성

西門아래쪽의 너덜겅, 무너져 내린 성돌로 보인다. 

성벽(南西北西)

 

 

 

 

 

 

西門址

 

 

 

 

 

 

 

 

 

 

 

 

 

 

 

 

 

 

 

 

 

 

성벽(北西北東)

 

 

 

 

 

 

 

 

 

 

 

 

서쪽의 백석읍

 

正面이 광적면

 

 

 

불곡산

 

北門

 

 

 

 

 

 

 

 

성벽(北東)

 

 

 

 

 

 

 

성벽(南東)

 

 

 

 

양주시청쪽

 

 

 

돌묘(石墓), 山主 부모의 묘라고 전하는데...

 

 

 

묘 우백호의 암각,

 

 

 

 

 

 

 

묘 좌청룡의 암각,

 

 

 

성벽(南東)

 

 

 

 

 

 

 

 

의정부 녹양동쪽

 

 

 

東門

 

건물지

 

넘어진 딱따구리둥지

 

 

 

東門

 

 

 

 

 

 

성벽(南東南西)

 

 

 

 

흩어진 와편과 도편조각들, 성내 여러 곳에 부지기수다.

 

건물지

 

 

 

세월의 흔적

 

성벽을 보호하고 시야를 확보하기위해 베어낸 나무 밑동, 한 아름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