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년)의 임진적벽도(臨津赤壁圖)는 겸재가 말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하는데,
1,750년도쯤이라 가정해도 지금으로부터 260년 전에 그린 작품이다.
나무의 높이를 내가 계측하기어렵지만, 밑동을 재보니 두 나무 공히 264cm가 된다.
이런 굵기라면 얼마나 오래된 나무일까? 하여튼 그림 속(260여 년 전)의 나무모습이
지금의 모습과 별로 다를 바 없는 것으로 보아 수백 년은 되었을 것이다.
이곳 강가에는 고려 때 문인인 목은 이색(1328년, 충숙왕15 ~ 1396년, 태조5>의 유적(卦嵒)이 구전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누가 이곳에 집을 짓고 향나무를 심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떤 이가 조선시대 어느 정승의 집이 있었다고 구전을 전해주기는 하였지만 불분명하고,
마을회관 앞에서 동네사람들에게 탐문하였으나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향나무의 굵기로 수령을 예측하는 데이터가 있을 텐데...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년)의 임진적벽도(臨津赤壁圖)에서는 임진적벽 중에서
경관이 아름다운 왼쪽부분만 그렸고 좀 더 길이가 긴 오른쪽부분은 생략했다.
적성면 자장리 마을회관에서 임진강 장단적벽으로 내려가다 보면 오래된 향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나무아래 서있는 이에게 ‘향나무가 사오백년은 되어 보인다.’고 했더니 ‘향나무 서있는 윗 밭이
옛날 조선시대에 정승이 살았던 집터였다고 하니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그림에서 집 앞에 서있는 두 그루의 나무가 지금 내가 보는 이 향나무가 아닐는지? 그림의 구도와 현장의 모습이 너무 흡사하다. 공교롭게도 두 나무의 밑동둘레는 똑같이 264cm. 같은 시기에 심은 것으로 보인다.
나루터로 내려가는 길.
나루터자리에 배수펌프장이 세워져있다.
나루터자리에서 보는 향나무.
장남교가 가설되기 전에는 지금의 배수펌프장자리에 자장리(재쟁이)나루터가 있어서
강 건너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아래 사진)를 오갔다.
임진적벽도에서 ‘향나무가 있는 별장에서 사람들이 말을 타고 나루터로 내려오는 길’<위, 아래 사진>
임진적벽도에서 ‘사람들이 말을 타고 적벽 위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
옛 별장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밭<위 사진 4>
임진적벽(긴 부분) 위에 형성된 용암대지와 농경지
원당3리 주상절리 현무암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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